문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국인이나 원주민에게 가볼 만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추천해 보라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이 게티 센터다. 20세기 초 미국 최대 부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폴 게티의 ‘폴 게티 재단’에서 운영하는 이 곳은 기대 이상의 볼거리와 1000년 후 LA를 상상하게 하는 특별한 곳이다.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가 디자인한 게티 센터

솔직히 말해 너무 부러운 남자 폴 J 게티

LA에 사는 사람들이 게티 센터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폴 게티가 썩 괜찮은 부자’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그 정도는 벌어야 한다. 그가 보유했던 기업 자산이 40억 달러였다. 개인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그의 유복함도 ‘솔직히 부럽다’는 게 게티 센터를 좋아하는 LA 시민의 생각인 것 같다. 석유 사업가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나 같았으면 군대 제대해서 암담한 앞날로 고민했을 스물 세 살의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석유회사를 물려받았다.

무임승차? 그런 거 아니다. 타고난 사업 수완으로 그는 아버지 시대에 로컬 기업에 머물러 있던 회사를 미국 석유 기업 가운데 메이저급 회사로 키워냈고, 동종 업계 기업 사냥을 통해 세계 7대 석유 회사로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부동산, 특수항공기 산업에도 진출했다. 그가 창업한 ‘게티 석유’에서 폴 게티는 아버지를 ‘동업자’로 영입한다. 이쯤 되면 ‘애비 잘 만나 부자 되었다’는 폄훼를 할 소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폴 게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더 미치겠는 건 스물 세 살에 물려받은 아버지의 석유회사를 불과 15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으로 키운 뒤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품 수집에 몰두했다는 사실이다. 은퇴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여덟이었다. 이 대목에 이르자 부러움은 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게 되어 있다. 세상,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수억 달러를 들여 전세계 보물급 미술품을 수집한 그는 1953년에 LA 카운티의 말리부에 게티 빌라라는 미술관을 개관했다. 그것이 오늘날 브렌트 우드(Brant Wood) 언덕 꼭대기에 마치 LA 카운티의 왕궁인 것처럼 우뚝 서 있는 게티 센터의 출발 지점이었다. 1892년에 태어난 게티가 세상을 뜬 것은 1976년, 84세의 나이였다. 그가 일군 게티석유를 세계 최대 석유 재벌 기업인 텍사코로 매각한지 꼭 일 년 뒤의 일이었다. 게티의 사후, 후손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1953년에 게티가 세운 게티 재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지금의 브렌트우드 언덕 꼭대기 땅을 매입, 1997년에 게티 센터를 개관했다. 말리부의 게티 빌라는 그 후에도 지금까지 로마 유물을 주로 전시하는 미술관 기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2조원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는 게티 센터는 그 위치와 접근 방식, 전망, 천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흰색 대리적 마감재 때문에 그리스 시대의 성과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밝고 깨끗하고 웅장한 미술관 그 모습일 뿐이다.

조감도 등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게티 센터는 게티 센터를 건축한 리차드 마이어의 건축 이야기를 담은 <리차드 마이어–백색의 건축가> 이성호 교수의 표현 그대로 ‘아크로폴리스 언덕위 파르테논 신전’과도 같은 모습이다.

부자 가문의 호사가 아닌, 감동적 전시가 연속적으로 열리는 미술관

LA 카운티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405번 프리웨이 북쪽으로 접어들자 게티 센터 진입로가 등장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권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각공원이자 전차(트램) 승강장으로 오른다. 게티 센터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이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언덕 위 게티 센터에는 주로 노약자들이 이용하는 셔틀버스 이외의 그 어떤 자동차도 운행할 수 없다. 전차를 타고 오르는 동안 왼쪽을 내려다 보면 조금 전 달려왔던 405번 프리웨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 산 꼭대기에 뜨문뜨문 앉아있는 고급 주택들이 눈에 잡힌다. 게티 센터나 계곡 건너 정상 마을이나 모두 산타모니카, 말리부로 이어지는 1번 국도와 태평양을 조망하는 황홀한 뷰를 갖고 있는 곳이다.

전차가 게티 센터에 도착하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어라이벌플라자>가 등장하고 계단을 오르면 <뮤지엄 입구 홀>이 나온다. 관람의 준비를 위한 곳이다. 한글을 포함한 7여 개국어으로 제작된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다. 안내서를 챙기는 일은 필수다. 그리고 잠시 계단 등 아무대나 주저앉아 관람 계획을 짜야 한다. 워낙 넓고 방대한 곳이어서 한 곳 한 곳 표시해 가며 관람해야 헛갈리지 않을 수 있다. 안내 데스크에 가면 게티 무선 설명 안내 장비(도슨트)를 빌릴 수도 있다. 입구 홀 한쪽에는 뮤지엄 숍이 있다. 들어갈 때 들를 곳이 아닌, 돌아갈 때 들를 곳이다.

입구홀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널찍한 마당과 야외 카페가 있고 주위에는 건물들이 둘러 싸고 있다. 모두 전시관들이다. 이 전시관들은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마감되었는데, 가뜩이나 눈부신 캘리포니아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여행자의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게 만든다. 전시관의 이름은 매우 단순하다. 마당 북쪽에 있는 <북쪽전시관>은 1700년대 이전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모두 게티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세계 미술 시장을 순례하며 모은 작품들이다. 광장층(1층)에는 조각, 장식 예술, 조명, 필사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윗층에서는 회화 중심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는 게티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18세기 이전의 작품 전부가 아니다. 그들의 저장고에는 더 많은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교차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왜 게티 재단 출입 방법을 오로지 ‘전차’ 하나 뿐으로 설계했는지 눈치 챌 수 있다.

북쪽 전시관의 또 한 쪽에 서 있는 건물은 가족실과 스케칭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광장층 가족실은 5세에서 13세 사이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함께 예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상층 스케칭 갤러리에서는 회화의 조각 주형을 보고 직접 그려볼 수도 있으며 스케치 경험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게티 센터에서 가장 분주하고 진지한 풍경의 현장이기도 하다. <동쪽전시관>과 <남쪽전시관>은 1600년부터 1800년도의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광장층에서는 주로 조각과 장식 예술이, 상층에서는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의 발길이 비교적 더 많이 향하는 곳이 <서쪽전시관>이다. 이곳에서는 1800년 이후의 예술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 특히 L2층 ‘사진센터’에는 더욱 많은 관객들의 발길이 어어져 역시 오늘이 사진의 시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다른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광장층은 조각, 장식 예술, 선화 등이 교체 전시되고 상층에서는 회화 중심의 전시가 일년 내내 이어진다. 사진 중심의 뮤지엄숍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나치기 쉬운 곳이 <연구소 전시실>이다. 이곳은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닌 강의실과 독서실로 이뤄져 있는데, 보유하고 있는 희귀 도서, 인쇄물, 사진 등이 교차 전시되고 있다.

출출하다 싶을 때마다 등장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꿈길 같은 정원 산책

게티 센터에는 전시관 외에 화장실, 가족용 화장실, 휴대품 보관소, 자동현금입출금기, 보청기 대여소 등 편의 시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준비되어 있다. 메뉴는 전형적인 미국식, 또는 미국인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중남미 스타일의 메뉴 뿐이다. 그들은 덩치에 걸맞는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지만 동양인의 경우 모든 메뉴의 가장 작은 사이즈를 선택해야 적당하다. 차마 버리진 못하고 배가 찢어지도록 먹어야 하는 참사를 방지하려면 ‘무조건 스몰’이다.

게티 센터의 특별한 볼거리는 역시 건축물 자체와 정원이라 할 수 있다. 게티 센터는 곳곳이 정원이고 전망대이다. 그 중 세 곳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입구 전차 승강장에 있는 프란 앤드 레이 스탁(Fran and Ray Stark) 정원에서는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브론즈 조각이 솟아있는 반사 못을 중심으로 야외에 개방된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전차를 기다리는 동안 감상할 것이 아니라, 이 작품들을 모두 본 후 전차에 오를 것을 권한다.

서쪽전시관에서 가든테라스 카페를 지나 <센트럴가든>과 가든으로 연결되는 오솔길도 꼭 걸어봐야 할 게티 센터의 명소다. 이 오솔길를 걸을 땐 신경을 초미세 상태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냇물 바닥에 돌들을 과학적으로 설체, 물과 돌이 스치는 소리를 다양하게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내 주변을 조경하고 있는 식물군들도 자세히 관찰해 볼 만한 모습이다. 센트럴가든은 인공못과 꽃길로 구성된 곳이다. 꽃의 미로에는 붉은 진달래(우리나라의 진달래와는 색이 다르다, 햇살 영향인 듯)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곳곳에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어서 많은 연인들이 손잡고 걸으며 분위기에 흠뻑 취하곤 한다. 이곳을 꽃의 미로라 명명한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해 같은 길을 빙빙 돌게 되기 때문이다.

남쪽의 ‘곶(South Promontory)’은 사막 지역인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선인장 숲이다. 남쪽 조망대와 함께 하는 이 정원을 둘러본 뒤에는 꼭 남쪽 전시관 테라스에 올라갈 것을 권한다. 그곳은 게티 센터에서 LA 카운티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산타모니카와 말리부, 태평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테라스다. 또한 이곳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브렌트우드 언덕의 게티 센터가 폴 게티의 야망 어린 삶과 게티 재단을 통한 자신의 영원한 왕국을 실현하기 위한 천년의 상상의 결과임에 공감하게 된다.

반 나절 동안 초압축으로 이뤄진 관람을 마치고 처음 들어왔던 ‘입구 홀’로 들어갔다. 뮤지엄숍을 들리기 위함이었다. 세계 모든 미술관의 뮤지업숍은 필요한 것보다는 갖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어떤 사람은 10달러 미만으로 냉장고 자석만 구입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미술관 엽서만 수집하기도 한다. 해외여행을 가면 늘 고민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살까 말까’이다.

게티 센터 한 곳을 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여행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를 여행 중이라면, 삶의 건강한 욕망을 여전히 키워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브렌트우드 언덕의 게티 센터에서의 반나절을 통해 자신을 재정돈해 볼만 하다. 개 같이 벌기도 하는데, 뜨겁게 벌어 정승처럼 쓸 수 있다면 인생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