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난센스 퀴즈 하나. 공무원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바로 ‘음주 골프’다. 우스갯소리지만 속에 뼈가 있다. 정부 스캔들에 휘말리면 즉각 공무원을 대상으로 ‘음주’와 ‘골프’ 금지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의 최대 스캔들 두 건도 음주와 골프가 연관돼 있다. 금기하면 더욱 당기는 법이다. 딱히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골프와 술은 떼어놓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특히 그렇다.

민폐의 연속 기에 위치한 멤버십 클럽에서 경기 운영을 맡고 있는 A는 “음주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 중 가장 빈번한 것이 티오프 지각과 늑장 플레이다. 시즌인 경우 타임 테이블이 촘촘히 짜여 있는데 지각이나 늑장 플레이로 스케줄이 엉킬 때가 많다”고 말한다. 보통 음주 골프는 라운드 도중 술을 마시는 것보다 밤샘 술자리 직후 갖는 새벽 라운드를 뜻한다. 새벽까지 술을 털어 넣고 아침 라운드에 가기 위해서는 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한다. 간이 체내에 퍼진 알코올을 해독할 시간 따위는 없다.

신체적 능력과 연령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성인 남자가 소주 반 병을 마셨을 경우 해독 시간은 평균 9~13시간 정도다. 결국 취해서 필드에 서는 것이다. 자칫 늦잠이라도 잘 경우 티오프에 늦지 않기 위해 ‘음주 운전’과 ‘과속 운전’이 결합된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헐레벌떡 클럽하우스로 달려가는 골퍼 중 열에 아홉은 음주 과속 운전이라는 목숨의 레이싱에서 살아남은 골퍼들이다.

생존해 클럽에 도착했더라도 끝이 아니다. 여전히 취중인 골퍼는 내기나 비즈니스 골프를 위해 조금이라도 술에서 깨고 티 박스에 서려 한다. 온탕에 몸을 담가 해독 능력을 촉진시키다가 맑은 탕 속에 한가득 건더기(?)를 투하하는 골퍼도 있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다. 토요일 오전 로커룸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헛구역질의 정체는 이것이다.

사우나가 숙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정설이다. 경직된 몸을 이완시키고 혈관을 확장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방법은 알코올 해독에 도움이 되지만 과음을 했을 경우 사정은 다르다. 과음을 한 다음날 체내에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수분이 배출되기 때문에 탈수 위험이 높아진다. 운동을 앞두고 있는 경우라면 피해야 한다.

국내 골프장의 레스토랑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는 바로 ‘해장국’이다. 묵은지와 우거지, 황태나 쇠고기 등의 재료는 바뀌어도 해장국은 꼭 있다. 국내 골프장의 레스토랑 운영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W호텔의 외식사업부 관계자는 “아침식사 메뉴 중 해장국 판매 빈도가 80%를 웃돈다. 해장을 위해 ‘얼큰하게’ ‘시원하게’라는 추가 요청을 하는 고객도 많다. 간혹 꿀물을 찾는 고객을 위해 튜브 용기로 된 꿀도 배치 중이다.”라고 말한다. 오전의 클럽 레스토랑은 해장국집이 되는 셈이다.

음주는 라운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난히 라운드 전날 과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 속설 중 ‘몸에서 힘을 빼야 좋은 스윙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불필요한 힘이 가해지면 몸이 경직돼 미스 샷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술과 관련되면 황당한 해석으로 변한다. 전날 충분히 술에 몸을 적셔 놔야 유연해지며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된다. 이것이 사실일까. 연세새봄의원 채용현 원장은 골퍼의 허리 부상 주된 요인이 음주라고 말한다.

“알코올은 디스크에 혈액 공급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분해과정에서 단백질이 소비되며 척추 주변 근육과 인대를 약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이때 스윙을 반복적으로 하면 척추의 순간압력이 높아져 부상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라운드 이후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골퍼 중 상당수가 음주 라운드 때문이다. 또한 전날 과음 상태에서 라운드를 하는 경우 근육 노폐물인 젖산이 계속 체내에 쌓여 근육이 경직된다. 몸이 유연해진다는 것은 낭설인 셈이다.

음주는 스코어에도 치명적 오점을 남긴다. 판단력이 흐려져 평소보다 격한 스윙을 하거나 욕심으로 과한 공략을 한다. 200야드 해저드도 술만 취하면 출처가 불분명한 자신감에 휩싸여 과감히 공략을 하고 만다. 캐디 경력 8년차인 C는 “샷을 보면 골퍼의 비거리와 능력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무리라고 판단되면 끊어 가거나 안전한 공략을 권하는 편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큰소리 치는 골퍼가 많다. 결과는 대부분 빤하다. 러프로 사라진 볼을 찾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좁은 카트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곤혹을 치르거나 자신의 차례임에도 카트에서 졸고 있는 골퍼를 깨우는 일은 캐디들에게 일상다반사다.

생명에 위협이 되기도 해 과도한 음주 라운드는 생명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2008년 호남지역 골프장에서 음주 라운드로 캐디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만취로 필드에 나선 골퍼가 주위에 있는 캐디를 보지 못하고 드라이버로 캐디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이밖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은 다양하다. 해저드에 빠진 공을 클럽으로 건지려다 빠져 허우적대거나 언덕 라이에서 중심을 잃고 굴러떨어져 골절상을 당하는 골퍼, 술기운에 다른 팀과 육탄전을 벌이는 골퍼까지 사례는 스펙터클하다.

특히 최근 캐디 없는 골프장이 증가하면서 카트 운전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다. 음주 상태에서 카트 운전을 하는 것은 ‘음주 운전’의 영역에 포함될까. 국내에서는 NO, 외국에서는 YES다. 미국에서 2000년대 초반 음주 상태에서 카트로 사고를 낸 골퍼가 신고돼 음주 운전으로 체포된 사례가 있다. 골프광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빌 머레이 역시 스웨덴에서 음주 상태에서 라운드를 하던 도중 카트를 운전하다가 체포당한 이력이 있다. 골퍼가 직접 카트를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제재 법안이 없는 상태다. 전동 카트는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언덕이나 해저드가 많이 있는 필드에서는 자칫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만취 상태로 골프장을 찾는 경우도 문제지만 국내 골프장 문화가 음주 골프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골프장은 주류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는 맥주와 막걸리, 위스키와 소주를 판매하고, 최근에는 와인 저장소까지 갖춘 곳이 늘어나고 있다. 클럽하우스에도 맥주와 막걸리는 기본이며, 멤버십 클럽의 경우 고객이 위스키를 맡겨 놓고 폭탄주를 주조해 먹는 웃지 못할 행태도 있다.

그뿐일까. 여름철 전동 카트에 미니 아이스박스를 설치해 라운드 도중 청주나 맥주, 막걸리 등을 마실 수 있도록 고객 편의(?)시설을 갖춰 운영 중인 곳이 대부분이다. 여름 라운드에서는 ‘더워서’, 겨울 라운드에서는 ‘추워서’ 술을 즐긴다지만 러시아같이 추운 나라도 골프장에서는 가벼운 맥주 정도만 판매하고, 보드카는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라운드가 음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국내 골프문화 풍토는 이러한 양분을 먹고 점차 성장해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대리운전회사들은 골퍼들을 주요 고객으로 꼽는다. 경기 이천에 위치한 골프장은 아예 대리운전기사 대기실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오후 3시가 되면 서울로 향하는 골퍼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기사로 대기실이 빼곡하다. 음주 상태에서 직접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국내 지사로 파견 나온 J와 새벽 라운드를 했던 적이 있다. 에디터를 포함해 함께 동석했던 동반자들이 모두 새벽까지 술을 먹고 오전 6시 티오프에 맞춰 나와 잇달아 하품을 하고 있었다. J는 음주 후 2~3시간만 자고 티오프에 나온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이 골프 강국인 비법이 이거 아니겠느냐고 농을 쳤지만 뒷맛이 씁쓰름했다. 골프는 스포츠다. 현재 국내 골프문화는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