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강남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앙증맞은 자동차, 미니 쿠페 한 대가 인도 바로 옆에 떡 버티고 있다. 와인 레스토랑 ‘메를로(MERLOT)’ 주인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장식용으로 세워 놓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와인을 마시러 오라는 의미다. 이 레스토랑 소믈리에 이창익 씨가 추천한 와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카톨로지(Cartology, 2011)’ 화이트와 프랑스 ‘끌로 시라 레온(Clos Syrah Leone, 2003)’ 레드. 두 종류 모두 국내에서는 쉽게 마주치기 어려운 와인이다.
이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강한 산미와 향이 한데 어울려 최상의 밸런스를 이룬다는 것. 고운 잔에 반짝이는 옐로 골드 컬러도 와인 마니아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첫 모금에서 살아있는 요거트 풍미와 데이지, 아카시아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MLF(와인의 부드러운 맛을 내는 2차 발효)와 효모 접촉 때문이다.
또 다른 매력은 엄청난 생명력이다. 7시간 이상 테이스팅을 해도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풍성한 유질감을 받쳐주는 산도와 밸런스를 느낄 수 있으며, 긴 여운이 혀끝에 그대로 전해진다. 프랑스 고급 버건디 와인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다만 이 와인을 마실 때 주의할 점은 서브 온도. 화이트 와인의 경우 보통 국내에서는 칠러에 넣어 차갑게 마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꽃 향과 복합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섭씨 11~12도에서 볼 넓은 버건디 글라스에 마셔야 한다.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소스 없이 이즈니 버터에 구운 대구 스테이크를 꼽았다. 고급버터 허니 풍미와 함께 와인의 꽃 향을 느낄 수 있어 또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한편 끌로 시라 레온은 남프랑스에서 ‘넘버원 그랑크뤼’ 와인을 생산하는 도멘 페레 로제의 대표작품이다. 자연스런 맛이 특징으로, ‘랑그독 전설의 여인’ 마르렌느 소리아는 1988년 첫 빈티지 생산 이후 현재까지 유기농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화학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생산된 와인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과거 많은 사람들에게 랑그독은 벌크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러나 라피트 로칠드 등 유명 샤또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면서 요즘 랑그독 루시용 지역이 새로운 고급산지로 재평가받고 있답니다. 그 중심에 도멘 페레 로제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 소믈리에의 말이다. 와인을 잔에 따르면 짙은 루비 컬러를 먼저 만날 수 있다. 첫 인상부터 신비로움 가득하다. 잔에 퍼진 아로마에 왠지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집중하면 말린 살구나 무화과 같은 과실 향을 잡을 수 있다.
이어 한 모금 마시면 입안 가득 농축된 과실과 잘 짜여진 구조감이 다가온다. 과실 풍미가 강한 편인데도 산미가 높아 순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길게 이어지는 여운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정작 이 와인의 숨겨진 맛을 100% 즐기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디켄팅보다는 병 브리딩으로 2시간 정도 열어두면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소스가 너무 강한 요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자연스러운 매력을 자칫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 티본스테이크 요리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와인 레스토랑 ‘메를로(MERLOT)’는…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최고급 와인잔을 제공한다는 것. 실제 모든 와인 서브는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리델의 소믈리에와 블랙타이 시리즈를 사용한다. 잔 한 개당 시중 백화점 가격이 20만 원에 육박하니 웬만한 와인 값보다 비싸다.
전문 와인 레스토랑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숨겨진 와인들이 많다. 실물을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와인 렉이 매장 내부 벽면에 설치돼 있다. 주요 메뉴는 등심과 안심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티본 스테이크. 그 외에도 화덕 피자나 파스타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예약할 경우 싱싱한 식재료를 셰프가 직접 구입, 코스요리를 제공한다. 특이하게도 마지막 주문시간은 새벽 1시까지. 긴 야근을 끝내고 마음이 허전할 때 들러 부담 없이 와인 한잔 하기 좋은 곳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