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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진실(誠)됨을 꼽았다. 정성을 다함에 있어 조금도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속인다는 것은 모두 죄악이나 그중 가장 나쁜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며 임금과 어버이를 속이는 것, 농부가 밭 갈기를 속이는 것, 상인이 동료를 속이는 것이 모두 죄를 짓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 가지, 유일하게 허용되는 속임수가 있으니 자기의 입은 속여도 된다고 했다. 먹는 것은 잠깐 지나가면 그뿐이니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입을 속여 즐겁게 만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면서 구체적인 경험담까지 사례로 제시했다. 자신이 귀양지인 (지금의 강진에 있는) 다산(茶山)에서 상추로 쌈을 싸 밥을 먹었는데 이게 바로 자신의 입을 속이는 방법이었다는 것. 비록 꽁보리밥이지만 상추에 싸서 먹으면 달게 먹을 수 있으니 진수성찬이 아닌 하찮은 음식으로 입을 즐겁게 만들어 미각을 기만했다는 말이다. 뒤집어보면 아무리 평범한 음식도 상추에 싸 먹으면 그만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한국인만큼 쌈을 좋아하는 민족도 흔치 않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성호사설’의 저자인 이익(李瀷)은 우리나라 사람은 채소 중 잎사귀가 조금 크다 싶은 채소는 모두 쌈을 싸서 먹는다며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까닭도 쌈을 싸 먹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 음식 문화는 상추는 물론 깻잎에 호박잎, 콩잎, 배추 잎부터 쑥갓, 미나리, 곰취와 미역, 다시마 등의 해산물까지 모조리 쌈을 싸서 먹는데다 얼마나 쌈을 좋아하는지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쌈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니 쌈밥의 뿌리도 깊다. 육당 최남선은 채소 잎에다 밥을 싸 먹는 풍속은 옛날부터 비롯됐다고 했다. 실제 우리가 얼마나 쌈 싸 먹기를 좋아하는지는 옛 문헌 곳곳에 흔적이 있다.
조선 전기 학자로 유방선(柳方善)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세종대왕도 뛰어난 학식을 인정해 토론을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은퇴한 그에게 집현전 학자를 보내 자문을 구했을 정도다. 유방선이 쌈밥 예찬하는 시를 한 수 남겼다. 병을 치료하러 산속으로 들어간 후 특별히 약초를 캐 먹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절로 자라는 산나물을 뜯어다 밥을 싸서 먹고 고사리를 캐 국을 끓여 먹었을 뿐인데 저절로 병이 낫고 마른 몸에 살이 붙으니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신기하다고 읊었다.
사실 한민족이 채소에 밥 싸서 먹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소문은 진작부터 외국에 널리 퍼졌다. 14세기 원나라 시인 양윤부가 고려 상추에 대한 시를 쓰면서 주석 달아놓기를 고려인은 익히지 않은 채소(生菜)에 밥을 싸서 먹는다고 적었다. 원나라에 살던 고려 사람들은 이역에서도 상추를 재배했다.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텃밭에 상추를 심어 쌈을 싸 먹으며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워했다. 그런데 고려인의 상추쌈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는지, 현지인들이 상추쌈을 따라 먹으면서 한때 중국에서도 상추쌈이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상추쌈 하나로도 충분히 입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데 쓸데없이 산해진미를 먹겠다며 정력과 지혜를 다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다산 정약용의 교훈. 가끔씩 쌈밥정식을 먹으며 다산의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일러스트 :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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