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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이 굳게 잠긴 삼일로 창고극장 입구 앞으로 매표소가 멀리 보인다.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우)이 초연된 삼일로 창고극장(좌)
40년 역사의 삼일로 창고극장 문 닫다
‘부조리 실험극? 골 아파’ ‘요즘 누가 햄릿을 봐. 코미디나 한 편 때리자’. 대학로 티켓부스 앞은 로맨틱 코미디극 포스터로 거의 도배돼 있다. ‘소극장의 상징’인 대학로극장의 폐관은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다. 간판이 떼어진 채 쓸쓸히 골조만 남은 대학로극장은 현재 공사 자재만 남아 있다. 을지로2가에서 퇴계로2가로 향하는 언덕 위에 위치한 ‘삼일로 창고극장’은 국내 최초로 ‘실험극’ ‘1인극’을 도래시키고, 기주봉, 오태석, 박정자 등의 데뷔 무대로도 유명한 곳이다. 프로듀서 개념을 처음 정착시키며 연극교육, 신인 양성, 모노드라마, 판토마임도 개발했지만 폐관 위기를 겪다가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1975년 봄 ‘3.1로 창고극장’으로 재개관한다. 의사가 사재를 털어 소극장을 만든 것은 당시 세계 연극사에서도 드문 일. 허름한 건물을 매수한 후 시작된 내부공사에는 단원들도 참여했다. 창고극장을 널리 알린 것은 단연 故 추송웅 연출의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1977)>. 아내의 곗돈을 쏟아 붓고 혼자서 제작, 기획, 연출, 무대장치, 연기 등 1인 5역을 담당한 추송웅 씨는 원숭이 역을 위해 수개월 동안 틈만 나면 창경원으로 달려가 침팬지의 모습과 행동을 공부했다고 한다. ‘연극인은 가난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기를 든 ‘제1호 직업배우’이기도 한 그의 초연은 30평도 안 되는 무대, 30도의 열기도 아랑곳 없이 개막 3시간 전부터 130석 매진을 기록했다. 보름 만에 1만장의 표가 팔려나간 후 삼일로 창고극장은 ‘1인극 실험연극’의 메카가 된다.
13년 지킨 삼일로 창고극장 폐관 앞둔 한국소극장협회 정대경 이사장
“틀어막기 식 일시적 연명치료, 거부합니다”
40년 역사의 삼일로 창고극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으로, 열악한 1970~80년대 문화계를 견뎌오면서도 연중무휴 공연, 프로듀서 도입, 창작극 시리즈를 지켜왔다. 매년 해외의 문제작을 소개하면서 한국연극계의 문제를 제시하는 한편 화술 및 연기, 연출, 워크숍을 강화하고 공연이 없을 때는 세미나, 심포지엄, 연출, 워크숍을 강화해왔다. 공연법과 재정 문제로 1980년대 중반부터 여러 차례 폐관 위기를 겪던 창고극장은 2011년 태광그룹 후원으로 회생하지만 재작년부터 지원이 끊긴 뒤 한 달에 330만원인 임차료도 1년 넘게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9개의 공연을 올리며 사재로 1억원이 넘는 빚까지 졌다고 들었다. 남은 빚이 그 정도지, 12년 동안 운영하며 9~10억원 넘게 개인 빚을 졌다. 창고극장의 상징성 때문에 아무 공연이나 올릴 수가 없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지 운영을 하고 싶었는데, 재원 확보가 안됐다. 정부나 후원자의 일시적인 연명치료는 받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서울시 관계자와 후원 문제를 의논했는데 공무원 한둘의 의식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건축주도 1년 넘게 참아줬고, 후원사도 애를 많이 썼다. 창고극장은 한국 공연예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명동에서 100석 짜리 극장을 민간업체 하나가 책임지고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자들은 작품이 좋으면 끌고 갈 수 있지 않냐고 하는데, 아무 상업극이나 올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지만,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그 아쉬움이 크다.
대학로극장 등 최근 문을 닫는 극장이 속출하는 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전부 임대료 상승 얘기만 하는데, 연극이 사회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옛날에 비해 달라진 탓이 크다. 1970~8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연극이 이 사회에 분명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날로그가 가고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복제가 용이해진 회화나 음악에 비해 연극이나 무용은 제작환경이 나빠졌다. 자생력을 갖기가 힘든 상황에서 스타 마케팅 등 관객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화를 받치고 있는 것이 기초예술로서의 순수연극인데, 더 보호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창고극장과 관련된 추억이 많을 것 같은데. 아픈 기억이 있다. 세계 3대 연출가 리 브루어(1970년대 로버트 윌슨, 리처드 포먼과 함께 이미지 연극의 3대 연출가로 불리며 미국 실험극을 조형한 연출가)의 실험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올렸는데, 쫄딱 망했다. ‘고전의 획기적 재해석’으로 관심이 많았지만 흥행은 넘사벽이었다. 온라인 사이트는 수수료를 먹고 살기 때문에 상업극을 찾을 수 밖에 없고, 실험극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없다. 돈 벌겠다는 욕심 없이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만 한번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것은 아쉽다.
창고극장 같은 소극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공연예술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다. 민간 소극장은 개인 사업자로 분류가 돼 지원제도가 없다. 지원총액이 늘고 있다 해도 창작자보다는 향유자를 위한 것이 많다. 문화 선진국의 경우 흥행과 상관없이 소극장들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굳건한데 우리도 그들처럼 공공 지원을 늘려야 한다. 공공의 기능을 하는 극장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창고극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생각도 있다.
‘역전의 용사’ 동성아트홀,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재개관
지난 4월 1일 만우절. 1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장국영의 서거일에 거짓말처럼 다시 문을 연 곳이 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이 축소되면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대구의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 ‘동성아트홀’이 그 주인공. 11년간 지역 유일의 예술영화 전용관이었던 극장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에 비통해 하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재개관 소식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역전의 주역은 지역에서 화상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광개토병원 김주성 병원장. 동성아트홀을 딸과 자주 이용했다는 김 원장은 꼼짝 않고 <로미오와 줄리엣> 스크린을 바라보는 딸을 보며 인수를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극장의 대대적 리모델링과 함께 지하철과 야구장 등지에서 대대적 광고를 진행했고, 명사들의 강연 등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는 영화 관련 전시공간을 갖춰 골목 투어나 외국인 관광객의 투어 코스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재개관 후 첫 작품은 배우 장국영 특별전으로, 관람료도 11년 전 가격인 3000원으로 정했다. 영진위가 지원대상을 25개에서 20개로 줄이고 그 중 대기업이 선정되면서 당장 거제 아트시네마는 문을 닫았고, 수년째 선정된 대전아트시네마, 매년 높은 등급을 받던 부산cnc도 모두 탈락했다. 관객점유율은 5% 밖에 안 되지만 매년 6000여 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더해 운영해온 동성아트홀도 급료와 임차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마저 깎던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인수자가 나타난 것.
폐관된 동성아트홀 인수한 광개토병원 김주성 병원장 극장주가 된 시네마 키즈 “딸과의 추억, 지켜야 했다”
따님 때문에 극장을 인수하셨다고요. 가끔 딸과 동성아트홀에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폐관소식을 듣고 딸이 너무 안타까워했어요. 기성세대로서,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명맥을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딸을 보며 ‘그 누군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 중고등학교 시절은 소극장 전성시대였죠. 흑백TV에 없는 천연색 영상과 웅장한 음향은 매료되기 충분했습니다. 당시 봤던 영화들은 학생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자랑거리였고, 그때의 간접경험과 판타지는 유년시절의 소중한 기억입니다. 인수 소식에 기뻐하는 딸의 눈망울에서 잊고 살았던 제 순수했던 시절을 다시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개관일을 4월 1일로 정하신 이유는? 상영 중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빨리 재개관하고 싶었죠. 4월 1일 우리 곁을 떠난 영화배우 장국영처럼 동성아트홀도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돌아온다는 상징성도 있고요. 아직 노후된 기존시설과 영사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예전 관객 점유율엔 미치지 못합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 설계에 들어간 상태로, 부대시설과 영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관객이 늘어날 것이라 전망합니다.
최근 대학로극장 등 소극장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실험극과 마찬가지로 예술영화 역시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는 아니지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풀어낸 영화, 그런 문화적 다양성은 지켜져야죠. 100만장의 음반을 파는 가수보다 1만장의 앨범을 파는 가수 100명이 훨씬 더 문화적 의미가 큰 것처럼요. ‘동성아트홀릭’ 등 커뮤니티 회원들의 자구노력, 부대시설과 영사시스템 개선과 아울러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고 보존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으니까요. ‘국민의 행복권’ 따위의 수사를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예술로서, 또 문화의 한 축으로서 영화가 지닌 가치는 지켜져야 합니다.
향후 운영계획은? 현재의 건물 임대형식이 아닌,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을 갖추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이전계획도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지식집단, 팬클럽 분들로 이뤄진 개방형 운영위원회가 운영주체로, 소프트웨어적 면을 담당합니다. 단순히 영화만 보고 가는 장소가 아니라 예술도 만나고 문화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 되는 거죠.
동성아트홀이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기를 원하시나요? 한 도시의 활력과 경쟁력은 그 도시의 문화적 매력에서 결정됩니다. 대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화 다양성을 지켜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죠. 시에선 의료서비스와 휴양, 레저, 문화 활동 등이 결합된 의료관광을 강조하지만 유수의 병원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죠. 접근성조차 떨어지는 대구에 문화적 빈곤까지 겹친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살고 싶고, 관광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작은 출발이지만 문화도시 대구의 자존심으로 시민들의 자랑이 되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1년에 200여 편 이상, 전국 최다 상영 기록을 가진 동성아트홀. ‘서울에서 개봉 안 해도 대구 동성아트홀에서는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04년 대구경북시네마테크를 만든 남태우 프로그래머가 아트홀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면서 스페인 영화제, 올빼미 영화제, 추억의 명화전 등 현재의 CGV 무비콜라주나 GV(관객과의 대화)를 처음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질적으로 우수했고, 영진위가 예술영화관의 모범사례로까지 추천, 작년에는 인센티브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것. “한 해 1억원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수백 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흑자를 내는 극장이 있다니 믿어지시나요? 관객 수 증가가 없고 시설투자가 없다는 영진위 논리는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다양성으로서의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무시한 처사죠.”(동성아트홀 남태우 프로그래머)
지난 7일 네이버는 한국소극장협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영세한 소극장들의 모바일 사이트와 관련 솔루션 제작 지원 및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마케팅 교육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정대경 (사)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그간 민간의 극단과 극장들이 마케팅을 어려워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순수공연들이 더욱 활성화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대학로극장은 7월 충북 단양으로 거처를 옮긴다. 정대경 창고극장 대표는 공사를 시작하는 내년까지는 공연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5월 중순부터 주호성 씨 주연으로 <빌라도의 고백>이 삼일로 창고극장 무대에 오른다.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적혀진 삼일로 창고극장의 간판이 유달리 서글퍼 보인다.
[사진 매경DB, 삼일로 창고극장, 대학로소극장협회, 동성아트홀 참고서적 <20세기 이야기> 김정형 <한국근대극장 변천사> 유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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