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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직장 내 처세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얕은 재주로 남의 뒤통수나 치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진하라는 뜻이 아니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나도 좋고 직장도 좋고 더구나 나를 믿어주는 상사와의 관계도 꾸준히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나의 생존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간혹 직장에서 예기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회사의 실세 라인을 어렵게 붙들고 열정을 다해 직장을 위해, 그리고 실세 상사를 위해 일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원치 않는 팀으로의 인사 발령’이 그것이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그’가 실세에게 버려졌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 후로 회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동료들 사이를 넘나든다. “글쎄 그 친구가 실세를 위해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후배 등에 빨대 꽂아 빨아먹고 버리는 것이지 뭐. 안됐지만 할 수 없지. 그리고 그 친구도 너무 완장 차고 행세했지 뭐.” 원통해 하며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데, 내가 정말 충성을 다했는데’라고 넋두리 해봤자 현실은 토사구팽, 바로 그것이다.
토사구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그 어떤 라인도 없이 실력만으로 승진하는 것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직장 내 독불장군은 생존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연이든, 지연이든 하다못해 조기축구를 하든 한국 사회는 관계와 조직의 결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소통과 인연과 악연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명만 모여도 당이 3개가 만들어질 만큼 한국사회는 정치 지향성과 조직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만큼 한국인은, 직장인은 조직 안에 있을 때 평안함과 안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성공한 2인자’들도 많았지만 사냥이 끝난 뒤 버려진 2인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국 한나라의 장수 한신. 이 자가 바로 토사구팽이라는 ‘아름다운 배신의 정치학’의 주인공이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은 수없이 많은 제후국으로 갈라져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두는 단연 초나라의 항우, 그 뒤를 이어 한나라의 유방이 호시탐탐 천하통일의 야망을 드러냈다. 위나라,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 등도 있었지만 천하 패권을 좌우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초반은 당연히 항우의 선두 질주가 돋보였다. 하지만 유방은 무엇이든 항우와 반대로 가는 정책으로 항우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을 규합했다. 항우가 엄격한 법가를 적용했다면 유방은 인의를, 항우가 적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 준다면 유방은 포용력과 포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당시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뛰어난 전략가와 용저, 종리매 등의 장수가 있었고 유방에게는 소하와 장량 그리고 번쾌 등의 맹장이 있었다.
젊은 시절 한신의 삶은 그야말로 굴욕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별 뛰어난 재주도 없는 서생이었다. 회음현의 한 하급 관리 밑에서 두어 달 간 눈칫밥을 얻어 먹을 때도 있었다. 하릴없이 낚시나 던지며 살기도 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한 아낙네가 몇 달 동안 밥을 차려주었고 이를 고맙게 여긴 한신은 “내가 훗날 출세하면 이 은혜를 갚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아낙네가 “사내대장부가 밥까지 동냥해 먹으면서 무슨 신세를 갚는다고 하는가?”라고 비웃기까지 했다.
또 있다. 백정촌에 간 한신은 한 백정에게 놀림을 당한다. 백정은 한신에게 시퍼런 칼을 던지며 “네가 사내대장부로서 용기가 있으면 그 칼로 나를 베고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 치욕스런 말이었지만 한신은 잠시 고민하다 백정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고 사람들은 그런 한신을 ‘졸렬한 인간’이라며 마구 놀려댔다.
이런 수모를 겪고 한신은 우연한 기회에 항우의 부하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때를 못 만난 그는 유방의 군대로 간다. 그곳에서 창고지기로 일을 하던 중 한신은 뜻밖의 귀인을 만난다. 바로 유방의 최측근인 소하이다. 소하는 당시 전쟁터로 출전하는 유방이 후방 자신의 터전을 맡길 정도로 신임하는 부하였다. 소하는 한신과의 몇 번의 대화에서 그의 뛰어남을 발견한다. 그리고 유방에게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천하를 얻어 황제가 되려면 한신 같은 장수를 중용해야 한다”고 천거했다.
이 뒤부터 한신은 승승장구한다. 백정의 가랑이 밑을 기어 목숨을 보전했던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용맹과 전략으로 연이어 승전보를 올렸다. 한신은 파죽지세로 연나라를 점령하고 제나라를 공격했다. 제나라는 초의 항우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항우는 자신의 장수 용저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제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하지만 용저는 한신의 신출귀몰한 계략에 말려 전멸 당하고 목숨도 잃고 말았다. 여기서 한신은 우쭐해졌다. 사람은 운이 가장 좋을 때, 일이 성사가 되어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말처럼 한신은 이 공을 유방에게 돌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 한신은 유방에게 자신을 제나라의 왕으로 봉해줄 것을 요청한다. 유방은 속으로는 괘씸했지만 한신의 능력과 혹시라도 그가 딴마음을 먹을 것을 두려워 해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봉한다. 한신이 제왕이 되자 정세는 묘하게 흘러갔다. 드러난 모습으로는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지만 한신이 팽팽한 두 사람 사이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절대 캐스팅보드를 쥔 강자가 된 것이다.
이에 항우는 한신에게 몰래 사신을 보낸다. 유방에게 독립해 항우, 유방, 한신으로 천하를 삼분하자는 제안이다. 한신은 고민한다. 이때를 기해 한신의 참모인 괴통은 이 제안을 받을 것을 강력하게 건의한다. 위, 조, 연, 제를 손아귀에 넣고 있는 마당에 유방과 항우에 비해 밀릴 것이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유방이 언제가 천하의 패업을 완성하면 한신에게 상 대신 독을 내릴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한신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자신을 중용할 유방을 차마 배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유방은 마침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했다. 그리고 한신을 1등 공신의 칭호와 함께 초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는 유방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항우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초나라 지역은 항상 반란의 가능성이 큰 지역. 그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유방은 이것을 한신의 모반이라 몰아세워 한신을 제거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신 밑에 있는 항우의 장수 출신 종리매의 존재를 유방이 알게 된다. 유방은 한신을 호출하고 종리매는 다시 한번 한신에게 유방과 대항하라고 말하지만 한신은 듣지 않는다. 종리매는 스스로 자결하고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찾는다. 모반의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한신을 초나라 왕에서 물러나게 한 후 일개 제후로 강등시켜 감금시켜 버린다.
그리고 한신과 유방은 마주한다. 술잔을 기울리며 유방이 한신에게 묻는다.
“경이 보기에 나는 몇 만의 군대를 거느릴 능력인가?”
“10만 대군이옵니다.”
“그럼 경은 몇 만인가?”
“저는 다다익선으로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어찌 내 밑에서 이리 감금되어 있는가?”
“저는 군대를 거느릴 능력이 있을 뿐이고 폐하는 군대를 거느릴 장수를 거느릴 능력이 있습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궁을 비운 유방을 대신해 실권을 장악한 유방의 처인 여태후가 진희의 반란을 기회로 한신을 불러들인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떳떳한 마음으로 궁으로 간 한신은 여태후가 쳐놓은 함정에 빠져 그만 목숨을 잃는다. 궁으로 돌아온 유방은 서운하면서도 시원했다고 후세가들은 기록한다. 한신은 죽기 전 “내가 그 때 괴통의 말을 들을 것을….” 이라는 후회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나라 유방을 도와 패업을 달성한 3명의 1등 공신. 그 중에서 야망이 없는 소하만 살아남았고 장량은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부지했으며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던 한신은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자신의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꾼은 사냥개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더구나 뛰어난 사냥 능력을 발휘한 사냥개일수록 사냥꾼은 고민하게 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부하직원을 유용하게 쓰지만 막상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그 부하직원에게 공을 나누어 줄 상사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에게는 더 새로운 장소에서 능력을 발휘할 새로운 사냥개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 A대리. 서울의 2류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채로 입사해 사내 근무를 마치고 건설 현장으로 파견된다. 회사는 당시 서울시의 지하철 공사를 대대적으로 수주하고 서울에서만 몇 개의 공사를 해내고 있었다. 한 구간으로 파견 나간 그는 그 곳의 현장소장인 B부장을 만나게 된다.
A대리는 성실하게 일했다. 현장 분위기상 술자리가 많았지만 A대리는 항상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입이 무거운 그를 B부장이 눈여겨보았다. 현장은 보통 2년 단위로 공사가 이루어졌고 현장에서 쓰이는 돈은 수백억 단위였다. 현장 소장 한 번 하면 강북에, 소장 두 번 하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현장은, 특히 소장이란 자리는 그야말로 노른자위였다.
B부장은 항상 A대리를 데리고 다녔다. 하청업체를 만날 때도, 대관업무를 할 때도 항상 대동하고 일을 가르쳤다. 그리고 점차 A대리에게 ‘돈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다. A대리는 고민했지만 B부장의 회사 내 평판이 좋고 실세인 부사장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담백하게 그 심부름을 해내며 지냈다. 또한 B부장을 위한 일이라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심지어 B부장이 바람을 피운 상대까지 만나 해결하기도 했고 이런 관계 속에서 B부장의 비자금까지 관리하게 되었다. B부장은 수단을 부려 다른 현장으로 가면서 A대리를 과장으로 승진시켜 데려갔다.
이곳에서도 B부장은 이사로 승진했고 그의 A과장에 대한 신임을 날로 더해졌다. 회사 내에서도 A과장은 B이사 라인으로 공인되었다. A과장은 B이사의 경쟁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다른 현장의 비리를 내부 고발하기에도 이르렀다. 그야말로 B이사의 사냥개가 되어 맹렬하게 동료를 문 것이다. 이렇게 몇 년이 흘러 B이사는 중역으로 승진했다. 전무가 된 것이다. A과장은 차장으로 승진했고 그는 곧 부장으로 승진해 현장소장으로 나갈 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A차장은 지방의 C급 현장으로 파견발령을 받았고 전무는 그를 모른 체 했다.
속이 탄 A차장은 전무를 만났지만 그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장 후보로 오른 전무에게 자신의 검은 과거와 온갖 부정을 다 알고 있는 A차장의 존재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전무는 누군가에게 들었다면서 오히려 A차장에게 화를 내며 말을 전했다. 그것은 언젠가 동기들 간의 술자리에서 A차장이 호기롭게 내뱉은 말이었다.
“보라구, 전무님이 사장으로 승진하면 이제 내 세상이야. 날 중용할 수밖에 없다구. 니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 나와 전무님 사이는 말야. 흐흐 내가 말 한마디 잘못 놀리면 전무도 끝장이야. 내가 그 사람 앞길 위해서 온갖 쓰레기를 다 거머쥐고 치웠다구.”
훗날을 도모하자는 전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지방으로 내려갔지만 A차장은 다시는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다.
누군가의 사람이 아닌, 회사의 직원으로 일을 하라
A차장이 간과한 가장 큰 사실은 전무와 자신의 관계를 너무 자랑한 것이다. 물론 직장 생활에서는 상사의 유별난 사랑을 받는 부하 직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그야말로 직장에서 맺어지는 것이지 마치 조폭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것처럼 온갖 비리를 공유한 관계로 발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역 정도의 자리까지는 A차장과 전무가 공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장 후보에 오르는 순간 전무는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부터 전무까지 회사를 위해 공도 많이 세웠지만 온갖 부정도 많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사장으로 올라서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A차장이 서툴게 일을 처리하거나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분명 꺼림칙한 점이 있었다. 그 순간에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A차장의 술자리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바로 사냥개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어 있으므로 옛날 시골에서 써먹던 사냥개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차장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는 최소한 전무에 대해 직장상사로서의 예의와 명령 계통을 지켰어야 했다. 그를 위해 온갖 부정을 공모하고 다른 상사를 모함하는 그야말로 아무나 물어버리는 사냥개는 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이빨을 보았던 동료들은 아무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고 전무조차 그를 버거워한 것이다.
직장 생활은 공존이다. 그것은 나누는 몫이 차별이 없을 때 가능한 단어이다. 간혹 말이 나오는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책임지고, 같이 영원히 간다는 것은 술자리에서나 하는 말이다. 직장은 적자생존의 세계이자 제로섬 게임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 통용되는 곳이다.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고 싶다면 이런 것조차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싶다면, 자신이 충성을 다한 상사에게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그 상사를 넘어서려는 야망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상사를 포함해 누군가의 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서도 안된다. 비리를 묵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비리의 공모에 애초부터 가담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설사 가담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흔히 돌고 있는 ‘카더라’ 통신의 정확성은 의외로 정확하다. 하지만 회사는 1년 단위로 업무도, 인사도, 소문도 똑같은 패턴으로 돌아간다. 이런 관행적 규율을 깨는 조직원에게 회사도 동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는다. 유능한 직원은 조직을 위해 일을 하고 그곳에서 비롯된 성과는 위와 옆 그리고 아래에조차 골고루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을 독식하고 상사의 신임을 독식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조직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칙을 지키자. 이 말처럼 쉽고도 어려운 말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누구의 사람이 아닌, 회사의 사람으로,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회사를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 전우의 시체를 밞고 넘어 위로 올라가는 직장인은 되지 말아야 한다. 그 순간, 당신의 동료가 후배가 당신을 넘을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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