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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의 향기가 풍경소리와 함께 퍼지는 시간
절간에서의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다. 발우공양? 법복을 입고 양쪽에 일렬로 죽 앉아서 경건한 자세로? 한 톨도 남김없이 싹 비운 후 물 부어 입가심 하고 행주로 싹? 에이, 그런 거 아니다. 그냥 시골집 접이식 밥상에 섞여 앉았다. 그래도 주지 ‘임하 스님’이 안쪽 가운데에 정좌했고 신도들이 창 쪽에, 길손 셋은 문 쪽에 자리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앉고 보니 희한하게 일정한 질서를 지킨 셈이다. 식사 준비는 마을 이웃인 보살님이 준비했다. 츄릅!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산에 들에 자라는 민들래, 달래, 콩나물 등을 무쳐 큼직한 접시에 올려놓고 김치와 깻잎장아찌, 상추, 총각무와 두부 조림이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잡곡밥과 들깨 시레기국이 도착하자 모두들 그간 흐트러져 있던 몸을 ‘밥 먹기 좋은 자세’로 고쳐앉은 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격식을 갖춰야 할 공양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님과 특별한 불자,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이 섞여 앉은 자리이니만큼 무언가 심오하고도 고매한 대화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밥숟가락을 들었는데, 스님이 이윽고 한 말씀 하신다.
“거시기, 고추는 심었슈?”
보살님이 잽싸게 대꾸한다.
“비가 와야 심쥬?”
스님 끄덕끄덕,
“그츄? 그려야 가뭄에도 잘 견디쥬? 그려유, 밥 드슈, 들!”
아뿔사! 진리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점심 공양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쯤, 일행은 대조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도량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해 보이지도 않았다. 여행자든 불자든 사찰로 향하는 길은 다소 불편한 게 마땅하다. 속세와 떨어진다는 그 느낌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대조사 또한 일주문은 없다. 해탈문도 천왕문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매끄러운 곡선의 계단 한 줄기만 깔끔히 보일 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어쩐지 ‘작기만 한 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막연한 생각이 아니다. 대조사 뒤로 보이는 성흥산의 푸른 숲과 양쪽으로 감싸고 있는 산세가 그런 느낌을 준 것이다. 계단을 다 오르니 아담한 대웅전과 3층 석탑, 범종각, 그리고 주지스님이 머무는 곳 요사채가 눈에 잡혔다.
마당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성홍산 골짜기가 쭉 빠져나가는 게 누가 보아도 명당자리다. 고려시대 때 세웠다는 석탑은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소박한 규모다. 1970년대 이곳에 머물던 스님들이 지붕 하나 달랑 남아있던 석탑을 보고 신도들과 함께 주변 숲을 샅샅이 뒤진 끝에 몸통을 발견했다. 그렇게 대조사 3층 석탑은 다시 마을 사람들의 기도처로 세상에 돌아온 것이다. 흔히 대웅전이라 불리는 곳은 석탑 뒤 ‘원통보전’으로 이곳이 주불전이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성왕 때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대조사는 한자로 클 대大, 새 조鳥, 절 사寺 자를 쓴다. 당시 큰 스님 한 분이 성홍산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관음조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더란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큰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대조사’라 했다. ‘원통보전’은 바로 그 ‘관세음보살’을 모셔놓은 불전이다.
원통보전 왼쪽으로 약수터가 하나 보이고 지붕 정면에 ‘불유정佛乳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조사는 풍수 상 명당에 위치하면서도 좋은 물길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들은 예산 성당의 ‘잘끄레깡JEAN CRINQUAND’ 신부가 손수 대조사를 찾아와 공력 높은 솜씨로 이 약수를 찾아냈다고 한다. 약수터 뒤로는 명부전과 산신각이 있다.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마당 끝의 ‘범종각’ 또한 번듯한 자태다. 대조사의 지형은 3단으로 이뤄져 있다. 맨 아랫단은 스님과 처사님들이 농사를 통해 울력을 행하는 곳이다. 대조사 소유의 솔밭과 한가로워 보이는 산책로가 이곳에 있다. 둘쨋단이 원통보전이 있는 중심이요, 맨 윗단에는 대조사의 명물이자 보물 217호인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이 묵직하게 서있다. 창건 설화 그대로 이 미륵보살입상은 하나의 돌을 다듬어 조각한 작품이다. 미륵불입상 아래 용화부전에서는 행복한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륵불 앞에서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생각하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가는 길 한쪽에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이곳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방인데, 황토와 숯과 찹쌀풀과 송진을 끓이고 이겨 만든, 안온한 요사채다. 말을 듣고 보니 당장 스님을 졸라서라도 그 방에서 하룻밤 신세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대조사는 조용히 사색하고 과거와 오늘과 미래를 정돈하기 좋은 분위기 속에 있다. 대조사로 들어가기 전, 먼저 성홍산성과 솔바람길 일부를 걸었다. 성홍산성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정복될 당시 연합군의 공격을 받지 않은 요새였다. 워낙 높고 단단한 철옹성이라 함락 작전을 포기하고 그대로 사비성으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훗날 이곳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신라군이 접근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초입은 좁고 가파르다.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소나무들의 멋진 모습에 정신을 팔다간 계단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구간은 금세 끝나고 곧 가벼운 발걸음으로 잠시 오르면 그 이름도 유명한 ‘사랑나무’ 앞에 도달한다. 이 지점은 백제가 도읍을 옮기기 30년 전에 축조된 ‘가림성’의 입구다. ‘사랑나무’는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로 키가 22m, 둘레가 125cm에 이른다. 보통 느티나무가 평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에 비해 이 느티나무는 산성 꼭대기 부분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이 사랑나무는 먼 곳에서도 잘 보이고, 반대로 이 나무 옆에 서면 전망도 탁 트여져 있어서 여행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서동요’ , ‘대왕 세종’, ‘계백’ 등 수많은 드라마의 주연급 나무로 출연하기도 했다.
성홍산성에는 또한 ‘솔바람길’이라는 산책로가 나 있어서 지역 사람들의 운동 코스로, 여행자들의 도보 루트로 활용되곤 한다. 성홍산성에 올라 조용한 산책과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솔바람길을 지나 대조사로 내려가는 코스는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사색길이다. 길가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데 대조사 주변 소나무들은 유난히 고고한 자태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임하 주지 스님이 8년 전 부임한 직후부터 꾸준하게 작업해 온 결과다.
스님은 대조사에 오자 수행과 함께 도량으로서의 사찰을 보전함은 물론 ‘예쁜 사찰 꾸미기 작업’에 공력을 쏟았다. 산림과에 직접 찾아가 ‘간벌 허가’를 받아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만발한 잡목을 다듬고 연산홍 등 외래종으로 뒤덮여있던 주변을 정리, 구절초, 철쭉, 목단, 수국, 작약, 그리고 화투장 2월 그림의 주인공인 이매조 등 우리나라 꽃으로 채웠다. 예불도 수행의 길이고, 스님 또한 그 일에 소홀하지 않지만 울력이라는, 노동을 통해 수행의 길에도 열성을 보인 것이다. 그렇게 8년의 노동 수행을 한 끝에 이제 대조사는 백제 때 창건한 천년 도량으로서의 단정함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는 게 신도들의 생각이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따라 시선을 올리며 생각했던 ‘규모는 작지만 결코 작은 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이렇듯, 스님, 그리고 스님과 함께 울력을 실천해 온 신도들의 노력의 결과다. 잠시도 쉴 수 없는 수행의 길이라니!
도량의 풍모가 어느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대조사 주지 스님은 ‘뭣 좀 재미난 일로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를 놓고 궁리하다 ‘산사음악회’를 떠올렸다. 밥상을 앞에 두고 불자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통해 법문을 나눈’ 스님답게, 마을 사람들과 거리는 물론 마음으로 가까운 곳에 사는 스님이 마을 사람들의 ‘즐거운 일상’을 생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천년의 향기 희망과 나눔이 있는 대조사 산사음악회’로 명명된 산사음악회는 숱한 이야기와 논의 끝에 이제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대조산 산사음악회’는 단순한 공연으로 끝나는 ‘노래잔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전국에서 대조사 산사음악회에 기증한 물건들을 싸게 팔아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희망나눔 자선 바자’, ‘앱툰작가 낭낭’의 작품을 전시하고 빈티지 어쿠스틱 듀오 ‘기타초이&송버드’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갤러리&작은 음악회’, 자기의 소원을 나무로 만든 미니 기왓장인 ‘와패’에 적어 소원나무에 걸고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에게 빌어보는 ‘위싱트리–소원편지 쓰기’ 등 지역 시민과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산사음악회의 주인공은 역시 공연. 대조사가 있는 임천면, 부여군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정서를 고려해 요즘 중장년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백호, 오랜 세월 청중의 어깨를 들썩이게 해 온 김수희, 그리고 공연장에서 더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와이키키브라더스밴드&프렌즈, 선주 등이 참가 시민, 여행자들과 즐거운 무대를 나눈다. 프로그램은 5월 24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며 노래 공연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
대조사 교통편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 경부고속도로 – 천안JC – 천안-논산고속도로 북공주 JC – 당진대전 고속도로 공주1JC – 서천공주고속도로 서공주 JC – 부여IC – 부여교차로 – 내리교차로 – 규암교차로 – 임천삼거리 – 성흥로 금강하구언 방향 – 대조사 주차장
대중교통 부여시외버스터미널 – 부여시장 정류장에서 301, 303, 310, 311, 312, 313, 314, 320 버스 임천정류장 하차 – 도보 20분
*산사음악회 당일 임천우체국 – 대조사 왕복 셔틀버스 운행(10:00~16:00)
대조사 주소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127
문의 041-833-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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