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 투어에 식상함을 느낀다면 유럽의 새로운 아트투어로 부상하고 있는 ‘크로스아트(CROSSART)’로 시선을 옮겨 보자. 예술과 자연 그리고 건축이 어우러진 라인강변의 미술관은 속도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는 리지엄이라 불린다.

경쟁과 속도전이 장악해버린 도시인의 일상에 갤러리 관람을 더하는 건 때론 사치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미술관과 리조트의 무드를 결합한 리지엄(Resort+Museum)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해 5월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 ‘전원미술관’을 표방하며 ‘뮤지엄 산(SAN)’(구 한솔뮤지엄)이 개관해 자연 속의 갤러리를 산책하는 즐거움을 가득 안기고 있다. 일본의 대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을 마주한 대중들은 한가로운 산책과 예술작품 관람이 함께하는 공간에 만족감을 가득 표했다. 미술작품 관람은 물론 가치 있는 건축문화와 호젓한 숲의 풍경을 동시에 즐기는 건 현대인에게 남다른 힐링 안겨주기 충분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유럽에서 좀 더 일찍 시작되었다. 유럽의 각 도심 외곽에는 저마다의 스타일과 품격을 지닌 소장품으로 세계의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미술관들이 자라잡고 있다. 현대대미술가,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은화는 <자연미술관을 걷다>에서 그와 같은 비밀 루트를 공개했다.

독일의 라인강 주변은 포도밭이 즐비하며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고성들이 곳곳에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붐비는 인파를 피해 독일과 네덜란드의 국경을 잇는 라인강 하류로 향하면 독특한 자연미술관들이 대거 밀집해 있다. 유명 미술관은 아니지만 독일의 소도시 노이스에 위치한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처럼 거대한 생태 공원 속에 위치한 갤러리를 한가롭게 거닐며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미술을 마주할 수 있어 ‘힐링 미술관’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Place1 온천탕의 변신 쿠어하우스 미술관

독일 클레페에 위치한 시립미술관으로 19세기에 지은 온천탕 호텔을 개조해 만들었다. 조각가이자 요제프 보이스의 스승인 에발트 마타레의 딸이 아버지의 유작과 소장품들을 모두 시에 기증하고 아버지의 집이었던 현재의 미술관 건물도 시에 양도해 모두를 위한 아트를 내보이는 곳이다. 미술관은 본관, 바로크식 정원, 그랜드 카날로 구성되며 본관은 대형 창과 발코니가 딸린 빌라 스타일의 건물이다. 관람 역시 미술관 내부의 전시 위주가 아니라 하루 종일 대자연을 즐기는 데 맞춰져 있다. 전시실 내부도 자연광을 가득 살려 밝고 경쾌하다. 호텔을 개조한 건물은 물론 로맨틱한 바로크 양식의 정원과 야외 온천탕, 아름답게 빛나는 대운하의 풍경을 감상하며 운치와 멋에 매료되고 만다. 슈테판 발켄홀, 요제프 보이스, 리처드 롱 등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Place2 숲 속에 자리한 모일란트 궁전 미술관

베트부르크 하우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고성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7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모일란트 궁전미술관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숲 속에 위치해 있다. 둥글고 육중한 기둥과 뾰족한 탑들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독일식 고딕 건축물로 웅장한 매력을 드러낸다. 정원 곳곳에는 조각품들이 세워져 있고,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마치 작은 섬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신비로움을 풍긴다. 요제프 보이스의 후원자이자 컬렉터였던 흐린턴 형제가 50년간 수집한 다양한 작품들과 보이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 미술관 안에 위치한 ‘요제프 보이스 아카이브’는 보이스가 직접 기증한 10만 점이 넘는 보이스 관련 기록물과 사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일요일에도 큐레이터나 관장이 직접 나와 전시 설명을 해주는 등 미술을 통해 시민에게 봉사하고 소통하고 있다. 미술관과 연결된 허브 정원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리지엄’이다.

Place3 현대미술로 충만한 K20·K21

독일 서부에 자리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주립미술관으로 이미 1960년대에 20세기 유럽 모던아트와 1945년 이후 미국 현대미술 컬렉션의 토대를 완성해 모던아트 중심의 수준 높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주로 20세기 작품을 선보이는 K20(그라베 광장에 위치)과 21세기 작품을 선보이는 K21(카이저 호수에 위치), 2009년에 추가되어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슈멜라 하우스로 이뤄져 있으며 잭슨 폴록의 ‘No. 32’ 등이 대표 소장품이다. 도심 속 분주한 광장에 세워진 K20과 달리 K21은 ‘황제의 연못’ 주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 나무도 많아 도심이지만 한적하고 운치 있는 시골 마을의 무드를 자아낸다. K21에는 수십 년간 뒤셀도르프에서 작업을 하였고 교수로 있었던 백남준관도 자리하고 있다.

Place4 초원 위에 자리한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15분쯤 떨어진 노이스에는 한적하고 넓은 초원 위에 조각 같은 열다섯 곳의 미술관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홈브로이이히 박물관 섬이 있다. 동양미술과 서양미술,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전시할 뿐 아니라 작품설명을 달지 않아 작품 그 자체에 몰입을 독려한다. 입구에서 출발해 5분쯤 걸으면 만나는 첫 건물은 ‘탑’이라는 이름의 갤러리다. 투박한 탑처럼 생긴 붉은 벽돌 건물인데 내부는 군더더기를 없앤 정갈하고 깔끔한 흰색이다. 특이한 것은 갤러리 벽에는 아무 작품도 걸려 있지 않은 점이다. 텅 빈 갤러리 룸에는 천창에서 부드러운 햇살만이 내려오는 말 그대로 ‘빈방’이라 잠시 마음을 비운 사유에 빠져든다. 1994년에는 설립자인 하인리히 뮐러가 주위의 나토 군용 기지를 사들여, 제2의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을 추가로 건립하고 아티스트들의 아틀리에와 주거 공간으로 활용해 주목 받고 있다.

Place5 자전거를 타고 들리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네덜란드 훈더를로에 위치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세잔, 몬드리안 등을 상설 전시한 구 미술관 건물과 현대미술을 전시한 신 미술관 건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신미술관은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빔 크비스트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것인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미술관 건물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통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특히 신 미술관 입구는 벽면 전체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숲을 통과해 미술관에 들어서도 여전히 자연과 단절되지 않고 또 다른 자연 속으로 들어온 느낌을 선사한다. 소장품 가운데 네덜란드 정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판 스호턴의 ‘아침식사’와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등이 대표작이다. 야외 조각공원에서는 클래스 올덴버그, 마크 수베로 등의 매혹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