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님포매니악 볼륨2/ 드라마, 미스터리/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샬럿 갱스부르, 샤이아 라보프, 우마 서먼 출연/

123분/ 7월 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봐요. 당신은 이해 못 할 거라고 했죠?”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 구출된 주인공 조는 자신의 성적 오디세이에 동참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셀리그먼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마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관객에게 건네는 화두 같기도 하다. 분명 이 감독은 제정신이 아니다. 칸 영화제에서는 히틀러를 이해할 것 같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영화제에서 축출당했다. 그가 또 일을 냈다. 여자 색정광의 회고담인 4시간도 넘는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 조는 이미 2살 때 자신의 성기의 감각을 익혔다.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에 9명의 남자와 섹스하느라 다른 일은 꿈도 못 꿀 지경이다. 영화는 상영 내내 낚시, 다성악, 등반, 피보나치수열 등등을 통해 성을 은유한다. 때론 퀵줌과 핸드헬드(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를 써서 다큐멘터리처럼 화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미장센도 숨겨 놨다. 챕터마다 이름을 붙이고 액자식 구성을 시도하면서, 감독은 자칫 선정적일 수 있는 조의 이야기에 거리를 둔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볼륨1보다 그 내용이 더 파격적이다. 볼륨1에서는 조가 탐닉하는 섹스가 남녀의 정사에 국한돼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조롱이 이어졌다면, 볼륨2에서는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소아성애를 아우른다. 이들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다면 영화는 포르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포르노의 연출 방식을 뒤집어 거꾸로 인간의 특정 제도와 개념을 사색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조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만이 제롬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지녔고, 나머지 남자들은 다 알파벳으로 불린다. 즉 이 영화에서 제롬을 제외한 남자들은 완벽한 타자이자 대상일 뿐이다.

조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Joe)’라는 이름조차 ‘지저스’의 여성화된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가 막상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자 오르가슴을 잃고 괴로워하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신성성을 잃고 헤매는 예수의 수난사를 보는 것 같다.

조가 피학적인 성에 탐닉할수록 그러나 영화는 흥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느끼게 한다. 조에게 사디즘을 행하는 남자가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여자에게 어떤 애정도 없기 때문에 피학적이라고 느껴진다. 세상 어디에서도 안식을 못 얻는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매 맞는 장면에선 심지어 예수의 채찍질을 떠오르게 만든다. 결국 여자는 거울 속의 소녀를 쳐다보고는, 성중독자 모임에서 벌떡 일어서서 ‘내 추잡한 욕정을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조는 평생 아주 단순한 그것, 오르가슴만을 원했다. 조는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영혼을 상징하는 물푸레나무를 돌산의 정상에서 찾아냈다. 회고를 마친 여자는 쓸쓸히 ‘석양이 좀 더 아름답길 바랐다’고 말한다. 조 역할의 샬럿 갱스부르와 스테이시 마틴(젊은 조 역할)은 영화 내내 벗고 또 벗고 또 벗지만, ‘내 모든 구멍을 메꿔 달라’고 중얼거리는 이 여자의 ‘구멍’이 단지 성기에 국한돼 있었던 것일까.

여자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섹스했고, 아들을 잃고도 섹스했다. 마음 깊숙이 뚫려 버린 모든 구멍을 메꾸려 몸부림치는 한 여자의 절규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절절하게, 때론 도발적으로, 때론 슬픔으로 다가온다.

영화 ‘님포매니악’은 야하지 않다. 오히려 공허감과 외로움에 허덕이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