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진전의 블록버스터가 있다면 퓰리처상 전시가 아닐까.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1990년 퓰리처상 수상자 마이클 매커의 말을 실감케하는 사진으로 가득한 까닭이다. 2010년 여름, 수많은 인파를 모은 것은 물론 관람객들을 1시간 이상 대기하게 만든 놀라운 현상을 야기한 퓰리처상 사진전이 올 여름에도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45 성조기, 수리바치 산에 게양되다(Old Glory Goes Up on Mt. Suribachi) by Joe Rosenthal,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보도 사진의 미학은 때로는 잔혹하다. 실제하지만 짐짓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아프고도 아름다운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들은 때론 우리의 일상을 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2010년 한국에 선보인 퓰리처상 사진전은 서울에서만 22만명의 유료 관람객을 기록했고, 높은 기온으로 불쾌지수가 한껏 올랐던 여름에도 사람들은 1시간 이상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1998년, 2010년 이은 세번째 풀리처 사진전이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이 사진전은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의 보도사진 부문이 시작된 1942년 이후의 역대 퓰리처상 수상 사진들을 연도별로 소개하는 전시다. 각 사진에는 해당 장면을 포착한 사진기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 있어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연도에 따라 나뉜 사진을 바라보는 시간은 삶을 사유하는 시간일 뿐 아니라 역사를 장식한 굵직한 사건을 따라가는 인문학적 여행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조금 특별한 전시이다. 2010년 공개 되었던 145점에서 234점으로 작품 수가 확연히 늘었다. 그 뿐이 아니다. 퓰리처상 사진과 얽힌 다큐 및 수상자 인터뷰 등이 추가 구성 되어 그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한국전쟁 특별전으로 퓰리처상 수상작가 맥스 데스포의 사진 36전이 공개된다.

2014년 퓰리처, 이렇게 달라졌다

미공개 사진의 출몰

이번 전시에선 퓰리처상의 초대 수상작품부터 2014년까지의 모든 수상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2010년엔 공개되지 않았던 45점의 작품을 추가 구성했다. 1951년 한국 전쟁, 1969년 베트콩 즉결심판, 1973년 네이팜탄 폭격,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 장면 등의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것. 지난 20년간의 전세계 퓰리처상 사진전 투어 전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진들이니 유심히 살피자.

놓칠 수 없는 3편의 영상

전시장에는 3편의 영상이 흐른다. 충격의 순간(Moment of Impact)은 1998년 에미상 다큐부문을 장식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JFK의 저격범 오스왈드 총격사건을 촬영한 로버트 잭슨이 직접 사건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수상작가 인터뷰도 함께한다. 베트공 즉결심판을 찍은 에디 아담스, 4번의 퓰리처상을 받은 여성 사진가 캐럴 구지, 베트남 종군기자의 대부로 알려진 호스트 파스의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어 사진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마지막 영상은 ‘케빈 카터의 죽음(The Death of Kevin Carter)’이다. 케빈 카터는 살아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는 독수리가 굶주림에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수단 여자아이를 노리고 있는 사진을 찍어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가다. 그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어린아이를 먼저 돌보지 않았다는 윤리적 비난에 시달리게 되고 퓰리처를 받은 그 해 33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죽음은 현장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저널리스트의 숙명을 대변하는 사건이었다. 이 다큐는 케빈 카터가 수단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수작으로 아카데미와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대동강철교(Korean War) 1950 by Max Desfor, Courtesy of AP Max Desfor Collection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을 말하다

“한국인들은 전쟁의 시작만을 기념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맥스 데스포(MAX DESFOR), 1951년 수상자

폭격으로 뒤틀린 대동강 철교를 사력을 다해 탈출 하는 피난민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맥스 데스포를 기억하는가. 당시 퓰리처 위원회에는 이 사진뿐 아니라 한국전쟁 시리즈가 출품됐다. 이번 전시에선 AP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 협력해 맥스 데스포가 퓰리처 위원회에 출품했던 사진들과 미공개 사진에서 선별된 36점을 전격 공개한다. 이 사진들은 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50년 9월부터 12월에 이르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긴박했던 4개월을 담고 있다.

전시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수복, 평양탈환, 중공군의 개입, 흥남철수 등 총 4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이 전시의 제목이 상징하듯 전쟁은 여기에서 벌어졌지만, 과거를 돌아 볼 틈없이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조금 먼 일처럼 여겨진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맥스 데스포의 말을 그냥 지나치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일 것.

Interview 네이팜 소녀의 기적

베트남 - 전쟁의 테러(Vietnam - Terror of War) by Huynh Cong Nick Ut,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 1

닉 우트는 1973년 ‘베트남-전쟁의 테러’, 일명 ‘네이팜 소녀’라 불리는 사진으로 가장 젊은 나이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AP통신의 사진기자이다. 전쟁의 공포를 담은 사진 한 장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믿었던 형을(종군기자로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 따라 21살에 베트남전의 현장을 기록했다. 그들의 희망처럼, 폭탄투하 후 온몸에 화상을 입고 도망치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이 사진은 당시 나체사진을 싣지 못한다는 미국 AP통신의 규정으로 세상에 나올 수 없을 뻔 했으나, 베트남 AP사이공 국장이었던 호스트 파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싣게 되었다. 닉 우트의 한 컷은 시공을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알려주고 있다.

전시 상황을 사진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컷의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알려주는 사진으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

‘네이팜탄 소녀’를 찍을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

비행기가 내려와 네이팜 폭탄이 떨어졌다. 벌거벗은 소녀가 달려오며 ‘살려주세요’라 절규하는 사진을 찍은 후, 사진기를 내려놓고 곧장 그녀를 구했다. 이 사진이 전세계 알려지며 거의 모든 신문 1면에 실렸다. 그 후 ‘전쟁을 그만두자, 사람을 보호하자’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소녀는 그 사건 후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더불어 유엔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SNS의 발달로 사진의 의미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사건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사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SNS의 발달로 사람들이 많은 사진을 찍고 있다. 여러 컷의 사진 대신 한 컷의 강한 사진에 집중하길 권한다.

보도 사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 인가?

사건의 현장에서 보도 사진가로 살면서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다. 내가 기록한 이미지들이 평화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

기간 9월14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 1,2,3 전시실

문의 02-580-1300, www.pulitzerpriz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