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요즘 아이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매니지먼트가 초중고를 넘어 대학은 물론 직장까지 연결되고 있다. 직장 상사에게 부모가 전화로 어필을 하거나 부서를 바꿔달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해보지 않은 경험은 자칫 남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응석으로 비쳐질 수 있다. 착각하지 말라. 직장은 대학 선배가, 부모가 당신의 부족한 2%를 채워주던 따뜻한 기억의 그 장소가 아니다. 

능력이 조직을 우선하지 못한다

기획부 김예쁜 사원은 입사 1년차 신입이다. 세칭 일류대 졸업에 스펙 빵빵하고 외모까지 뛰어나 신입사원 연수 마칠 때는 각 부서에서 스카우트 쟁탈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김예쁜 사원은 부서에서 누구나 기피하는 인물이 되어갔다. 연말 인사 방출 대상 1호라는 소문도 돈다. 하루 아침에 신뢰도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그녀가 아직도 직장생활을 대학 시절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김예쁜 사원은 부장을 대학 때 동아리 회장, 차장이나 과장은 신입생 시절 4학년 복학생 선배 정도로 대한다. 부장의 업무 지시 시한을 어길 때도 있고 지각은 물론 근태에 대한 지적도 빈번하다. 그때마다 부장은 조용히 불러 타일러도 보고, 따끔하게 혼도 내보지만 김예쁜 사원의 반응은 한결같다.

“부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구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늦어진 것이예요. 다음부터는 잘할게요. 네? 이번 한번만 봐주세요. 그럼 부장님, 그렇게 알고 전 가겠습니다. 헤헤헤.”

마음씨 여린 부장은 막내 동생같은 김예쁜 사원의 애교 섞인 사과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넘어가지만 이를 바라보는 선배나 동료들의 속내는 부장과 똑같지 않다. 보다 못한 선배들도 그녀를 불러 타일렀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반응은 예상 외다. “아니 빡빡하게 왜 그래요. 살다 보면 지각할 수도 있고 또 급한 일이 생겨서 일을 내일 처리할 수도 있지요. 같은 부서에서 이 정도 편의는 서로 봐줘야 하는 것 아녜요?(자기들은 뭐 완벽하게 하고 있나? 투덜투덜)”

부서원들은 포기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니, 회사를 무슨 대학 동아리로 알아. 저렇게 제멋대로 굴면 조직이 어떻게 유지되겠어. 참 부장님도 너무 여리셔서. 차장님이라도 따끔하게 혼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만고의 진리 

총무부 이무정 사원은 부서에서 외톨이이다. 나름 실력을 갖췄지만 부서원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그의 불만은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입사 면접 때부터 해외영업부를 지원했다. 하지만 배치는 총무부. 그때부터 그의 불만은 시작됐다.

“인사 배치는 직원의 능력과 지원을 고려해야 하는데 제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어요. 난 총무부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그리고 배울 것도 없구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능률이 오르잖아요.”

그는 틈만 나면 동기가 있는 해외영업부를 들락거린다. 점심도, 때로는 염치 좋게 회식자리에도 참여해 총무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 결과 해외영업부에서도 이무정 사원의 출현을 반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요즘은 회식 자리에 따라가려 하면 동기로부터 냉정하게 내침을 당하곤 한다. 총무부원들은 그런 그를 아예 열외로 취급한다. 처음에는 몇 년 근무하고 순환보직으로 해외영업부로 배치 받을 수도 있다고 설득했지만 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오로지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이무정 사원, 그는 지금도 업무 시간에 외국어를 익힌다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부서일은 ‘나몰라’ 이다.

긴 레이스, 배우고 또 배우는 직장생활

직장 생활에 왕도는 없다. 누구나 시작은 똑같다. 오너의 혈족이 아닌 이상 신입부터 시작해야 하고, 부서 배치도 회사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즉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마라톤에 비유되는 장거리 레이스다. 출발은 빠를 수도 있지만 마지막 골인점에 들어오는 것은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다. 조직이란 여러가지 기능을 갖고 있지만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와 같은 역할도 해준다. 때로는 속도를 내라고 채찍질 하지만 또 어떨 때는 마음이 불안해질 정도로 속도를 늦추라고(돌아가라고) 하기도 한다. 마라톤의, 직장 생활의 목표는 인생 전체에서 직장 부분에 대해 자신이 정해놓은, 그것이 정년퇴직이든 39세이든, 그 목표 지점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신입 사원들은 이제 그 출발선에 서 있는, 미완의 존재일 뿐이다. 햇병아리라는 말이다.

군대생활을 경험한 남성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훈련소 3개월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되는 신입 병사를 보면 너무나 어려보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해 보인다. 세상에 그런 바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리버리한 존재다. 그가 사회에서 외국어를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스카이에 다니다 입대를 했든 마찬가지다. 새 군복은 남의 것을 얻어 입은 듯이 몸에 맞지 않고 눈의 총기도 없다. 초딩 때부터 해 온 행진에서조차 팔과 다리가 동시에 올라가는 영구 짓을 하다 된통 얻어터지기도 한다.

신병훈련소에서 조교들은 이런 말을 종종 쓴다. “사회에서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라. 여기서는 똑같은 훈련병이다.” 맞다. 어느 조직이건 그 조직문화에 익숙해지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영리한 직장생활의 지름길이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대학 동아리는 이해 관계 집단이 아니다. 그야말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원활한 선후배 간의 소통을 위해, 또 관심 분야가 같은 관계의 교집합이다. 서투르다고 방출하지 않고 모임에 늦었다고 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직장은 다르다. 그들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각자의 능력만큼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월급으로 지급받는 것이다. 직장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그를 부축해서 후방으로 탈출 시키는, 그야말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오늘의 직장에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낙오하면 죽는다. 한 사람의 부적응자를 구하기 위해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이 살벌한 전쟁터에도 웃음과 뜨거운 동지애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또한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았을 때만’ 그렇다.

김예쁜 사원이 퇴출되지 않을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마감 정신’이다. 출근 시간에도 마감이 있고 정규 근무 시간에도 마감이 있다. 업무 지시의 마감 시한은 톱니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부장이 마감을 지정한 것은, 김예쁜 사원의 마감과 부장이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업무가 그 시각에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김예쁜 사원이 그 시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조합의 기회는 늦춰지게 되고, 그것은 결국 직장 전체에 나쁜 일이 된다는 ‘조직의 특성’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못하겠다면 스스로 관두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다. 마감 정신도 없이 ‘우리끼리 왜 이래’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면, 결국 조직이 김예쁜 사원을 버릴 수 밖에 없다.

이무정 사원이 원하는 부서에 배치되지 못했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심통 부려봤자 그것을 안쓰럽고 귀엽게 봐줄 조직은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순환근무라는 것은 조직을 두루 알 수 있는 기회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한 사람만이 부장이 될 수 있고 사장도 하는 것이다. 이무정 사원은 우선 내가 처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본인은 총무부 1년차 사원일 뿐이다. 선배에게 저녁 술자리에서 푸념을 잠깐 늘어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선배가 당신의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일 당장 사표를 멋있게 던지고 나와도 될 정도로 물려받을 유산이 많지 않다면 1년차 사원으로서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업무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해외영업부는 총부부에서의 성과가 확연히 보이고 직장생활 조사나 면담이 있을 때 꾸준히 ‘원하는 부서로 해외영업부를 주장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물론 그런 마음을 총무부 동료들에게 내비쳐서도 안된다.

그들은 총무부 일을 재미있게 하는데, 옆 사람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계속 봐 줄 이유가 없다. 한 번의 실수나 투덜거림으로 회사가 1년차 당신을 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회사는 그런 당신을 주목하게 된다. 또 다시 같은 실수와 원망을 반복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