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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안달복달’ 걱정형이다. 외출을 나가서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느냐?” “무슨 일이 없느냐?”라고 확인한다. 해외여행을 떠나 제때 연락이 오지 않아도 안절부절못한다. 특히 ‘납치’나 ‘테러’ 관련 뉴스가 나오면 자식더러 당장 귀국하라고 아우성을 친다.
다른 하나는 ‘천하태평’ 방임형이다. 외출 나가서는 자유를 즐기라며 자식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오히려 전화를 자주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식들이 다 컸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알아서 잘 대처하리라 믿으며 자식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똑같은 부모지만 자식을 키우는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걱정형과 방임형은 조직을 이끌어가거나 작전과 계획을 짤 때도 아주 상반되게 나타난다. 이런 두 유형은 공자와 묵자, 노자와 장자 등 성인(聖人)을 이해할 때도 큰 도움을 준다.
노자와 장자는 인륜을 모르는 백성을 계몽시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려는 성인의 역할을 부정한다. 그러니 노자와 장자의 책에 성인, 후왕(侯王) 등의 용어가 나오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얼핏 생각하면 “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면,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어느 정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자와 장자는 독자의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성인’과 같은 계몽 군주나 개명(開明) 군주를 왜 언급한 걸까? 처음부터 다른 용어를 썼더라면 오해를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노자는 분명히 공자나 묵자와 마찬가지로 ‘성인’이라는 같은 표현을 쓴다. 하지만 그 뜻은 공자나 묵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사람마다 같은 말을 쓰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뜻으로 쓸 수 있다. 단지 글자가 같다는 사실에만 주목한다면, 그것은 노자를 이해하지 않고 오해하는 길이다.
공자는 성인을 철저하게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을 깨우치는 계몽의 주체’로 본다. 반면 노자는 사람이 특정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선(善)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본다. 따라서 노자의 성인은 “자,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돌격형 인물일 수는 없다.
“세상에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라는 금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들이 더더욱 가난해진다. 사람들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사람들 사이에 기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상한 것이 더더욱 많아진다. 법령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도적이 더더욱 늘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한다(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노자’ 57장)
공자나 묵자의 성인은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성인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가난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할 것이다. 반면 노자의 성인은 사람에게 “이쪽이야!”라고 특정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노자의 성인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나는 나서서 설치지 않지만 백성들은 스스로(저절로) 바뀌고, 나는 조용히 머물지만 백성들은 스스로(저절로) 제 앞가림을 하고, 나는 일을 벌이지 않지만 백성들은 스스로(저절로) 넉넉하게 살고, 나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지만 백성들은 스스로(저절로) 소박해진다(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노자’ 57장)
노자의 성인은 분명히 사람들 앞에 서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어디로 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없는 존재와 같다. 욕망을 드러내지도, 일을 벌이지도 않고 조용히 있기 때문에 마치 어디에도 성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때문에 독자는 성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게끔 조종하는 음모(陰謀)의 모사꾼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백성들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추적할 수 없는 숨은 권력에 의해 통제를 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노자는 성인 또는 후왕을 도(道)에 따르는 사람, 또는 도와 일치되는 사람으로 본다.
“도는 늘 나서서 설치지 않지만 모든 일이 술술 풀려가지 않는 것이 없다. 만약 후왕이 도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저절로) 바뀔 것이다(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노자’ 37장)
노자는 분명히 세상을 통치하는 후왕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자가 말하는 후왕은 공자나 묵자가 말하는 ‘사랑과 공익을 위해 백성들을 계몽하는 주체’는 아니다. 이 후왕은 남들 앞에 나서서 애써 그들을 특정한 곳으로 이끌어가려고 하지 않는 도와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후왕 또는 성인은 도의 인격화일 뿐이다. 따라서 도가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끌어가려는 음모가 아니라면 성인 또는 후왕도 음모의 모사꾼일 리가 없다.
이렇게 도와 일체된 성인이기에 도와 어긋나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성인은 억지로 하지 않는 일에 자리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옮긴다. 만물은 스스로(저절로) 자라지만 말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가지려고 하지 않고, 일하더라도 뻐기지 않고, 공이 이뤄져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처럼 자리에 머물지 않으므로 떠나지 않는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노자’ 2장)
노자가 세상에서 ‘성인’의 자리까지 빼버렸다면 애초부터 ‘계몽 주체’를 말했다는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때문에 노자는 성인 또는 후왕을 공자나 묵자와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 결과 성인은 계몽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무위(無爲)에 따르는 새로운 특성을 갖게 됐다.
이제 성인만이 그 의미가 바뀐 것이 아니라 하늘, 백성, 상하(上下), 도 등도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된다.
하늘은 사람이 먹고 살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서 비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기의 작용으로 비가 내릴 뿐이다. 백성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기 때문에 성인의 지도를 받아서 걸음마를 떼야 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저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주체다. 상하는 위와 아래라는 위상에 의해 세력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임시적으로 정해지는 위치일 뿐이다. 도는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하는 선천적인 이념이 아니다. 상반되는 힘의 작용으로 인해 생명이 지속되는 힘일 뿐이다.
노자가 공자나 묵자와 다른 철학을 한다고 해서 모든 말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었다. 노자는 자신 앞에 있었거나 같은 시대의 말을 썼지만 그것을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에서 새롭게 썼다. 우리가 같은 언어의 사용에 속아 공자나 묵자의 ‘성인’과 노자나 장자의 ‘성인’이 같으리라고 지레짐작하면 안 되는 이유다.
여기서 두 ‘성인’은 개념의 의미만 다른 게 아니라 그 사회적 위상도 다르다.
공자와 묵자의 성인은 계몽의 주체기도 하고 계몽으로 일궈낸 업적에 의해 당연히 지배자의 위치를 차지한다. 학문권력과 정치권력이 하나 되는 ‘성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자의 성인은 계몽 주체가 아닐 뿐더러 백성에 대한 지배자로 군림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역할 때문에 성인 노릇을 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즉 사람이 각자 다른 위치와 역할로 세상에 참여하는데, 성인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노자의 도는 ‘보이지 않는 손’과 닮았고, 성인은 그 손을 실루엣처럼 나타낸 또 다른 손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즉 노자는 도가 세상에 작용하는 과정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성인의 인격을 빌려 온 것이다.
오늘날 부모가 노자를 닮는다면, 자식들을 키우며 아등바등 않고 “내버려둬도 잘하겠지!”라며 여유를 가질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여유를 가질 만할 때도 너무 안절부절못하진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 일러스트 :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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