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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정 없는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의 산책을 생각해 볼 만 하다. 어릴적 살았던 동네, 아내, 남편과 즐겨 찾던 데이트 거리, 친구가 이사 갔다는 낯선 동네 등 어느 곳이든 좋다. 성수동처럼, 오래된 풍경이 살아있고, 특별한 주제가 있는 동네라면 아무 인연 없어도 천천히 걸어 볼 만 하다.
지하철 2호선을 탔다. 성수역이 궁금했다. 지하철의 지상 구간은 고가철교로 되어 있고 그것은 도시의 특별한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성수역은 주변의 공장 지역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로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성수역 자체가 ‘슈스팟’이라는 박물관 수준의 전시를 매일 열고 있고, 성수동 일대의 오래된 구두 작업장, 가죽공장, 관련 소품 공장, 인쇄소, 철공소 등은 그 자리에서 폐허의 미학을 발산하고 있다. 성수동 공장 지대는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여러가지 감흥이 일어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거기에 개성이 분명한 카페와 성수동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상점, 예술가의 작업실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시간 여행의 기회를 주곤 한다.
성수역에서 내려 플랫폼을 빠져나와 바로 아래 역사 2층으로 내려간다. 개찰구를 지나면 1번, 4번 출입구, 또는 2번, 3번 출입구로 이어지는 130m의 긴 통로공간이 등장한다. 그곳에 ‘수제화 산업의 메카로서의 성수동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를 순서대로 보고싶다면 전시 안내문이 붙어 있는 1, 4번 출구 쪽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전시는 네 가지 소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구두지움’은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를, ‘슈다츠’는 수제화의 메카가 된 성수동 이야기를, ‘구두장인공방’은 장인들이 만드는 수제화 제작 순서 등과 구두 상식을, ‘다빈치구두’는 구두와 얽힌 이야기를 통한 상상력을 유도한다. 하나하나 찬찬히 관찰하노라면 수제화 제작의 기본이 되는 ‘라스트(Last-구두 디자인을 위한 신발틀)’, 맨손으로는 어림도 없는 가죽 손질을 돕는 ‘고슬’, 가죽으로 뒤덮인 재봉틀 등 구두공, 수제화 장인들의 손때와 시간을 느끼게 하는 도구를 통해 수제화의 가치를 느끼게 됨은 물론 그동안 모르고 지낸 구두 관련 지식을 확인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구두와 관련된 새로운 에피소드들도 전시되어 있다. 여성 패션의 대명사인 하이힐은 원래 남자만의 소유물이었다. 중세 이전 승마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말과 물아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부츠가 등자에 고정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꼭 뒷굽에 힐을 박아야 했던 것이다. 17세기에 태양왕이자 오늘날 명품을 산업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루이14세가 승마용 부츠에서 착안한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다. 황제의 파격적 구두 패션을 본 귀족들은 당장 따라하기 시작했고 곧 유행으로 번졌다. 작고 귀여운 발을 비유하는 ‘신데렐라 사이즈’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동화에서 유래한 표현인데, 요즘은 이 말을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칫 ‘내가 왕자를 만나 팔자나 고치려는 여자로 보이냐’는 의외의 반응도 적지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구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서울역이 완공된 이후였다고 전시는 기록하고 있다. 서울역에는 대형 물류 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반출된 가죽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역의 옆구리 쯤이라 할 수 있는 염천교에 구둣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국전쟁과 전후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중고 군화가 신사화로 재가공되면서 염천교는 더욱 큰 수제화 시장이 되었다. 개화기 얼리어답터의 로망이었던 구두는 1970년대에 이르서는 빠듯한 살림에도 꼭 한 켤레는 있어야 하는 일종의 사치품이 되었다. 1974년 한국의 짜장면 한 그릇 값이 50원이었을 당시 수제화 한켤레 값이 남화는 1만4000원, 여화는 9000원이었다. 1980년대에는 명동을 중심으로 ‘싸롱화’가 유행했다. 모두 수제화였다. 칠성제화, 쏘니화점 등에서 만드는 수제 싸롱화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어쩌다 세일이라도 할라치면 명동파출소에서 경찰관이 나와 거리 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성수동을 산업으로서의 구두 생산지로 이끈 것은 금강제화였다. 1990년대에 금강제화 공장이 이곳에 들어섰고 이어서 크고 작은 공장들이 문을 열면서 이곳은 구두, 피혁, 부자재 공장 지역이 됐다. 당시 성수동에 입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중견 구두공들은 이제 경력 50년을 바라보는 구두 장인으로 성수동의 문화를 쌓아가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본 뒤 1번 출구 계단을 내려가면 교각 아래에 ‘from SS 프롬 에스에스’, ‘서울성수수제화타운 SSST’, ‘구두와 장인’ 등 수제화 전문점들이 있다. ‘프롬 에스에스’는 수제화 공동 브랜드 매장이다. 일반 수제화 매장, 리폼과 수선 매장 등 7곳의 매장이 동일한 숍 디자인으로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이 매장들은 수제화를 만들기 위한 인력, 시설, 규격 등에 대해 성동구청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업체들이다. 이들은 백화점 유명 브랜드에 수제화를 납품하고 있으며 소재, 가공법, 디자인 등에서 손색 없는 전문 수제화 업체들이다. 여자 구두는 14만원 안짝, 남자 구두는 20만원 안짝에 맞출 수 있다. 이곳에는 국내 수제화 1호 명장도 문을 열고 있는데, 가격은 일반 수제화에 비해 높은 편이다. 수제화는 세상에 하나뿐인,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품 가치가 있다. 그래서 결혼식, 특별한 기념, 선물 등으로 이용되곤 하는데, 성수역에 수제화 전문 매장이 생긴 이후 ‘구두 맞추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디자인과 소재를 꼼꼼하게 상담해서 맞추면 멋과 편리함, 그리고 오랜 수명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다. AS도 판매한 매장에서 직접, 즉석에서 무료로 해준다. 부자재가 없는 경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수제화를 맞추고 완성품을 받기까지의 시간은 매장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1일차 라스트 깎기: 이미 나와있는 라스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최고급 수제화는 라스트를 새로 깎는 일부터 시작한다 – 2일차 디자인: 라스트를 테이핑하여 그 위에 디자인을 한다 – 3일차 패턴메이킹: 라스트에 디자인 된 입체 형태를 패턴지에 오려 그린다 – 4일차 재단: 가죽 겉면에 패턴을 올려놓고 제도용 은색펜을 사용해 패턴의 외곽선을 옮겨 그린다. 그리고 재단한다 – 5일차 갑피: 구두 윗부분에 해당하는 가죽을 재봉질한다 – 6일차 저부: 라스트에 중창을 붙이고 갑피를 씌운다. 굽을 부착한다 – 7일차 검사 후 출고’ 등의 순서를 거친다. 세상에 하나 뿐인 수제화이니만큼 조급하게 받으려하지 말고 그들의 솜씨를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도 소비자의 지혜라 할 수 있다. ‘프롬 에스에스’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8시까지이며 연중 무휴다.
성수역 교각 밑 수제화 매장을 둘러보고 길을 건넌다. 3번 출입구에서 연결되는 ‘성수이로’는 성수동이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엿볼 수 있는 길목이다. 주황색 방청페인트가 돋보이는 높은 철대문, 뒤죽박죽으로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질서 속에서 엉켜있는 복잡한 전깃줄들, 여간해서 보기 힘든 벽돌 건물들, 행택(라벨, 테그), 귀돌이(명함 등 인쇄물 귀퉁이를 둥글게 재단하는 것), 타공(구멍 뚫기), 오시(접을 곳에 미리 압력을 가하는 작업) 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해석 불가한 단어들로 채워진 재단집 인쇄 후가공 업체의 간판, 빈티지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래피티, 골목에서 불쑥 보이는 지게차 등등의 풍경은 성수동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 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 가운데는 이런 빈티지 풍경 외에도 특별하고 멋진 문화 카페들도 한 몫 하고 있다.
커피전문점이다. 에스프레소, 롱블랙, 플랫화이트, 쇼콜라 57.8 등 유니크한 스타일의 커피와 마리아쥬 프레르 홍차, 레드라이트, 그린라이트 등 과일 블렌딩 쥬스도 맛볼 수 있다. 프랑스 정통 빵 ‘라몽떼’에서 만드는 ‘빵 오 쇼콜라’, ‘산딸기 크루아상’, ‘랑도뇌르’, ‘살구타르트’ 등 맛있고 촉촉한 빵도 판매한다. 빵 코너에서 직접 접시에 담아 주문 데스크로 가면 된다. 자그마치가 매일 사람들로 채워지는 또 다른 이유는 여유 있는 공간과 천천히 음미해 볼 만한 잡지들, 그리고 드라이플라워가 연출하는 다소 거친 분위기 때문이다. ‘자그마치’는 부사로 ‘예상보다 훨씬 많이, 또는 적지 않게’를 뜻한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88 남정빌딩 1층 영업시간 평일 11:00~22:00 / 주말 12:00~22:00 문의 070-4409-7700
식사와 차와 인테리어 소품이 있는 카페다. 구역 별로 각기 다른 분위기와 테이블을 연출해 취향에 맞는 좌석을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계절이 싱그러워진 만큼 역시 길거리 쪽 오픈 공간이 인기다. 전체적으로 편안해서 오랜 시간 앉아 대화하기 좋아 보인다. 식사는 칠리새우오므라이스, 치즈커리덮밥, 치즈그라탕, 크림파스타, 토마토파스타, 샥슈카(튀니지 산 중동식 브런치), 파니니, 샌드위치, 샐러드, 피자 등을 맛볼 수 있다. ‘치즈케익빙수’, ‘요거트 베리베리 빙수’, ‘밀크팥빙수’, ‘콩떡빙수’ 등 특이한 빙수도 기대되는 메뉴다. 평일 11시부터 2시까지 제공되는 런치세트로 인기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69 영업시간 09:00~22:00 문의 02-462-6780
이 동네에서 ‘파스타 쫌 하는, 값도 착한 집’으로 소문난 카페다. 런치 세트메뉴(11:30~16:00)가 인기인데, ‘음식+피자+아메리카노 또는 탄산음료’ 세트를 2인 1만9500원, 3인(음식 두 가지 선택) 2만9500원, 3인(음식 세 가지 선택) 3만9500원에 맛볼 수 있다. 메인 요리로는 마레 토마토, 마레 칠리, 베르두레, 아라비아따 등 흔하거나 특별한 파스타와 리조또, 그리고 고르곤졸라, 마레 팬 등 피자가 있다. 샐러드도 서너 가지 있다. 홀 구석에 드럼이 앉아있길래 물어보았더니 ‘5월 쯤 라이브공연이 열릴 예정이다’라고만 대답했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75 영업시간 08:00~22:00 문의 02-464-3350
커피와 꽃을 개념으로 하는 카페다. 커피, 마리아주 마르코폴로 등 차, 반숙 카스테라 등 빵, 맥주와 젤라토를 맛볼 수 있다. 검은 벽, 널찍하고 높은 천장, 고전을 떠올리는 서가, 격자무늬의 빈 벽 등에서 이름이 주는 철학적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이곳은 플라워 카페이기도 하다. 입구와 곳곳에 서 있는 꽃다발과 꽃꽂이들은 필로소피를 찾는 사람들의 기분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실제로 꽃을 팔기도 하고 수강생을 모아 레슨을 하기도 한다. 레슨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www.fleurbobe.com’에 들어가 보면 된다.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65 협성빌딩 영업시간 평일 08:30~23:00 / 토요일 11:00~23:00 / 일요일 13:00~22:00 문의 02-466-8082
[참고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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