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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찜통더위가 예년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음식으로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옛날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을 강조했지만 진짜 더울 때는 뜨거운 음식 먹기도 고역이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
허리띠 졸라맨 채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고 앉아 있자니 더위에 발광할 것만 같아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는 당나라의 시성, 두보의 시 구절이다.
이럴 때 먹을 만한 음식이 초계탕이다.
살얼음 언 시원한 닭고기 육수에 식초와 겨자로 간하고 가늘게 찢은 닭고기를 먹고 난 후 냉면처럼 메밀국수 말아 먹으면 찜통더위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초계탕은 문자 그대로 보양식이다. 주요 재료가 여름에 좋은 닭고기다. 음양오행으로 봤을 때 닭은 예로부터 양기가 넘치는 동물이라고 했다. 여름은 양의 기운이 풍성한 계절이니 양기 강한 닭고기로 기운을 보충하면 좋다.
초계탕의 간을 맞추는 식초 역시 약방의 감초처럼 음식 만들 때 빠지지 않는 재료지만 사실 그 이상이다. 옛날 사람들은 식초를 약으로 사용했다. 인류가 만든 최초의 조미료로, 고대 의학서에는 식초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위와 간을 보호해준다고 나온다. 또 다른 재료인 겨자 역시 코를 톡 쏘면서 입맛 돋우는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을 소독하는 기능도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초계탕을 여름 보양식으로 꼽았던 것인데 알고 보면 초계탕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다. 평범한 여름 보양식 정도가 아니라, 조선시대 왕실 어른들이 특별히 챙겨 들었던 요리다.
조선시대 궁중 연회 잔칫상 왕실 기록을 보면 초계탕이 모두 13차례 나온다. 그런데 그중 두 차례를 제외하면 전부 왕과 대왕대비, 왕비의 생일잔치에 초계탕이 차려졌다. 나머지 두 차례도 한 번은 불타버린 임금의 침실,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재건을 축하하는 잔치였고 또 다른 한 번은 왕이 60세를 앞두고 노인 대접을 받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된 것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강녕전 재건 기념 잔치를 빼고는 종합적으로 왕실 어른의 생일과 관련이 있으니 초계탕은 보양식 중에서도 특히 만수무강의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왕의 침실인 강녕전은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뜻에서 강녕전이다. 강녕전 재건 기념 잔치 때 초계탕을 먹었으니 초계탕을 먹으며 왕의 장수를 빌었을 듯싶다.
기록으로 보면 왕실 어른 중 생일날 초계탕을 처음 받은 이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다. 혜경궁 홍씨는 환갑이 되던 해 생일상을 두 번 받았다. 사도세자 무덤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 가서 치른 회갑연에도 초계탕이 차려졌고, 진짜 생일 잔칫상에도 초계탕이 올랐다. 효자로 소문난 정조가 어머니 환갑에 특별히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초계탕을 차린 것일 수도 있겠다.
생일에 초계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임금은 고종이었다. 노인이 된 것을 기념하는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축하하는 잔치를 포함해 생일잔치에 모두 여섯 차례 초계탕을 차린 것으로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1897년 이후다. 이전에는 왕비나 대왕대비의 잔칫상에만 차려졌지 왕의 잔치에는 없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초계탕이 황제의 음식은 아니었을까.
때마침 요즘은 주변에 초계탕, 초계국수집이 쉽게 눈에 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 일러스트 :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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