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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란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을 칭하는 단어라는데, 요즘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다. 뿔테 안경과 수염이 이들의 상징적인 이미지이며, 패션은 ‘차려 입지 않은’,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일’이어야 한다고…. 어렵도다! 하지만 ‘건강식, 유기농, 셰어링, 가치 있는 삶,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 정도는 나름 갖고 살고 있는 지구 여행자이니, 나 또한 어설픈 힙스터의 축에 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다르게 여행하고 싶은 ‘힙스터’를 위한 도쿄, 요코하마 여행기다.
아오야마 그 동네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도쿄 시내까지 30분 거리인 하네다 공항으로 왔어야 했지만 이미 나리타로 가는 티켓을 산 후라 어쩔 수가 없었다. 후배 Y가 걱정 어린 문자를 보내왔다. “나리타 3번 터미널에서 2번 정류소에 가면 도쿄역, 긴자역까지 1000엔에 가는 버스가 있어요. 그걸 타고 긴자역에 내려 메트로로 갈아타고 오모테산도역에 내리면 돼요.” Y는 도쿄에 사는 요리연구가다. 그녀의 조언으로 1시간 5분만에 긴자까지 일사천리로 왔다. 전 세계 적지 않은 도시의 지하철을 섭렵했지만 ‘도쿄에서 지하철 타기’는 아직도 최고로 어려운 과제다. 도쿄 사람들 역시 매일 다니는 코스가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매번 검색을 해야만 노선을 제대로 알 수 있다니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위로를 해 본다. 긴자역에서 메트로로 환승하고 얼마 후 오모테산도역에 무사히 도착, 나가기 전 역무원에게 길을 물었다. “코뮌Commune 264를 가는데요?” 주소를 대니 그들은 손짓발짓으로 출구를 친절히 알려준다.
아오야마! 그 동네는 도쿄의 소문난 부촌이다. 같은 부촌이라도 긴자와는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미나토 디스트릭트에 있으며 시부야, 신주쿠, 롯폰기, 아카사카 등과 접해 있다. 특히 이 동네와 오모테산도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산책을 좋아한다면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최신 유행의 것들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아오야마는 도쿄 올림픽 전후로 디자이너들이 운집하기 시작하면서 패션, 카페, 쿨한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패션을 이야기하자면 아오야마는 하라주쿠처럼 와일드하고 실험적인 패션을 볼 수 있거나, 톡톡 튀는 곳은 아니다. ‘패션이 자란 곳’이란 명성에 어울리게 클래시컬하고 엘리건트한 명품 부티크의 세컨드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다(그들의 첫 번째 숍은 대부분 긴자에 있다). 긴자가 럭셔리 쇼퍼들의 성지라면 아오야마는 힙스터들에게 좀 더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느티나무 가로수와 어우러진 건축의 패션하우스들과 골목 안 소박한 식당과 양식 레스토랑, 와인바들의 대비가 우아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우리나라 가로수길 같은 한 때 ‘핫’ 했던 곳들이 이상하게 변모해 가는 모습과는 다르게 아오야마는 세월이 쌓이면서 자부심도 점점 높아져 가는 곳이다.
아오야마의 이색 공간
도쿄의 가장 유니크한 숙소 중 손꼽히는 캐러밴 도쿄(Caravan Tokyo), 사실 이곳이 궁금해서 아오야마에 숙소를 잡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코뮌Commune 246’ 이란 이상한 주소 하나 달랑 들고, 트렁크를 끌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바퀴가 튼튼한 가방을 고르길 잘 했다. 그리고 짐도 가볍게 꾸리길 정말 잘했다.’ 힙스터들은 리무진을 타진 않지만, 절대 스타일은 구기면 안되니까. 비록 이 번쩍거리는 리모와 가방이 호스텔에 머물지라도 말이다.
역에서 100m 남짓 걸었을까? 드디어 ‘Commune 246’ 간판이 보였다. 그것은 아오야마를 대표하는 광장이자 골목이자 지역 정신을 뜻하는 이름이다. 광장에 들어서자 마자 먼저 ‘캐러밴 도쿄’를 두리번거린다. 카페와 인디안 식당 사이에 난 작은 길로 들어서니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예쁜 카페, 바, 레스토랑, 그리고 작은 무대, 쿨한 음악, 맥주잔을 든 사람들! ‘아, 정말 완벽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의 호텔은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가 내 트렁크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차 한 대를 가리킨다. 맞다.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그 회색 밴, 그 밴이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 그 한가운데 ‘주차’되어 있었다. 마치 홍대앞 주차장 거리 한가운데 떡 하니 캠핑밴(호텔)이 주차되어 있는 모양새, 나는 그 밴 안에서 번쩍거리는 불빛들을 커텐으로 가리고, 자야 하는 거였다.
“10시 넘으면 조용해지니 걱정마세요.”
나를 기다리고 있던 주인, 사토루상(그는 완벽한 힙스터의 룩을 하고 있었다. 수염, 모자 그리고 무심한 듯 시크한 패션…)은 이 공간과, 이 희한한 숙소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곳은 기존의 호텔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숙박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여행하고 살았던 친구들과 같이, 캠핑밴을 호텔로 꾸며 이것을 도심 한가운데인 아오야마에, 그리고 가장 트렌디하고 젊은 구역인 ‘코뮌 246’에 주차했다. 주로 크리에이티브한 직업군, 호기심 충만한 여행자들이 좋아한다. 파크하얏트에 머무는 동급 고객층들이 우리 숙소를 선택한다. 커뮌 246은 도심 속의 캠핑이란 우리 호텔의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 2년 동안 이곳을 대여 중이다. 2년 후? 글쎄, 이 밴이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또 다른 재미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겠지.”
이동이 가능한 호텔이라! 밴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좁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일본 장인들이 머리 써서 설계했다. 욕실, 온수, 음악, 슬리퍼, 우산, 옷걸이, 책상, 커피와 차, 그리고 와이파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다음날엔 지인이 놀러 왔다. 이 숙소가 너무나 궁금했다면서… 일본인인 그의 눈에도 이 방 한 개짜리 이상한 호텔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왜 이 좁고 불편한 곳에 굳이 왜 하룻밤에 150달러나 주고 머무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현지인이 이끄는 대로
나를 위해 야무지게 시간을 비워둔 후배 Y를 따라 나섰다. 목적은 밥. 현지에선 현지인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답이다. “숙소 옆에 마침 오래된 소바집이 있어요.” 그녀가 나를 인도한 곳은 ‘고토 마츠다야’란 소바집, 특별해 보일 것은 없었지만 줄 서서 먹는 아오야마의 명소다. 꽉 찬 소바 한 그릇 먹고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를 천천히 산책했다. 프라다, 까르띠에, 끌로에, 이세이 미야케 등의 패션 하우스들도 멋졌지만 골목 안 상점마다 저마다 꾸민 작은 화분 정원들이 기쁜 마음의 산책길에 흥을 더 해 주었다.
아오야마에서는 아카사카도 이웃 마을이다. 아카사카는 교통이 편리하고 모든 것에 인접해 있어 베이스로 하기 좋은 곳인데 말 나온 김에 이 곳에 위치한 힙스터를 위한 숙소 하나 더 소개하겠다. ‘료테이’ 를 개조해 만든 트렌디한 호스텔, ‘카이Kai’다. ‘료테이’는 ‘일본의 전통 고급 식당으로 게이샤들이 서비스를 해주던 곳이며 현대에 와서는 고위층이나 CEO들의 비밀스런 비즈니스 회동 시에 자주 이용되던 그런 장소’ 란다.
상업지구인 아카사카엔 한때 이름 날리던 료테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비어있는 곳들이 꽤 있다. 따끈따끈한 호스텔 ‘카이’는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닌 룸메이트끼리 의기투합, 료테이를 ‘힙’한 숙소로 변모시킨 곳이다. 서핑을 하며 전 세계를 누빈 그들이 글로벌 여행자의 안목을 가지고, 일본의 가장 전통적인 공간을 초현대적으로 변모시켰다. 200년이 넘은 오래된 조명을 그대로 살려 계단에 달아 놓은 것, 신경 써 가꾼 단아한 초록 정원, 다다미방의 느낌이 살아있는 벙커 베드와 하얗고 폭신한 호텔식 침구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픈바와 테이블이 놓여진 호스텔 1층은 캐주얼한 식당으로 외부인들도 드나들 수 있다. 3만원 정도의 가격대, 혼자 여행하는 싱글 트래블러라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이런 공간에서 숨을 쉬면 현재와 과거의 장면들이 교차된다. 내가 머무는 공간에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숙소라면 여행은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다음 행선지는 아오야마에서 멀지 않은 다이칸야마의 ‘티 사이트(T site)’였다! ‘잉여로운 시간을 창출하는 곳’이란 표현에 백번 공감했다. 여행자의 발걸음을 느리게 느리게, 심하면 하루 종일 멈추게 하는 이 곳은 츠타야 서점에서 만든 편집 공간이다. 일본 아주머니들의 브런치 장소 아이비플레이스, 사라베스 등이 있어 이미 화제가 되어 있는 곳이며 12개의 흥미로운 공간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멀티플레이스다. 애견미용실, 편의점, 애완용품매장, 완구점, 자전거숍, 카메라전문점, 정원, 여행사까지.
츠타야는 마쓰다 무네야키 회장이 1983년 오사카에서 시작한 서점이다. ‘책, 음악, 영화를 통해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창업이념을 구체화한 곳이다. T자형 벽돌이 층층이 겹쳐있는 모양의 외관은 아이덴티티를 살리며 건축적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1층을 지나 츠타야 서점의 2층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그리움 새록새록 돋는 옛날 잡지, 해외 잡지. 예술 서적 등에 둘러 싸여 커피와 맥주,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미술, 디자인, 사진, 인테리어, 건축, 인문 분야의 전문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외국잡지 및 예술잡지들이 촘촘히 꽂혀있고 백 넘버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마냥 늘어져 이 곳에 머물고 싶었다. 문구명가 제품들 만날 수 있는 곳은 자제력 부족한 사람들은 접근 금지다. 여행비 다 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요코하마, 나만의 리스트
요코하마 상점가
요코하마는 도쿄에서 하루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동쪽으로는 도쿄만에 접하고 있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일찍부터 일본과 세계를 연결해 왔던 항구도시란 멋진 스토리도 가지고 있다. 요코하마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본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시 야경, 차이나타운에서의 맛집 탐험, 외국인 거류지였던 야마테에서 이국적인 정취 느끼기, 크루즈를 이용한 항구관광, 매립지에 만들어진 요코하마의 새로운 얼굴 미나토미라이21 방문하기 등 리스트는 끝이 없지만, 잠깐! 이건 너무 여행자스럽지 않은가? 애써 리스트를 다 지우고 그 동안 요코하마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나만의 리스트, 딱 한 곳만 제대로 보기로 했다. 그걸로 이번 요코하마 여행은 충분하다.
Y 따라다니기는 요코하마까지 이어졌다. 7년간 요코하마에 살았던 그녀는 내게 보여줄 게 많다며 흥분했다. ‘일단 먹자’며 들어간 멋쟁이 거리 모토마치 상점가의 한 프렌치 레스토랑.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폴폴 풍기는 작고 귀여운 프렌치 레스토랑의 3코스, 4코스 런치가격은 이 가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싸고 맛있었다. 속이 편안해지는 엄마 손맛, 위선과 잘난 척이 없는 착한 맛, 역사가 묻어나는 여유로운 맛이었다. 저녁식사는 야경이 근사한 미나토미라이21 지역에서 했다. 쇼핑센터들은 바쁘지 않았고, 창 밖의 바다, 콘서트가 일상인 광장을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고, 돈가스도 먹고, 히타치노 네스트 맥주도 마셨다. 현지인의 일상을 나누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근사했던 오후였다.
미나토미라이 21 지역의 멋진 호텔들을 다 뒤로 하고, 그 날 밤 내가 향한 곳은 ‘고토부키’, 나만의 요코하마 리스트로 향했다.
요코하마 도심에서 불과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고토부키는 도시빈민지역이다. 이 곳엔 2차 대전 후, 항만업에 종사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쪽방촌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는데 그 수가 무려 8500개나 되었다고 한다. 2005년 즈음 이 거리가 깔끔해지고 해외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인 여행자, 대학생들도 찾으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주민들의 태도까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 지역의 남아도는 쪽방들을 호스텔로 바꿔 관광객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한 주인공은 사회적 기업 ‘고토랩koto-lab’이다. 나는 몇 년 전 고토랩의 ‘오카베 도모히’ 대표를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스토리에 꽤 감명을 받았던 터라 이번 여행 리스트에 고토부키를 넣은 것이다. 오카베 도모히 대표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지역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호스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2005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맞추어 호스텔을 열었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가가 되었다.
고토부키는 요코하마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 중 하나인 모토마치 상점가에서 길을 몇 번만 건너니 나타났다. 코토랩의 본거지,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를 찾아가긴 그리 어렵진 않았으나 후배는 연신 이런 곳에 혼자 가도 괜찮겠냐며 걱정을 했다. 난 이미 방까지 예약해 두었다. 3만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호스텔 리셉션에서 안내 받은 곳은 맞은편에 있는 건물 4층이었다. 열쇠로 문을 돌려 여니 정말 작은 방이 나타났다. TV, 옷걸이 미니 냉장고와 이불 한 채가 놓여져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작은 방이었다. 한 방에 여러 명이 자는 호스텔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독방이 아닌가? 위생 상태도 양호했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었는데, 리셉션에선 동네 목욕탕을 이용해도 좋다며 마을 지도를 나누어 주었다. 그들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방식이다. 거리엔 선한 인상의 노인들이 무료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드문드문 보였을 뿐 대체로 조용했고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무서운 슬럼가 인상은 받지 못했다. 고토랩은 버림받은 한 지역이 창조적인 방향으로 진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증거가 바로 요코하마의 고토부키다. 조금만 더 대담했으면 대중 목욕탕까지 갔을텐데.
돌아오는 길, 나리타로 가는 직행버스에 올라 생각했다. 가까운 곳이니 더 자주 와도 되겠다. 쇼핑은 없었지만 도쿄, 요코하마의 좀 다른 모습을 본 것, 그리고 사람들을 만난 여행, 생각을 준 여행이었다. 이미 나는 다음 번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 조은영 여행작가(㈜어라운더월드)/ photo by Y.DEGUCHI (카이호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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