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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래 명멸한 수많은 제국과 국가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역사학자들은 서양의 로마제국과 중국의 당나라를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로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서양 역사의 주류를 형성했고 당나라는 풍부한 자원, 명석한 군주의 안정적 통치, 외국과의 문물 교류로 인한 부의 축적 등으로 태평성대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왕조이면서도 도둑이 없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가져가는 이가 없는 평화시대의 기틀을 세운 주인공은 두 번째 황제인 태종 이세민이다. 그는 ‘정관의 치’라는 정치관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왕도정치를 실행에 옮긴 성군이다. 아버지인 고조 이연을 도와 당왕조를 창업했고 또한 황제가 되어 재위 23년 내내 어질고도 공정한 정치로 당왕조 300년의 초석을 마련했다. 특히 당 태종 이세민에게는 막강하고도 유능하면서도 충성스런 참모들이 많았다. 방현령, 두여회, 위징, 왕규, 장손무기 등이고 이 중에서도 방현령은 태종과는 물과 물고기 같은 사이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군신관계였다.
훗날 당태종은 방현령을 “후한 시대를 연 광무제의 최고 공신인 등우와 같은 존재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방현령은 578년 저주의 임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북제나라의 관리를 지낸 명문가. 방현령은 가문의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많은 학자와 교류를 하며 지냈고 남다른 재주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넓힐 수가 있었다. 18세에 진사에 합격해 수나라의 관리의 길에 들어섰지만 방현령은 남다른 야망을 품고 있었다. 당시 정세는 수의 문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패도정치를 표방하며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현령은 수나라의 앞날을 길게 보지 않았다. 후계자 자리를 놓고 적자와 서자의 피튀기는 정쟁이 벌어지고 많은 정복 전쟁으로 인해 백성의 마음은 점차 수왕조를 떠나가고 있었다. 방현령은 이런 근거를 들어 아버지에게 수왕조의 멸망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설파하고 관리직을 내놓겠다 말했다. 그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는 방현령의 아버지는 항상 방현령에게 말을 조심하라 타일렀고 방현령은 평생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방현령은 효자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계모의 병수발도 기꺼이 해냈고 아버지가 병환으로 드러눕자 100일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보살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방현령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00만 대군과 나라의 전력을 모두 쏟아부은 수양제의 고구려 정벌에서 대패한 수나라는 안팎으로 제후들이 들고 일어서며 나라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방현령은 이들 제후들 중에서 이연과 이세민을 주목했다. 그리고 이세민이 인근을 순찰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일을 걸어서 찾아가 천하 정세를 논하고 자신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세민은 방현령에게 홀딱 반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천하는 당의 고조인 이연이 통일했다. 물론 이세민은 막강한 무공과 지략으로 아버지의 천하통일에 일등 공신이 되었지만 태자의 자리는 장남인 이건성의 몫이었다. 이세민은 진왕으로 임명되었고 또 한 명의 야심가인 넷째 왕자 이원길 또한 제왕이란 왕호를 받았다. 이세민은 진왕부를 설치하고 18명의 학사를 초빙해 참모진을 구성했다. 그 18학사 중에서 첫 번째로 발탁된 인물이 바로 방현령이다. 방현령은 형세를 판단해 계책을 세우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그리고 방현령은 이세민을 위해 천하의 인재를 영입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렇게 해서 방현령이 얻은 인재가 바로 두여회이다. 방현령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두여회는 계획을 과단성 있게 실행하는데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세민은 항상 방현령과 두여회를 불러 상의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세민의 일은 실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훗날 방현령의 꾀와 두여회의 실행력이 결합된 완벽한 콤비플레이를 칭찬해 ‘방모두단房謀杜斷’이란 고사성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뛰어난 활약을 보인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친다. 바로 태자 이건성과 진왕 이세민의 후계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태자는 넷째 왕자인 제왕 이원길과 손을 잡고 이세민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우선 이세민의 복심인 방현령과 두여회를 다른 곳으로 발령내 버린다. 하지만 방현령은 변복을 해가면서까지 진왕부를 드나들며 이세민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태자는 더 나아가 이세민 살해 계획까지 세운다. 돌궐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대의 출정식에 이세민을 불러 살해하기로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누군가 이세민에게 알렸지만 이세민은 고민한다. 친형제간의 피를 보는 살육전이 부담스러웠고 막강한 병권을 장악한 태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이세민이 방현령에게 사자를 보내 의견을 물어보자 ‘먼저 태자를 공격하시라’는 계책을 낸다. 그래도 주저하며 두 번째 사자를 보내자 방현령은 칼을 내던지며 ‘먼저 일어서지 않을 것이면 두 번 다시 나를 찾지 말라’며 이세민을 자극해 드디어 이세민의 결심을 얻어낸다.
이세민은 방현령의 계획대로 이른바 ‘홍무문의 변’을 일으켜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을 제거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 고조 이연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두 달 뒤에 이세민에게 양위한다.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바로 당태종이다.
태종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바로 방현령을 재상의 자리에 임명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방현령과 상의하여 처리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태종의 사람들로 관직이 채워지지 않자 방현령은 특히 두여회와 함께 많은 직책을 겸직했다. 관리들은 이를 시기했고 진사립이란 관리가 “방현령이 많은 직책을 겸직하면서 권세를 부린다”는 상소를 태종에게 올렸다. 하지만 결과는 진사립의 귀양살이. 태종은 방현령의 뛰어난 재주와 충성심이 겸직의 표시라며 변함없는 신임을 내보인 것이다.
방현령의 태종에 대한 충성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수나라의 패도정치가 빚어낸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태종 이세민에게 ‘왕도정치’, ‘위민정치’를 강조했다. 태종은 영민한 황제였다. 스스로 “왕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라며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시행했다. 또한 나라의 근본이 되는 순서 중 첫 번째가 백성이요, 두 번째가 토지이며 세 번째가 비로소 왕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런 태종의 정치를 가장 올바르게 파악하고 실행에 옮긴 이가 바로 방현령이다. 그는 ‘적당주의’를 배격했다. 자리가 공석인 작은 관직에 관리를 임명하는 일조차 신중을 기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려는 원칙을 세웠고 그 원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공석으로 놔둘지언정 아무나 그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 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 재정, 지출을 담당하는 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었고 이런 일도 방현령은 스스로가 해냈다.
그런 방현령의 성격과 원칙으로 인해 조정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은 바로 재상 방현령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정사를 보살펴 그의 밑에 관리들은 보람을 느끼면서도 피곤한 지경에까지 빠지기도 했다. 방현령은 태종의 인사에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주로 은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한번은 태종이 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방현령에게 평을 물었다. 방현령은 “호수무어입니다”라고 답했다. 즉 ‘수염만 멋있지 굳이 평을 할 정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태종은 방현령의 말뜻을 알아듣고 장관 임명을 취소했다. 또한 태종이 두여회를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려하자 방현령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두여회와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방현령의 주장에 태종은 그 뜻을 거두기도 했다.
이처럼 방현령은 자신이 태종을 모시는 목적, 즉 태종 시대 태평성대를 열고 후대에 좋은 정치를 물려주자는 생각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조금도 대입시키지 않았다. 사실 방현령이 추천한 두여회는 어쩌면 2인자인 방현령에게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두여회 또한 출중한 실력으로 태종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여회는 방현령의 보완재가 아닌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방현령은 아무런 질투나 견제 없이 두여회의 중용을 태종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같은 방현령의 생각은 태종이 진왕 시절부터 계속 해 온 것이다. 이세민은 진왕 시절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을 했다. 그때마다 부하들은 전리품을 챙기기 바빴지만 방현령은 전리품이나 귀한 보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 지역의 인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를 직접 찾아가 이세민의 사람으로 만들기에 전력을 다했다. 충성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방현령의 충성심은 자신의 지위와 위치가 흔들릴 수 있음에도 수많은 인재를 이세민에게 추천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는 현대 직장생활에서도 실천하기 힘든 일이다. 자신과 비슷하기는커녕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상사에게 추천하거나 자신의 손으로 유능한 경력사원을 스카우트 하는 것은 그 마음을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고 또 그것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먼저 제거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방현령처럼 인재를 추천하고 그를 중하게 쓸 것을 상사하게 권하는 것은 상사가 보기에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선뜻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충성의 방법인 것이다. 물론 각고의 노력과 뛰어난 능력이 선행되고 상사 또한 대체재와 보완재의 의미를 잘 새길 줄 아는 상사여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처세의 방법이다.
물론 방현령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하루는 출근하는 길에 궁에서 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공사인가를 물어보고는 별생각 없이 출근하였는데 이를 태종이 전해 듣고 대노했다고 한다. “신하가 황제가 사는 궁궐에 건축을 하는 것을 참견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심히 그 권한을 넘어선 것이다”는 것이 태종의 뜻이었다. 왕권 시대에 이 사소해 보이는 사건은 자칫 구족이 멸하는 상황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위급한 일이었다. 다행히 태종의 또 다른 핵심 참모인 위징이 ‘방현령에게 다른 뜻이 없음’을 설명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는 아무리 신임이 두터운 부하이지만 상사의 고유 권한까지 참견하고 넘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정상적인 상사라면 부하의 재능을 활용하되 자신의 의중을 보이지 않고, 포용과 적당한 견제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리더십을 대하는 현명한 조직원은 상사의 뜻과 의중을 읽어야 하되, 모든 공은 먼저 상사에게 돌리고 그리고 변하지 않는 충성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충성심은 현재 직장에서 해석하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조직이고 또 다른 대상은 상사 자체일 수가 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빠진다면 우선 조직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의 직장생활은 조직과 상사 개인에 대한 충성심의 합집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상사 또한 자신의 상사를 위한 충성을 보이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적인 집사로서의 충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업무적 성과로서의 충성이 우선 되고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기는 방현령 말년에 찾아왔다. 당시 방현령은 태종과 사돈이 되어 있었다. 그의 딸은 황실로 시집을 갔고 태종이 아끼던 딸인 고양공주가 방현령의 둘째아들과 결혼해 며느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누군가 고가의 베개를 훔쳐서 장물로 파는 것을 관리들이 적발했다. 보물로 치장된 베개는 한 눈에 보아도 지체높은 가문의 것이었다. 범인을 문초하던 관리는 그 베개를 당시 학승으로 이름을 떨치던 변기화상에게서 훔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베개의 주인이 밝혀졌는데 바로 고양공주의 것이었다. 고양공주가 그만 변기라는 스님과 눈이 맞아 바람이 났고 그 베개를 변기에게 준 것이다. 태종은 이 소식을 듣고 변기화상을 사형에 처하고 고양공주의 노비와 시녀들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양공주의 궁궐 출입 금지령도 내렸다.
그러나 방현령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방현령은 그 사건을 은퇴의 기회로 삼았다. 태종의 즉위와 동시에 재상이 되어 18년간 2인자의 자리를 유지한 것도 모자라 더구나 황실과 사돈이 되고 이러저런 구설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권력이 달콤함 뒤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칼날이 두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 상을 치르겠다 하자 상을 치르고 돌아오라고 명을 했고, 아파서 거동을 못한다고 하자 누워서 정사를 보라했고, 걷지도 못한다고 하자 가마를 주고 타고 다니면서 국사를 돌보라고 할 정도로 방현령을 신임했다.
방현령의 처세학에서 배울 것은 ‘독점’에 대한 엄격한 자기 통제이다. 처세학에 능통했던 많은 2인자들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갈량 역시 자신의 뒤를 이을 인재 발탁에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방현령은 영리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지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권력도, 금력도, 왕의 총애도 혼자 갖지 않고 나눈 것이다. 권한이 나누어지면 책임도 나누어지는 단순한 이치를 처세학에 결합한 것이다. 태종에게는 방현령 이외에도 많은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고 그들 중 다수가 방현령의 천거로 태종의 휘하가 되었다. 그쯤 되면 황제 아래 최대의 권력을 휘두를 만도 하건만, 방현령은 오히려 말을 아끼고 실언은 경계했으며 행동거지에 조심했다.
한번은 태종이 감찰 담당인 ‘왕규’를 불러 “방현령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물어보았다. 왕규는 서슴없이 “나라에 봉사하고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방현령을 따라 올 사람이 없습니다. 더구나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는 것을 다 발설하지 않는 것도 방현령의 성품입니다”라고 극찬했다. 또 하나 방현령만의 2인자로서의 독특한 처세학은 바로 ‘남을 칭찬하기’이다. 그는 다른 관리나 다른 대신들이 일처리를 잘하거나 귀감이 될 만한 행동을 보이면 ‘자신의 일보다 더 좋아하며 그를 칭찬하고 장점을 부각’시켰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방현령의 깊은 통찰이 숨어있었다. 태종은 장기적인 국가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지금의 정책기획실장쯤?)은 방현령에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장관직에는 두여회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관리를 감사하는 직책에는 누구보다 강직한 위징을, 군대를 지휘하는 데는 자신의 처남인 장손무기를 배치해 일종의 분할 통치를 했다. 이 중에서 방현령은 정책실장과 비서실장 그리고 총리의 역할을 모두 겸직했지만 단 한 번도 사소한 것이나마 권력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태종 자체가 일종의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기에 항상 2인자에 대한 예민함과 병권의 움직임 그리고 파당을 형성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방현령은 오히려 자신의 뒤를 이을 관리들을 수없이 천거하고 교육하고 훈련시킴으로써 태종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도 태종에게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안이 있다. 바로 고구려 원정이다. 태종은 야심가였고 수나라의 양제가 정복치 못한 고구려를 자신의 손에 넣고 싶었다. 방현령과 위징이 나서서 반대했지만 태종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안시성에서 대패하며 태종 또한 몸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회군하는 길에 태종이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이같은 실수를 두고 보지 않았을텐데”라고 후회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물론 당시 당의 국력이 이 전쟁으로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648년, 방현령은 70세가 되었고 은퇴하면서 태종에게 소를 올렸다. 그것은 다시는 고구려 정벌을 꾀하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태종은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후계자인 후일 고종에게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긴다. 물론 역사는 고종과 손을 잡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다. 방현령이 죽었을 때 태종은 몹시 상심하는 한편 극진한 예우로 방현령을 추모했다. 그리고 태종 역시 다음 해에 죽으면서 후계는 당의 고종에게 넘어갔다.
방현령 처세학의 세 가지 포인트
1.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전략을 세워라. 2. 누구보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라. 3. 변함없는 충성심을 내보여라.
1. 방현령은 수나라 관리로 있으면서 천하대세가 움직이는 것을 파악해 이세민과 손을 잡았다. 직장생활에 대입해 보면, 대세가, 즉 ‘회사의 주력’이 전략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는 많은 포트폴리오를 마련한다. 돈이 나올 수 있는 구멍을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회사의 주력 정책은 국제정세, 금융조건, 이를테면 미국의 금리인상 정책에 의해서도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능동형인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조직원은 예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2. 방현령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근면했다. 물론 많은 직책을 겸하고 있었고 항상 태종의 옆에서 그의 질문에 대답을 했어야 했기에 조직의 중요 부분부터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상사는 대답보다 질문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각 팀별로, 혹은 각 개인별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프로젝트에 대해 모든 것을 도표로 그려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궁금증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 누구보다 먼저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요소를 짚어내는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개인적인 응대를 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신임은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방현령은 충성심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태양과 너무 가까워지면 타버리고 태양과 너무 멀어지면 얼어버리는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태양과 가장 가까이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태종의 다양하고도 집요한 시험 즉, 충성 테스트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상사는 항상 부하직원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을 갖고 있다. 물론 대개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지만 간혹 의도치 않은 곳에서 이런 시험은 이루어진다. 제3자에게서 자신을 평가했던 부하직원의 말을 전해 듣기도 하고, 누군가에게서 그가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 상사는 부하 직원의 충성심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방현령은 ‘100을 알고 있으면서도 80만 이야기하는 절제’를 통해 당 태종의 신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를테면 회사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길 때 타이밍이란 것이 있다. 이때 그것을 알고 있는 회사원들은 ‘내가 실세와 가깝다’, ‘실세의 측근이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정책이나 결정 사항을 주변에 흘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몫은 상사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 회사에서 보너스 100%를 지급하기로 했다. 은연중에 소문은 나게 마련이고 부장이 보너스를 결정할 자리는 아니지만 부서원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은 부장의 것이다. 이것을 차장이나, 과장이 미리 통보해 김을 빼버리면, 부장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충성심과 오해의 갈림길은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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