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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흔히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외과수술에 비유되곤 한다. 수술을 통해 곪은 부분을 도려내야 환자가 살아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실이 쌓인 비효율적인 부분은 제때 정리해야 경제도 제대로 돌아간다. 가만 놔두면 상처가 곪아가듯 구조조정을 미루면 경제의 다른 부문까지 썩어들어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누구일까. 채권금융기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정부·금융당국을 꼽을 수도 있다. 해당기업 임직원의 결단과 의지를 중시하는 시각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구조조정에 관련된 법률적 권한은 채권금융기관에 집중돼있다. 다만 실제 영향력은 정부·금융당국이 더 큰게 보통이다. 부실기업을 처리하게 되면 채권금융기관은 회계장부에 손실을 반영해야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채권금융기관은 생래적으로 구조조정을 미루고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정부·금융당국은 좀더 거시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구조조정 사안에 임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는 재정을,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구조조정에 투입할 수 있다. 구조조정의 주인 노릇을 정부나 금융당국이 하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채권금융기관과 정부·금융당국이 아무리 설쳐도 해당기업 임직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과거 많은 한계기업 임직원들이 '벼랑끝 전술'을 펼쳤고, 그래서 국가경제가 멍 들었다. 특히 기업 오너가 버티면 구조조정은 올스톱이다.
궁합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성공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려면 채권단과 정부·금융당국, 해당기업 임직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궁합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다만 당사자들끼리의 '찰떡 궁합'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구조조정은 '그들만의 리그(League of their own)'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의 위대한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세 시들해져 버린다.
미셸 깡드쉬 전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에서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한국에 강요한 인물이다.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붙은 별명이 '깡총독'이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재정경제부 막내 출입기자들은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공항 귀빈실로 몰려갔지만 말 한마디 듣기가 쉽지 않았다. 운집한 기자들을 본체만체하고 경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호텔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경찰 사이드카가 따라 다니며 교통신호등을 조작해줬기 때문에 중간에 멈추는 법도 없었다. 신문사 차량을 타고 그의 차량행렬을 뒤쫓아가면서 느꼈던 자괴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나라가 거덜나면 이렇게 되는거구나.
한국인들에게는 밥맛 떨어지는 인상을 남긴 깡드쉬 총재지만 미국 워싱턴DC에 소재한 IMF 본부에서는 전설적 리더로 추앙받고 있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IMF총재직을 수행했다. IMF에서는 그의 리더십을 기리는 특별세미나가 해마다 열릴 정도다. 그런 그가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관료들에게 해줬던 첫번째 충고는 '개혁을 하려거든 여론의 순풍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구조개혁에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용인한 여론에 있었다.
여론의 구조조정의 주체일수 밖에 없는 두 가지다. 사회 전반에 무지막지한 추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이 첫째다. 때론 파괴적일 만큼이나 강력한 힘이다. 멀쩡하게 숨이 붙어있는 기업의 살을 찢어 고름을 터뜨릴 수 있는 무한권력은 여론 밖에 없다. 두번째 이유는 여론을 등에 업으면 뒷날 책임질 일이 적어지거나 아예 없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해운·조선업종 구조조정은 그 초입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내야할 것이 여론의 불씨다. 자칫 각자도생의 아수라장에서 '구조조정을 참아내자'는 여론의 공감대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이게 꺼지면 말짱 도루묵이다.
어차피 지금의 여론은 '구조조정'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정부와 재계는 물론이고 학계와 여야 정치권들까지 구조조정의 대의(大義)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모처럼 조성된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해야될 일이 있다. 구조조정의 고비 고비마다 투명한 의사결정을 하고, 원칙에 맞게 집행을 하는 것이다. 특정기업이나 산업의 운명을,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밀실에서 쑥덕거린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민심은 훌쩍 떠나가게 된다. 소통을 통해 여론의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불행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구조조정인 만큼 '독불장군'은 그 자체로 독(毒)이다. 훗날 책임질 일이 반드시 생기게 되고, 어렵사리 끌고왔던 구조조정마저 주저앉히기 십상이다.
"정부가 힘이 없다. 특히 재경부는 없다. 그러나 시장은 끊임없이 변하고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문제가 심각해지면 여론이) 재경부가 나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나설 것이다. 그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힘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불렸던 이헌재씨가 공직을 떠난지 3년만인 2004년 2월 14일 재경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복귀해 남긴 말이다. 구조조정의 고수다운 명언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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