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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최근 서울옥션이 공개한 세조어진 초본(밑그림) 얼굴부분. 사진제공=서울옥션


거사의 날은 1456년 6월 1일로 잡혀졌다. 정인지·신숙주·한명회 등은 한 해 전인 1455년 윤 6월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한 뒤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자 집현전학사 출신의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과 무장인 유응부·성승·박쟁이 단종을 다시 세울 기회를 엿봤다. 

그해 10월 책명사(冊命使)인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겠다는 뜻을 알려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서 단종 복위를 본격적으로 모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1일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 초대연을 열기로 결정 나자 이날 유응부와 성승이 연회석상에서 칼을 차고 임금을 지키는 별운검(別雲劒)을 맡아 세조를 살해키로 의견을 모았다. 

불행히도 거사 당일 세조는 갑자기 건물 안이 좁다며 칼을 차지 못하도록 명하면서 난관에 처하게 된다.
이에 유응부는 “왕의 측근들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천재일시(千載一時)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면서 감행하려고 했으나 성삼문과 박팽년이 “운검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은 하늘의 뜻이다.
창덕궁에서 거사하더라도 경복궁에 머물고 있는 세자가 변고를 듣고서 군사를 동원해 온다면 일의 성패를 알 수가 없으니 뒷날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 것”이라고 뜯어 말려 거사는 중단됐다. 

공모자 중 한 사람인 김질이 일이 탄로 날까 두려워해 자신의 장인인 정창손에게 달려가 역모 사실을 알렸고 둘이 함께 세조에게 역모를 고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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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세조어진 초본 전체. 사진제공=서울옥션

세조 앞에 끌려온 유응부는 성삼문 등을 둘러보며 “서생들과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그대들처럼 꾀와 수단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더 묻고자 한다면 저 쓸모없는 선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고는 입을 닫아걸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승자의 편에서 쓰인 조선왕조실록은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을 반역자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육신의 행적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남효온은 책에서 단종복위의 거사 주모역은 성삼문·박팽년이고 행동책은 유응부로 언급하면서 세 사람을 삼주역(三主役)으로 부각시켰다. 

단종복위 운동이 실패하면서 70여 명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핵심 연루자들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다. 그들의 여자들은 공신들에게 하사됐다.
공신들은 평소 친구로 지냈을 사육신의 아내를 서로 갖겠다며 다툼까지 벌였다.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신념만 지키려던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것일까.
사육신은 명예롭게 죽어 그 이름을 후대에 남겼지만 그들의 아내는 치욕적인 삶을 살면서도 어느 누구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세조가 피살되고 단종이 다시 왕이 됐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과연 새롭게 권력을 거머쥐게 된 성삼문 등은 단종과 더불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폈을까.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 7대 왕(1417~1468)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이유이며 28세 되던 해인 1445년(세종 27)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13년간 권좌를 장악하고 있다가 지병인 피부병이 악화돼 둘째 아들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지 하루 만에 죽었다. 

9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관상’에서 세조는 역모의 얼굴인 ‘이리상’으로 묘사됐다.
어린 조카 단종을 없애고 권력을 찬탈하는 수양대군의 역을 맡은 영화배우 이정재는 영화에서 잔인하고 치밀하며 집요한 면모가 있는 표정을 연기했다.
실제 세조의 얼굴 생김새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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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세조어진 초본.


세조의 어진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54년까지는 존재했지만 화재로 사라져 버렸다. 창덕궁 선원전(어진을 모시던 건물)에 보관된 다른 어진들과 함께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국악원으로 옮겨졌다가 1954년 12월 발생한 화재로 소실돼 버렸다. 

그런데 세조 어진을 그릴 때 밑그림으로 사용했던 초본(草本)이 최근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가로 131.5㎝, 세로 186㎝ 크기의 대형 그림이다. 서울옥션측은 조선 최후의 어진(御眞)화가인 이당 김은호(1892~1979년)가 영조 때 그려진 세조 어진을 이당이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세조 어진 초본이 실린 바 있다.
조선 왕들은 대체로 수염이 많지 않은데 세종대왕상은 수염이 풍성해 고증이 잘못됐다는 내용의 기사다.
그 증거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김은호가 직접 그린 세조 어진 초본이다.
김은호의 초본 역시 수염은 거의 없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놀랍게도 이 초본과 서울옥션이 공개한 초본은 정확히 일치한다. 

초본은 김은호 사후 사라졌다. 유작·유품의 상당수가 개인들에게 매각됐는데 초본도 함께 팔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거의 5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조는 38세 때 왕위를 찬탈했다. 
초본은 젊은 얼굴이어서 수양대군 시절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어찌됐건 이 초본에서의 세조는 외모가 이정재와는 전혀 다르며 이리를 닮지도 않았다.
사납다기보다는 영양 상태가 좋아서인지 오히려 후덕한 느낌마저 준다.
코와 입이 작은 편이며 턱 부분이 둥글게 생겼다. 

 

배한철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11.22기사입력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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