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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수공기술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이 된 살바토레 페라가모. 어린 시절 슈즈메이커의 꿈을 키웠던 창시자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패션 필드에 획을 긋는 문화를 만들고, 한 나라를 대표하며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대한 패션 하우스를 세웠다. 유서 깊은 역사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지녀 더욱 특별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1898년 이탈리아 보니토에서 태어난 살바토레 페라가모. 청소년 시절부터 슈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그는 11살부터 슈즈메이커로 일했다.

그리고 13살 때 보니토에 그의 가게를 열었다. 1920년대 초 살바토레는 그의 형제와 함께 슈즈 수선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로 이주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영화 산업이 발달된 꿈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살바토레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신을 신발을 제작했다. 그의 신발은 독특한 디자인과 편안함으로 영화배우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하나, 둘씩 맞춤 신발을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갔다. 영화 산업이 캘리포니아에서 할리우드로 옮겨갈 때 살바토레 역시 자신의 슈즈숍을 할리우드로 옮겼다.

 

슈즈메이커에서 럭셔리 하우스의 수장으로

1923년 본격적으로 스타들을 위한 신발을 제작하며 ‘할리우드 부츠숍’을 오픈한 그는 여성 슈즈에 관심을 가졌다.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던 풋 웨어 패션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그는 그 지역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여배우들에게도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 시장을 주름잡던 비비안 리, 글로리아 스완슨, 루돌푸 발렌티노, 메리 픽포드 등은 페라가모 슈즈숍의 단골이 되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랑을 받게 된 페라가모는 밀려들어오는 주문량을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아하고 편안한 구두, 시대를 앞서 가는 디자인을 선보인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바토레는 미국 일꾼들의 기술에 만족하지 못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구두를 제작하는 이탈리아 전통 제화 기술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었다. 페라가모는 과감하게 미국의 숍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전통적으로 수공 기술이 뛰어난 피렌체에 자리 잡은 그는 엄격한 매뉴얼을 만들고 라인 테크닉 제작을 도입했다. 또한 코르크, 나무, 메탈, 라피아, 펠트, 합성수지 같은 혁신적인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가죽과 철만을 이용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버린 이 신선한 시도는 전 세계의 패션 피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여성들은 그의 혁신적인 시도와 완벽한 디자인에 열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구두를 만들 재료가 부족해졌다. 수많은 구두 공방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의 생활 역시 급속히 피폐해졌다. 모두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페라가모는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구두의 재료로 사용할 만한 값 싸고 적당한 소재를 찾아 다녔고, 코르크를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구두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스웨이드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패치워크 작품을 만들어내는 등 독창적인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이처럼 기발하고 신선한 발상으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던 그는 1947년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니먼마커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페라가모는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마릴린 몬로에게 스틸레토 힐을 선사했다. 그녀가 이 구두를 신고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페라가모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성공으로 피렌체 중앙청에 해당하는 건물인 팔라쪼 스피니 베로니를 사들였고, 이 건물은 오늘날까지도 페라가모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1950년에는 7000명의 직원을 두고 매일 350켤레의 구두를 제작했다. 당시 최고의 여배우로 손꼽혔던 그레타 가르보, 소피아 로린, 안나 마그날리, 오드리 헵번은 구두를 맞추기 위해 언제나 살바토레의 슈즈숍을 찾았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그 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세상을 떠난 1960년 이후 그의 가족들은 ‘완벽한 슈즈’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페라가모를 세계 최고의 패션 하우스로 만들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녀 피암마(Fiamma)는 1961년 런던에서 첫 번째 슈즈 컬렉션을 선보인 이래 1998년 죽음에 이를 때까지 풋 웨어는 물론이고 핸드백과 액세서리 등의 가죽 제품을 만들었다. 현재까지 페라가모의 스타일 심벌로 사용되고 있는 리본이 달린 바라(vara)슈즈도 이때 만들어졌다. 장녀 피암마와 함께 기업을 이끌어 나간 여인은 살바토레의 부인 완다 페라가모였다. 그녀는 지성과 불굴의 의지, 섬세한 비즈니스 센스로 살바토레를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만들었다. 완다의 지휘 아래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풋웨어에서 남성과 여성 기성복,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며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패션과 문화를 연계시키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항상 패션과 문화를 연계해 생각했다. 192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어린 나이의 살바토레는 패션과 문화의 세계가 얼마나 큰 공통점을 지녔는지 알게 되었으며 나아가 사업 수완이 탁월했던 그는 패션과 문화가 이어지면 엄청난 파급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30년대 이탈리아로 돌아간 페라가모는 구두 광고를 위한 스케치를 제작하기 위해 예술가 루치아 베나(LUCIO VENNA)를 섭외했으며 1950년대에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던 유명한 아티스트 피에트로 안니고니(PIETRO ANNIGONI)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는 구두 제작에 필요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현대 예술가들을 찾아가고 그들과 소통하며 지냈다.

문화 예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살바토레의 신념은 현대까지 이어져 페라가모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전시할 박물관 오픈에 이르렀다. 1995년 피렌체에서 문을 연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에는 페라가모가 40여 년간 제작한 슈즈 컬렉션이 진열되었다. 뿐만 아니라 1959년부터 시작한 의류 사업과 1970년대부터의 핸드백 컬렉션,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문서 역시 만날 수 있다. 살바토레는 문서 하나도 쉬이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모여 브랜드의 뿌리가 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페라가모 수공기술의 진수 트라메자 MTO

페라가모의 남성 슈즈에는 여러 라인이 있다. 트라메자, 오리지널, 스튜디오, 투볼라리 등이 그것. 그 중 트라메자 라인은 남성 슈즈 최고급 라인으로 다른 라인에는 적용되지 않는 특수 첨가제 공정을 포함한다. 트라메자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발 가공 공법으로 페라가모가 슈즈를 만들 때 사용하던 오리지널 방식이며 이탈리아어로 ‘~사이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트라메자 라인의 슈즈를 개개인의 발 모양에 맞게 주문 제작한 것이 트라메자 MTO다. 디자인과 소재, 컬러 등을 선택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슈즈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트라메자 MTO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고의 트라메짜 기술 공법으로 페라가모 남성 구두의 우수한 품질과 예술적인 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 세계로 널리 알리고 있다. 2004년 첫 선을 보인 이래 페라가모 고객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트라메짜 MTO는 방수 가죽인 꾸오이오(Cuoio)를 사용해 유연성을 강조했다. 꾸오이오는 습한 날씨에도 발이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며 신는 사람의 발바닥 모양에 맞게 베이스가 변형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 장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던 충전제에 드문드문 구멍을 내어 신발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유연성을 증가시켰다.

일반적으로 트라메자 MTO는 여느 신발에 비해 두 배 강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발이 12㎜의 두꺼운 가죽 위에 놓이게 되어 쿠션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신으면 신을수록 발의 모양에 맞게 신발이 변형돼 더욱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방수 가죽으로 만들어 바깥 날씨의 온도나 습도에 상관없이 발을 편하고 쾌적한 상태로 유지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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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미 기자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2.01.03기사입력 20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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