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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칩 작가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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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이었다. 비가 잠깐 그친 놀이터.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란 회전기구 위에서는 바람도 머리카락을 감싸며 둥글게 돌아간다. 빙그르르 도는 공기가 뺨을 휘감는다. 순간 아득해지는 이 기분. 즐겁게 눈을 감고 되풀이해서 맛보던 순간들.

젖은 초록색과 녹슨 빨간색 철판이 뎅뎅 울리고 귓가를 휙휙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빨라질수록 시간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나도 빨리 어른이 될 수 있겠지. 아, 어서 자라나 어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르 쁘띠 샤’

북가좌동 길목에 있는 조덕환 작가의 작업실에는 페인트로 그려진 간판이 있다. 간판에 쓰인 ‘르 쁘띠 샤(le petit chat)’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라는 뜻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Le Petit Prince)>에서 착안했다.

간판 이외에는 설명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카페 같기도 하고 작업실 같기도 한 공간이 바로 조 작가의 삶터다. 일일이 손으로 페인트칠을 한 간판에서부터 작은 타일을 하나씩 붙여 만든 바닥 출입구까지 조금 허술하지만 정성이 담겨 있었다. 바깥쪽 작은 화단에는 방금 물을 먹은 제라늄이 한낮의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다. 안쪽 작은 계단은 바다색과 하얀색 타일들이 촘촘히 깔려 있다. 일순간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섬의 한가로움을 떠올렸다면 비약일까.

1000원에 팔고 있다는 커피를 내미는데, 솔직히 맛이 썩 좋다고 말할 순 없었다. 오 마이 갓. 일단 입에 머금은 커피를 꿀꺽 삼키고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카페에 손님은 하루에 한두 명은 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나마도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니 아무도 오지 않는 날도 있는 듯. 고객은 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라고 했다. “아직 오픈한지 1주일밖에 안됐어요”라고 덧붙인다.

“그림은 계속 팔리는 편이예요. 제 그림이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라서요. 만약 꾸준히 좋아해주는 분들이 없었다면 여태까지 그림만 그리는 일도 좀 지쳤을 거예요. 다행이죠.”

그는 그림을 오래 그리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작업실 겸 카페를 생각해냈다. 이 공간에서 그림도 가르치고, 커피도 팔고, 작업도 하면 좋겠다 싶었다고 한다. 월세도 아주 저렴하니 마음에 들었다. 매분 매초를 쫓기듯 사는 강남을 떠나 스스로 운영하는 하루를 만들어가기에는 한가로운 동네가 적절했다. 사실 자신만의 작업실 겸 카페를 꿈꿔보지 않은 작가가 있을까? 그는 자본금이 최소 몇 억은 있어야 카페를 차린다는 상식을 과감하게 무시했다. 또 부족한 부분은 적당히 너그러운 웃음으로 넘긴다 치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한량 작가의 시간이 전염된 것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오후가 느리고 여유롭게 흐르는 것 같다. 맞다. 어릴 때는 시간이 참 천천히 흘렀다.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쬐는 순간을 볼 수 있었는데.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기 직전까지의 시간은 개미가 천천히 기어가는 것만큼이나 길었다. 노을은 천천히 하늘을 물들였고 땅바닥의 돌멩이들은 모두 그 영겁의 세월만큼 수많은 이야기의 무늬를 간직하고 있었더랬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영원한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조 작가의 그림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 세상의 굳은 벽에 상처받지 않았던 말랑말랑하고 촉촉했던 시절.

 

무엇이든 가능한 요술모자, 그의 유토피아

조 작가는 사람들의 꿈을 그린다. 쉽게 손에 잡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현실적인 것은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더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역시 현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요. 대신 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능성’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어제도 우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엄청난 감동과 경외감을 느꼈어요. 한낱 작은 그림으로도 이 세상에 감춰진 무궁무진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그림 속의 소녀들은 요술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고양이, 백조, 호수, 바다 등. 그 모자를 빌려 쓰고 싶은 기분이다. 요술모자를 쓰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다고 하니까.

그의 작품에서 고개를 돌린 소녀들의 시선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아마 우리가 닿기 어려운 순수한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소꿉장난처럼 꾸며 놓은 그의 카페처럼. 말없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은 그림들이 이 시간과 이 공간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 같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짙은 노란색과 파란색의 감정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는 과감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이처럼 감흥의 순간을 포착했지만, 사실 그가 보는 색과 우리가 보는 색은 다르다. 조덕환 작가는 선천적으로 약시다. 그래서 작가가 느끼는 빨간색과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빨간색은 다른 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림 속 아이들의 감정을 상상할 수 있다. 정확한 소통은 아닐지라도 진실한 소통은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생각이 이제 다 커버린 어른들을 위로한다.

작품을 통해 조 작가는 ‘그래서 언제 도착하겠어?’, ‘그래서 언제 성공하겠어!’라고 외치는 세상의 끈질긴 재촉을 한편으로 슬쩍 흘려보낸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인생길 앞에서 그는 누구 못지않게 진지하다. 그리고 작은 간판과, 커피 머신, 제라늄을 하나씩 이 공간에 채워 넣었다. 그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그렇게 천천히 가꾸어 나가고 있었다.

어수룩하지만 햇살이 부서지는 그 순간만큼은 산토리니 부럽지 않게 빛나는 ‘르 쁘띠 샤’ 카페도 그의 작품과 꼭 닮았다. 일제히 뽑아낸 듯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싫증났다면, 삐뚤빼뚤 조금은 촌스럽고 알록달록 정겨운 그의 작업실로 놀러 가보자. 틀림없이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그가 커피를 내오며 반겨줄 테니까.

세련된 강남보다 사람 냄새 나고 소박한 동네 북가좌동이 좋다는 조 작가. ‘르 쁘띠 샤’가 그의 바람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돼 북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쯤엔 카페 주인장 조 작가의 바리스타 기술도 나아져 있기를 기대하며.  

 

■ 조덕환 작가

1973년생이며 2000년에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2008년 아소 컨템퍼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갤러리정과 나무그늘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외에도 20여회의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는 각종 신진작가전, 아트쇼 등에 초대받아 독특하고 순수한 세계의 표현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는 2012년 6~7월에 청담동 ‘55도’에서 조덕환의 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북가좌동에 작업실을 틀고 서서히 마을을 예술적 환경으로 변화시켜 가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그림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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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아트 칼럼니스트·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2.02.24기사입력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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