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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2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캡처]

#1

로맨틱 생존 코미디라 할 수 있는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미스 김(김혜수 분) 신드롬’이 만만치 않다. 포털 사이트에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던 ‘김혜수의 빨간내복’이 실시간 검색어 수위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비정규직이 철철 넘처나는 현실에서 부장님도, 팀장님도 쩔쩔매는 슈퍼갑 계약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정장 바지에 망사로 머리끈을 묶고 맡은 바 일을 똑 부러지게, 당당하게 해내는 미스김은 샐러리맨, 샐러리우먼들에게-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비록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만능사원 오오마에(2007년)’를 리메이크했지만 요즘 한국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는 듯 하다. ‘파견의 품격’도 비정규직과 파견이 일상화되는 당시 일본의 고용 악화를 풍자한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방송될때마다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의 위대한(?) 어록이 직장인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회식 참석을 강권하는 정규직 팀장(오지호 분)에게 미스김은 “무소속인 저의 경우, 불필요한 친목과 아부와 음주로,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같은 회식을 이행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라고 단칼에 잘라버린다. 회식에 참석하고 나서는 부장님께 시간외 수당을 당당히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포폭절도 할 수 밖에 없다. 124개의 잡다한 자격증을 보유한 미스김은 왜 비정규직을 고집할까? 아직 드라마가 진행중이지만 조만간 자발적 비정규직을 고집하는 그녀의 비밀이 밝혀질 것이다.

#2

지난 4월 16일 오후 광주 내방동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분신을 기도했다는 무척 우울한 뉴스가 있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이 노조 간부는 불이 붙은 채 “비정규직 철폐, 사람답게 살고 싶다”를 외치며 공장 안쪽으로 10미터 가량을 뛰어가다 쓰러졌다. 그는 5년전 기아차 광주공장의 한 사내 협력사 소속으로 입사해 생산라인에서 일해 왔다. 기아차 광주공장 근로자 6500여명중에는 10곳의 사내협력사 소속으로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460여명이 있다고 한다. 기아차 사내하청분회는 지난 2월 기아차가 광주공장 생산직 근로자 채용에 나서자 비정규직을 우선 채용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장기근속 근로자 자녀를 채용에서 우대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해왔으며 노사는 지난주에 장기근속 근로자 자녀를 채용에서 우대해주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간부를 비롯한 비정규직의 박탈감은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청분회의 한 조합원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비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이 빗발쳐 이 간부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또 지난 14일에는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직영 촉탁직으로 일하다 계약해지 된 20대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현대차나 기아차의 경우 정규직 평균 연봉은 7천만~8천만원 수준이다. 생산직이지만 최고수준의 보수가 주어지기 때문에 정규직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우리나라 일자리는 더도말고 좋은 일자리, 나쁜 일자리 딱 두가지로 구분된다. 좋은 일자리는 큰 사고 치지 않으면 짤리지 않고 임금도 제대로 받는 정규직, 나쁜 일자리는 언제 짤릴 줄 모르고 엇비슷한 일 하면서도 임금은 반밖에 못받는 비정규직이다. 드라마에서는 슈퍼갑 계약직이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장의 신’을 보면서 미스김의 대단한 활약과 당당함에 많은 직장인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2012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47.5%에 달한다. 지난 2001년 55.5%에서 점차 비율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2년 8월 기준 843만명이며 정규직 노동자는 931만명이다. 노동유연성이 높다고 하는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비율이 20%를 넘지 않으며 특히 비정규직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는 편이어서 우리만큼 임금격차가 크지 않다. 우리나라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절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49.6%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8월 기준 정규직 평균 임금은 277만원이며 비정규직은 137만원이다. 비정규직중 최저임금도 못받는 비율은 21.5%인 153만명이며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3명중 1명꼴(30.6%)로 는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다. 한마디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반토막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의 신’에서 똑부러진 미스김이 아니라 정주리(정유미 분)가 비정규직의 직장생활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정주리는 첫 월급날 학자금 대출로 빠져나가고 남은 돈은 1만6200원이라는 문자 메시지에 절망하는 서럽고도 힘든 청춘이다. 노동경제학자로 유명한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는 몇 년전 한국을 방문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은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일자리인 정규직 채용이 줄면서 요즘 젊은 세대를 ‘삼포 세대’라고 칭한다. 취업과 결혼과 자녀를 포기한 젊은이가 늘어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얼마전 금융권에서 기존 직원들의 고액 연봉은 손대지 않은 채 신입직원들의 초임을 깎아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가장 힘도 없고 가장 급여도 낮는 사회에 갓 진출한 청년들의 꿈을 깎아버린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포털이나 SNS의 댓글에서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에 환호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반응도 적지 않은 것은 비정규직 문제가 드라마의 코미디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절실하고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털의 한 토론방에서 미스김 역을 하고 있는 ‘김혜수씨에게 드리는 글’이 인기를 끌고 있어 소개한다.

“비정규직은 한국에선 어느 쪽에서도 인정되지 못하는 이름 없는 타자, 정치학자 아감벤이 말하고 있는 ‘호모 사케르’들입니다.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우리 둘레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셈입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을 둔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 녀석들은 졸업 후에 과연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결혼해서 내집 마련하고 아이들 낳아 잘 기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같다.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스펙을 쌓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취업 환경은 훨씬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한마디 하기도 딱할 뿐이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최선의 복지정책’이라고 주장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윤형식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3.04.23기사입력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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