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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육필로 원고 작성을 고집하는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지난 3월부터 네이버에 신작 <정글만리>를 연재 중이다. 웹툰으로 재미를 본 네이버는 장르소설을 올리는 ‘웹 소설’ 캐스트를 만들었고, 카카오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려 사고 파는 콘텐츠 장터 ‘카카오페이지’를 출시했다. 큰 화면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이 늘어난 결과다.

“온라인으로 독자 먼저 만나고파” 네이버 연재…조정래 <정글만리>

조정래(70) 작가의 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정글만리>가 지난 3월부터 네이버 연재를 시작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한국 다섯 국가의 사람들이 자본을 놓고 ‘세계의 시장’ 중국에서 각축을 벌이는 이야기다. <정글만리>를 위해 조정래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철저하게 현지 취재했다고 전해진다. 총 90회로 나누어 6월 22일까지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 매일 아침 10시에 업데이트되는 <정글만리>는 포털 메인에서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으며 글이 올라오면 알림도 받을 수 있다. 전체 무료로 공개되며 접어두고 싶은 구절엔 책갈피를 꽂을 수 있고, SNS로 의견을 남길 수도 있다. 선생의 전작 <태백산맥>, <아리랑> 등은 전자책으로 출간됐지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신작을 포털에 먼저 연재하는 것은 <정글만리>가 처음. 온라인 연재가 끝난 6월 24일부터는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판매된다. NHN그린팩토리 언론홍보팀 홍보실 이소영 과장은 “조정래 작가가 먼저 네티즌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며 “아직 확정된 곳은 없지만 앞으로도 뜻이 맞는 출판사나 작가와 손잡고 네티즌이 웹 상에서 좋은 문학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설가들은 왜 포털로 갔나?

네이버는 그간 파울로 코엘료(2009, 승자는 혼자다), 노희경(20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김영하(2010, 단편들), 요시모토 바나나(2010, 그녀에 대하여) 등 인기 작가의 작품을 포털에 연재해왔다. 출판사 입장에서 책으로 출간되기 전에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정글만리>를 책으로 펴낼 <해냄>의 이진숙 편집장은, “<정글 만리>의 네이버 연재는 조정래 작가의 희망에 따라 결정되었다”며, “온라인 연재를 통해 새로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소설가 김주영은 <객주> 9권을 발표한 지 30년 만에 완결편을 지난 3월부터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와 교보문고 웹진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박범신, 정이현, 조경란 등 베스트셀러 작가 7명의 작품 역시 곧 모바일로 선보일 예정. 사실 소설가들의 온라인 연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7년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되기 시작한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2007)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2008)이 그 시초.

두 작품 모두 연재 당시 100~180만명 이상의 독자가 블로그를 방문한 바 있다. 자신의 2010년작 <허수아비춤> 발간 전 인터파크에 두 달 동안 연재한 바 있던 조정래 작가는 사실 ‘자발적 컴맹’이다. 원고지에 눌러 쓴 글을 출판사에서 입력해 인터넷에 올렸으며, 댓글도 프린트된 상태로 봤다. 독자들과 만나는 방식이 다양화된 셈이다. NHN 한성숙 네이버서비스1본부장은 “포털은 창작자들에게는 세상에 나를 알리는 공간이며,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해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정글만리>와 같은 협력 사례가 늘어나 디지털 시대를 사는 독자들이 소설 등 문학 분야에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포털과 출판사의 윈윈이라는 것이 그녀의 애기다.

손 안에서 즐기는 모바일 콘텐츠 장터, 카카오 페이지

네이버가 무료(부분 유료화)로 독자들에게 웹 소설을 개방한 것과는 달리 지난 4월 9일 출범한 카카오톡의 ‘카카오 페이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 사고파는 개방형 장터를 표방한다. 문학, 텍스트, 웹툰 이미지, 오디오 약 8000여 편의 디지털 콘텐츠가 모인 모바일 유통 플랫폼으로 앱을 깔면 다양한 모바일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손 안에서 즐길 수 있다. 일반인은 연회비 5만원, 법인은 10만원을 내면 판매자로 등록되며, 수익의 50%는 창작자가, 20%는 카카오가 가진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2>, 가수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소설가 정이현의 에세이 <스치지 말 것, 사랑일 것> 등 유명 인사들의 콘텐츠가 눈에 띈다. 작가들은 작품마다 500~1000원 정도로 독자에게 직접 글값을 받게 된다.

모바일 책들은 대부분 이미지가 반이라 지겹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때로는 동영상과 일러스트, 배경음악까지 곁들여진다. 스마트 폰에 최적화된 사용자 UI를 구현해 장편 소설을 읽기에 부담이 없으며, 팟캐스트처럼 보관함에 담아두고, 일정기간 대여형태로도 구독 가능하다. 카톡 친구와 함께 내가 구매한 소설을 함께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도 있다. 카카오 페이지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도 열려 있다. 많은 아마추어 웹툰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등단’이나 ‘오프라인 출간’ 대신 전자책으로 등단하려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프러포즈를 받고 있는 것. 벌써 국내 최대 콘텐츠 유통회사 중 하나인 CJE&M 등이 러브콜을 보낸 걸 보면 국내 4000만 명의 유저를 가진 카톡 수요를 등에 업었다고 볼 수 있다.

카카오톡 친구 통해 직접 제작한 콘텐츠 판매도 가능

카카오 페이지는 모바일로 보기 좋게 옆으로 넘기는 슬라이딩 방식으로, ‘더보기’를 열면 해당 콘텐츠에 대한 추가적인 상세 정보가 텍스트로 제공된다. 무엇보다 전용 페이지 에디터를 제공, 블로그에 글을 쓰듯 누구나 모바일 화면에 취적화된 상태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카카오스토리와 연동되어 손쉽게 포스팅이 가능하며, ‘친구와 같이 보기’ ‘추천하면 무료보기’ 등의 기능으로 공유도 쉽다. 예를 들어 정이현의 <스치지 말 것, 사랑일 것>의 ‘30일 이용권’을 구매했다면 함께 보고 싶은 카카오톡 친구 1명을 선택해 메시지를 전송하고, 같은 기간 동안 친구와 함께 <스치지 말 것, 사랑일 것> 감상이 가능하다. 2명의 친구에게 특정 콘텐츠를 추천하면 본인과 추천 받은 친구들 모두 동시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카카오 페이지 이용권은 카카오 결제 수단인 ‘초코’로 편당 구입하거나 ‘30일 이용권’ 등 기간제로 구입 가능하다. 상품 구성과 요금 방식은 앞으로 다양화될 예정이다. ㈜카카오 커뮤니케이션팀 이기연 씨는 “카카오 페이지는 단순히 문학에 국한된 것이 아닌 종합 모바일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라며, “창작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새로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 측은 3년 내 100만 유료 모바일 콘텐츠 파트너를 모은다는 계획이다.

폭발하는 전자책+대화면 스마트폰+‘터치’ 세대의 만남

예스24에서 연재되다 얼마 전 종이책으로 출간된 한승원 작가의 <겨울 잠, 봄 꿈>은 동학세력의 우두머리인 전봉준이 1894년 전라도 순창에서 잡혀 한양으로 압송되고, 처형될 때까지의 천리길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예스24 연재 당시 회당 서너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짧게 짧게 이어져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한승원 작가는 출판간담회에서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동시에 현대 소설이다.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춰 글을 짧게 가져가고 영상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터치’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모바일을 이용해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책을 목차 별로 쪼개서 출판하는 이른바 ‘클리핑(clipping) 출판’도 이를 돕고있다.

카카오 페이지도 원하는 부분만 사서 읽을 수 있고, 전자책 유통 업체 리디북스는 ‘스토리홀릭’ 앱을 통해 챕터 단위의 책을 제공하고 있다. 종이책 시장이 매년 3%씩 줄어드는데 비해 전자책이 연평균 30% 성장일로에 선 것은 무엇보다 갤럭시S3나 갤럭시 노트2 등 대화면 고화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보급 때문. 교보문고는 월 1만5000원에 전자책 5권을 빌려주는 연단위 약정 서비스 ‘샘(SAM)’을 지난 2월 출시했고 예스24와 알라딘은 ‘박경리 에디션’, ‘살림지식 플러스 에디션’을 내놨다. 10만원대 초반의 SAM은 기존 낱권 구매 방식에서 벗어나 월 1만5000~3만2000원을 내면 전자책 5~12권을 한 달 동안 마음껏 열람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만화 대여점의 쇠락과 함께 사라졌던 무협지나 로맨스 장르소설 등 B급 문학이 전자책을 통해 부흥하고 있고, 출판사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앱’은 국내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고전문학이 게임을 밀어낸 것이다.

소설가는 왜 포털로 갔나?

①출판사가 포털을 마케팅 공간으로 쓸 수 있다.

②창작 욕구가 있는 아마추어 작가 발굴 기회가 생긴다.

③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며 직접적이다.

④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

⑤전자책의 흥행은 해당 서적의 종이책 판매율을 부추긴다.

대박 난 웹툰 이어 ‘웹 소설’ 들고 나온 네이버

유명작가는 아니지만 자신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해 ‘전자책 등단’하려는 아마추어들도 늘고 있다. 네이버 연재 석 달 만에 400만뷰를 기록한 <광해의 연인>은 신인작가의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 유료 연재 판매 1위라는 기록을 세워 곧 종이책으로 출간된다. 지난 1월 장르소설 캐스트인 ‘네이버 웹 소설’을 출시한 네이버는 요일 별로 작가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스타 작가들로 대박을 터뜨린 웹툰(월 방문자 1700만)의 성공 방정식을 ‘소설’에 대입한 것. 네이버는 작가들이 작성한 원고를 미리 받아 일러스트와 캐릭터 이미지를 삽입한다. 한 마디로 보기 좋게 만드는 것. 지금은 SF 판타지나 무협, 공포&추리, 로맨스 등 장르 소설이 대부분이다. 작가들은 네이버로부터 원고료를 받고, 포털은 트래픽이나 광고로 수입을 올리는 시스템. 미리 보기나 완결된 전편 보기 등의 유료 상품을 통해 수익을 얻고 영화 판권 등 2차 저작권은 작가에 귀속된다.

대상 수상자에게 상금 1000만원과 네이버 정식연재가 제공되는 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에는 1만6000여 명이 몰렸다. 새로운 형태의 등단인 셈. 작품의 인기도와 운영진의 평가를 거쳐 정식 연재 작품으로 승격되는 ‘챌린지리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면 누구나 네이버 정식 연재 기회가 제공된다. 제목과 장르, 연재방식(자유연재, 요일선택)과 줄거리만 등록하면 지망이 가능하다. 무료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마니아용 ‘변방 문학’에 머물렀던 장르소설을 양지로 끌어내긴 했지만 거대 포털이 기존의 장르소설 업체를 도태시킨다거나, 스타 작가들의 부익부를 심화시킬 거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또한 심사방식에 대한 잡음과 함께, 댓글을 남기는 독자들의 나이대가 대부분 10~20대로, 쉽고 가볍게 읽히는 흥미거리 위주라는 것도 취약점이다.

모바일 소설은 꽃노래패일까?

과연 종이책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보는 소설을 ‘소설’로 불러도 될까? 또한 신춘문예 같은 등단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올리고 파는 작품이 등단으로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촐라체>로 대한민국 1호 인터넷 연재 작가가 된 작가 박범신은 “포털이든 스마트폰이든 그건 책을 읽는 플랫폼이 변한 것일뿐, 문학이 아니라고는 볼 수 없다”며 “유통망이 변한 것일뿐 독자와 작가가 만난다는 것에서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소설과 에세이가 매일 연재되는 리디북스의 전자책 앱 ‘스토리홀릭’은 150만 부가 팔린 <덕혜옹주>, 정유정 작가의 <내심장을 쏴라>, 김탁환 작가의 <노서아 가비> 등의 베스트셀러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사진을 넘기듯 터치하듯 읽고 하단의 스크롤 바로 원하는 페이지로 이동하며, 본문 글꼴이나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넘김 효과, 배경색 등을 조절할 수도 있다.

모바일 소설 생태계가 건전하게 자리잡으려면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을 벗고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카카오 페이지에 유료로 작품을 선보인 허영만 화백은 한 인터뷰를 통해 “무료 만화를 내세운 포털 때문에 만화 시장이 초토화됐다. 만화가로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졌다”며 “만약 모바일에서 실패한다면 더는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다.물론 스마트 폰에서의 독서 경험이 종이책과 같을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독서보다는 동영상이나 게임 등에 더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3600만 명 이상의 스마트폰 유저가 사는 나라에서, 고고하게 종이책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한번의 터치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출퇴근 시간에 부담 없는 분량으로 매일 연재되는 글을 조금씩 읽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을 가볍게 독파할 수 있다는 사실은 터치 세대들에게 분명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