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세기 초는 소설의 전성시대였다. 구시대의 몰락과 사회상의 급격한 변화, 두 차례 세계대전 등이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고, 영감을 얻은 작가들은 우수한 작품을 쏟아냈다. 세계문학전집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작품이 이 시기를 살았던 작가들에 의해 쓰였다.

이 시기 주역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저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출판계도 들썩이고 있다. 현행 국제저작권협약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작가가 사망한 해로부터 50년으로 정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1961년에 사망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저작권이 풀리면서 서점가에는 수십 종의 새로운 헤밍웨이 번역본들이 쏟아져 나와 있다.내년에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와 미국 문학의 대표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1962년 사망했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누구나 계약 없이 자유롭게 책을 낼 수 있다.

한ㆍEU 및 한ㆍ미 FTA 타결과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2013년 7월부터는 사후 70년으로 보호기간이 늘어나지만 개정 이전에 사후 50년이 끝나는 작가들의 경우는 기존 조항이 적용된다.

전 세계인들이 통과의례처럼 읽는 작가들의 저작권이 풀리면서 외국문학을 꾸준히 출간해온 출판사들은 언어권별 유명 번역자들을 섭외해 번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명작 번역본들이 앞다퉈 출간되면서 서점가에서는 `번역 진검승부`라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헤밍웨이를 놓고 접전을 벌인 출판사는 민음사와 문학동네다. 이들 출판사는 헤밍웨이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를 지난 1월, 일주일 사이로 번역 출간했다. 영미문학 번역 권위자인 김욱동 교수(민음사)와 이인규 교수(문학동네)가 각각 번역에 나선 이 작품은 그야말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독자들도 어떤 번역본이 원전의 뜻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지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민음사는 오는 3월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함께 단편집 2권도 출간할 계획.

내년에는 헤르만 헤세 공방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그의 대표작들을 펴내고 있는 민음사가 지명도에서 훨씬 앞서 있는 가운데 영원한 청춘의 성서로 불리는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을 새롭게 내놓으려는 출판사들이 줄을 선 상태다.

문학동네는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를 비롯해 대표 작품 번역에 이미 들어갔다. 유럽 문학 및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는 열린책들도 `데미안`을 비롯해 `싯다르타`의 재출간을 검토 중이다. 을유문화사 관계자도 "전집 내 헤세의 작품을 새롭게 출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194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윌리엄 포크너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고 창작활동을 했던 그는 때때로 소설이나 시나리오도 썼다. 문학동네는 그중에서도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곰` 등 포크너의 굵직한 작품을 새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창비 역시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놓고 고심 중이다. 동서문화사는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의 장미` `음향과 분노` `8월의 빛`을 새롭게 출간할 예정이다.

대문호들의 작품이 쏟아지게 되면서 독자들 선택권도 넓어졌다. 열린책들 자회사인 미메시스 조동신 주간은 "카프카의 경우 10년 전 불어판 저작권이 해금되면서 좋은 번역본이 봇물을 이뤘고 그 결과 번역 문학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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