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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칩 작가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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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들어서면 오디오에서 지브리(Ghibli)의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심플하고 간결한 피아노 연주다. 단조의 멜로디인데 가벼운 재즈풍으로 연주되는 탓에 어쩐지 슬픈 웃음 같은 느낌이다. 하얀 벽에는 한창 작업 중인 필름지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익명의 꼬마들이 어디론가 우르르 달려가고, 그 틈에 덩치만 커다란 어떤 소녀가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소녀는 곰인형을 머리에 눌러쓰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나 보다.

오늘의 주인공인 작가는 무표정하다. ‘씩’ 하고 웃어도 어딘가 어색한 얼굴이랄까. 꽤 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뭐, 그런 가요’ 할 듯한 얼굴. 속 깊은 마음을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당신, 뭔가 숨기고 있지! 나는 장난스레 그녀의 멱살을 잡고 당장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뭔가 매력적인. 뭔가 날것일 그것.

우선 지영의 작품은 아름답다. 섬세하고 예민한 알루미늄에 산뜻하게 채색된 표면에는 인형, 식기, 소품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회화이면서 조각품인 이 작품들은 그 자체로 매우 장식적이다. 화려한 꽃잎의 빛깔에 홀린 벌처럼 그 앞에 다가선 관객들은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달콤하고 감각적인 색채들이 사탕발림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리고 보니 저 인형의 동공은 막막한 공허를 담고 있다. 그림 속 인형들은 어딘가 부족하거나 과잉돼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이나 인형같이, 순진무구했으면 하는 존재가 상처받은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불편하다. 가슴이 약간 울렁거린다. 이 슬픔 비슷한 것이 공간에 가만히 울리는 피아노 소리와 공명한다.

 

소통의 부재… 온갖 슬픔에 관하여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의 상황과 마주한다. 그 이유도 결과도 잘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단지 지구의 표면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일 뿐이기에 슬프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모두 사라질 것이란 사실만 알 뿐이다. 왜 너와 나는 다른가. 우리는 왜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는가. 어째서 이토록 다른 생각들로 외로운가. 사실 우리는 누구나 뭔가 하나쯤 결핍된 존재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무하고 슬프다.

천성이 예민한 작가는 모순 안에 놓인 사람들의 상처와 결핍을 감지한다. 그것은 고장난 인형을 볼 때처럼 서글픈 풍경이다. 하지만 작가는 슬퍼도 울지 않는다. 캔디처럼 씩씩하게, 단단하지만 차갑지 않은 가면을 골라 쓰고는 말한다. ‘내가 너를 기억할게. 내가 그것을 간직할게. 그러니까 괜찮아. 적어도 나는, 너를 사랑해 줄 거야.’ 작가는 최대한 담담하고 야무지게 속으로 말한다. 그녀는 부서진 인형을 들고 우는 대신 그녀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꿈속으로 데려간다. 겁내지마. 이건 단지 꿈일 뿐이니까. 아마도 행복한 꿈일 거야. 다 잘 될 거야. 혹시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때는 그냥 꿈에서 깨어나면 돼. 그녀는 그렇게 꿈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도 씁쓸한 매력

그녀는 알루미늄 판을 부식시켜 스케치를 입히고 ‘에노다이징’이란 코팅법으로 착색한다. 인형들과 예쁜 드레스들, 식기들과 소품들의 실루엣이 금속 표면에 새겨져 있다. 여성적이고 장식적인 이미지들은 언뜻 어리고 연약한 느낌이지만 몸체인 금속의 성질 때문에 차갑고 단단하다. 어딘지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주는 바탕의 드로잉은 화사한 색채로 가장하고 있기에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가까이서 보면 터져나갈 듯 가득 찬 오브제들은 딱딱하고 규격화된 사각 프레임 안에 어김없이 정리되어 멀리서 보면 정갈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느낌들은 보는 이의 감각과 기억을 효과적으로 자극하여 작가가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다. 마치 매일 다른 수수께끼를 내는 마법책처럼 흥미롭다.

 

 

유치함과 신중함 사이 균형잡기

세상의 소외된 모든 존재들을 소중하게 기념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결연하다. 그것은 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조용한 결심이다. 산뜻하고 똑 부러진 작가의 표정은 감춰진 섬세한 내면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가 덮어쓴 가면이다. 질 좋은 가죽처럼, 상처받기 쉬운 존재와 존재 사이를 조심스레 구분하는 보호막인 셈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보호하는. 그것은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모든 소중함들을 기록하고 아름답게 기념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어서 사랑스럽다.

그녀는 한참 성장 중인 작가다. 따라서 아직 완성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미래를 점칠 때 그녀의 세상을 향한 애정이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무거움과 가벼움, 농담과 진담 등등의 이중성 사이로 다채롭게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녀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좋은 작가’란 무엇인가?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기본적인 항목도 있다. 본인의 의도를 독창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재능이 있으며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지속하는 꾸준하고 진실된 태도가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영 작가는 오늘과 내일이 어제보다 밝은 작가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전업작가’라는 직업은 매우 지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가가 최소한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그녀의 속살이자 언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재잘거림은 흘러나오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직 스케치 단계인 흑백 그림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른다. 귀여웠을 곰은 누덕누덕 기운 머리를 하나 더 가지고 있고 소녀는 세상이 두렵고 외로워 잎사귀로 눈을 가렸다. 그림 속 인형들도 두려운 흑백의 세상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발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곧 작가 지영은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달콤한 색깔의 시럽을 덧입힐 것이다. 당신도 궁금해지지 않는가? 놀랄 만큼 행복한 꿈으로 반전되어 완성될 이 작품이.

 

■ 작가 지영은 누구?

2001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섬유미술학과에서 수학했다. 주요 그룹전에 13회 참여했으며 다수의 아트페어에 초대받았다. 2006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갤러리 라메르, 2007년 KT아트홀, 2010년 도쿄 언실 컨템포러리(Unseal contemporary)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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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아트 칼럼니스트·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2.03.08기사입력 201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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