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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을 만났다. 지난 2일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단식농성을 하다가 쓰러진 지 닷새 만이었다. 감염을 막기 위해 필요한 헤모글로빈이 정상인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떨어져 외부인과의 접촉이 차단됐다가 풀린 직후였다. 물과 소금으로만 단식을 하다가 이제 겨우 미음을 먹기 시작한 박 의원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작고 여위었던 박 의원은 더욱 가냘파 보였다. 평소 46㎏이던 체중이 40㎏으로 떨어졌다면서도 "공짜로 다이어트한 거죠"라며 웃음지었다. 단식으로 탈진해 입원한 박 의원을 향해 `코 수술했다`는 악플도 있다는 말에는 "제 코가 그렇게 예쁜가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인터뷰 도중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가 병문안을 다녀갔다.

 

-가족들 걱정이 많겠다.

◆ 단식농성 중에는 남편이 매일 다녀갔다. 그런데 `단식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물 많이 마시라고 하고…." 그래도 못 하게는 않더라. 둘째 녀석은 화를 내기도 했다. "단식도 좋지만 잠은 집에서 자라면서." 입원하고는 남편이 첫날 여기서 잤다. 그리고 아들들과 번갈아가며 하루씩 와서 자고 간다.

 

-무엇을 바라고 덜컥 단식을 시작했나.

◆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장소도 중국대사관 근처로 잡은 것이고. 원래 계획은 중국 가서 탈북자 면담하고, 내가 아는 중국 고위층도 만나서 탈북자들의 상황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이 비자를 안 내주더라. 처음에 신청한 게 안 나오기에 중국 가서 뭘 한다는 게 불가능하구나 생각해서 텐트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시작하기 직전에 또 신청했는데 그것마저 거부됐다.

 

-탈북자의 `대모`로 불리는데 탈북자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 특별한 계기는 없다. 전공이 헌법인데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기본권이다. 헌법 제1조는 유명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2조에 재외국민 보호조항이 있다. 그런 학자적 양심으로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학술적인 활동을 한 것이고 국회의원이 돼서는 보다 실질적인 활동을 했다. 재외국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해외동포만 생각하는데 탈북자도 재외동포다. 실제로 헌법 제2조2항에 근거해 이뤄진 재판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탈북자에 관한 것이다. 헌법상 탈북자도 국민인데 행정부 입법부는 아무 관심을 안 가졌다.

지금 탈북자 문제만 부각돼서 그렇지, 사할린 동포, 카레이스키, 위안부 할머니 등 우리 국민의 인권에 관한 문제에 다 관여했다. 탈북자의 `대모`라고 하셨지만 `사할린의 꽃`이라는 별명도 있고 `납북자의 수호천사`라고 불린 적도 있다. 사실 고려인 문제들 나오면 `역사의 조난자`라고 한다. 내가 국회에서 `역사의 조난자`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는데 나라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잊지 말자,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물망초 배지 달고 있는 거다. 최선을 다해서 당신들을 구출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퇴원하고 난 이후 어떤 계획이 있나.

◆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가려고 한다. 12일이 북한 인권을 논의하는 날이다. 이날 북한 인권현황을 보고하고 토론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그때 토론하고 논의한 걸 바탕으로 북한 인권 결의안이 나올 예정이다. 그러니 늦어도 10일에는 출발해야 한다.

 

-가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건가.

◆ 40개국 대표가 참가한다. 그 사람들 만나서 탈북자의 참상을 알려야 한다. 아는 사람도 있지만 피부로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탈북자의 삶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알려주고, 중국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를 증언하고 호소할 것이다. 탈북자 상황을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알지만 관심 없는 사람들…. 호소하고 압박하고 협조를 구하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물론 다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고, 회의가 열리면 부담스러워서 또 안 만나려고도 할 것이다. 가서 `뻗치기` 하면서라도 만나야지. 이명박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열릴 때 1층 식당에서 `뻗치기` 하면서 위원들 만나 평창올림픽 따온 것처럼.

 

-그런데 지금 건강상태로 갈 수 있나.

◆ 의사는 안 된다고 하더라. 남편도 다른 건 몰라도 거기 가는 건 안 된다고 펄쩍 뛰고 있다. 그래도 어쩌나. 지금 갈 사람이 없다. 국회의원들도 다들 4ㆍ11총선 때문에 시간 내기 쉽지 않다. 건강은 하느님이 주시겠지. 제네바 다녀와서도 이 문제를 천착하지 않으면 중국은 똑같이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여기 있으면서도 아는 분들이나 단체에서 병문안 오겠다고 하시면 여기보다 탈북자를 위한 촛불집회에 나가달라고 한다.

 

-국민들 사이에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는데 중국과의 외교 문제나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가 아니다. 한ㆍ중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인권 문제다. 인권은 인류의 문제이고 유엔의 문제다. 유엔난민협약, 고문방지협약 모두 유엔협약이고 북한도 중국도 모두 유엔 가입국이다. 중국은 게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다못해 우리가 대학을 들어가도 그 대학 학칙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안 지키면 제적도 당한다. 국제사회도 똑같다. 유엔에 가입하고 비준하고 발효시킨 나라들이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사실 내가 단식할 일이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이 나서서 지키라고 해야 하는 거다. 그게 안 되면 우리 국민이 해야 하는 거고. 그런데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는 안 했다. 유엔에 가서 탈북자 얘기한 게 올해가 처음이다. 나라가 해야 할 일을 안 해왔다는 거다. `나라 국`자 붙은 국회의원도 해야 한다. 중국 때문에, 북한 때문에 탈북자 얘기 못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탈북자 문제는 여야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보진영은 아직도 꺼리는 기색이 있다.

◆ 여야가 당연히 없다. 탈북자 문제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니까. 진보진영도 이해하고 있다. 내가 북한 인권 결의안 들고 외통위에 가서 눈물로 호소를 했더니 아무도 토 달지 않고 통과시켜주더라. 민주당이 다른 사안 같으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면서 고민했겠지만 탈북자 문제만큼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줬다. 본회의 때도 내가 기운이 없어 나가지 못했는데도 반대 없이 통과가 됐다. 나중에 들어보니 기권 몇 명이 있었고 다 찬성했다고 하더라. 그 이후 한 번도 중국과 외교 문제 소지 있다고 하는 사람 없었다. 남북관계 안 좋아졌다고 하지도 않더라. 통합진보당조차도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안철수 교수님, 조국 교수님, 진중권 교수님. 이렇게 진보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분들도 박선영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이걸 정치적으로 문제 삼는 건 경계하지만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다만 언론이 `억지 균형`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불필요한 강박관념에서 기사 끄트머리에 `한ㆍ중관계, 남북관계 문제 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한 줄 걸치는 게 문제다.

 

-(탈북자 일부가 추가 북송됐다는 소식에 9일 전화를 걸어)북송이 또 있었다는데.

◆ 10명이 어제(8일) 강제 북송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에 있는 구류소에 수감돼 있던 탈북자 25명 중 10명이 단둥으로 옮겨졌다가 밤 11시쯤 북한에 넘겨졌다고 들었다. 북송된 탈북자 10명 중에는 14개월 된 아기도 있고, 70세 노인, 16세 청소년도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 북한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전에 북송됐던 사람들은 대부분 심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식마저 끊겼다. 이게 어떻게 정치적ㆍ외교적 문제인가. 인간 기본권 문제 아닌가.

 

-국회에 있으면 아무래도 학교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텐데, 다음 총선은 생각이 없나.

◆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다. 물론 학교에서 활동하면 한계가 있다. 국회에서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탈북자 출신 비례대표도 하겠다고 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기대해 봐야지. 또 이만큼 국민적 관심이 생겼으니까 나 말고 다른 분이 나서서 하실 수도 있을 거고. 이것 말고도 위안부 문제는 대통령도 관심을 갖고 강하게 얘기했다. 사할린 문제도 관심이 좀 생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독도 문제인데 그런 것도 19대 국회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일단 작은 씨앗이지만 내가 시작을 했으니 누구든 가꾸고 해서 열매가 빨리 맺어졌으면 한다.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던데.

◆ 박사학위 받고 대학에 교수 응모하면서 바꿨다. 사실 내 이름이 두 번 바뀌었다. 원래 이름은 박연희였다. 꽃부리 `연`. 어릴 적 아홉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딸 셋을 데리고 춘천으로 이사를 갔는데 동 서기가 떼주는 서류 들고 전입신고를 할 때 `연`이 `운`으로 바뀌었다. `풀초머리`를 `민갓머리`로 잘못 쓴 거다. 딸 셋이 다 돌림자가 `연`에서 `운`이 됐다. 하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라 이름 바꿀 생각을 못 하고 그냥 `박운희`라는 이름으로 썼다.

나중에 MBC 기자하면서 뉴스를 하는데 시청자들이 `바구니`라고 웃는 모습을 보고 바꿔야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원래 내 이름도 아니었으니 `운희`라는 이름에 미련은 없었다. 게다가 교수생활 시작하려고 보니 학생들마저 `바구니`라고 놀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해서 `선영`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보통 이름에 많이 쓰는 한자는 아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내가 좀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뜻에서 베풀 `선`자와 비출 `영`자를 택했다.


■ She is…

국회의원 박선영은 1956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아홉 살 때 춘천으로 옮겨 춘천여고를 졸업했다.

가난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하고 MBC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3년 기자 활동을 접고 서울대 법학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법대 연구교수를 거쳐 가톨릭대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교수생활과 함께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등을 병행했다. 2007년에는 동국대로 둥지를 옮겼으며 2008년 제18대 국회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자유선진당 대변인과 정책위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의원 외교협의회 한ㆍ러 위원, 코트디부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의원친선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의원은 최근 탈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21일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규탄하며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으며 지난 2일 탈진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9일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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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기자, 이기창 기자 / 사진 김재훈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3.16기사입력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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