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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페르세우스는 비범한 기능을 가진 `모자, 신발, 자루` 등 세 가지 보물로 영웅이 됐다. `차붐` 차범근 감독은 두 가지 보물만 필요했다. 축구밖에 모르는 우직함과 아내 오은미 씨의 내조가 그것이다.

그는 `축구 폐인`이었다. 국내 축구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27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큰 꿈을 찾아갔다. 일 프로팀 중 최약체팀에서 테스트를 받는 수모도 기꺼이 감수했다.  독일에서 거구의 수비진과의 몸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매일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 2개를 삼켰다. 개인 훈련을 너무 많이 해 감독이 밤늦게 그를 감시하기 일쑤였다.

선수시절 독일에서 10시즌이나 보냈지만 아내밖에 몰랐다. 경기 감각과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교민들과도 거리를 둔 것이다. 아내의 물샐틈없는 내조가 `경호를 넘어 차단`으로 비치면서 주변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차붐의 세 가지 보물

최근 제주도와 서울에서 연거푸 만난 차 감독은 "축구를 못하는 게 비정상적이지요. 매일 골문에 골 넣는 생각만 했는데…"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수줍게 한마디 덧붙인다. "아내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1972년 19세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후 1989년 36세에 분데스리가에서 은퇴할 때까지 청년기를 오직 축구로만 보냈다. 그러다 보니 축구 선후배들을 제외하면 친구가 별로 없을 수밖에. 이제 `백수`가 된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조광래 씨에게서 골프 치자는 전화만 몇 번 왔을 뿐이다. 그런 그가 몰래 숨겨둔 10년 지기 친구를 소개했다.

"그동안 제 주변에 아내밖에 없다가 새 독일 친구 덕분에 다니기가 너무 편해요. 폭스바겐의 `페이톤`은 운전하기에 기가 막힌 친구죠. 편안함과 안정성에서 최고라고 할 만합니다."

폭스바겐의 고급 세단 페이톤이 축구교실, 해설가 등으로 바뿐 차 감독의 애마(愛馬)가 된 지는 올해로 5년째다. 20년째 운영 중인 어린이축구교실과 축구 해설가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그의 곁에는 항상 페이톤이 함께한다. 

 

차붐의 10년 지기 친구 페이톤

페이톤이 뭐길래 차 감독에게 인정받는 걸까. 스코틀랜드리그 축구팀 셀틱에서 뛰는 아들 차두리 선수도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차 감독이 아닌가. 페이톤은 중소형차의 강자 폭스바겐이 야심 차게 내놓은 최고급 대형 세단이다. 독일인의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역작이다. 가격은 1억원이 넘는다. 차 감독이 2007년 당시 페이톤의 광고모델로 출연한 이후, 광고료에 사비까지 털어 넣어 지불해야 했을 정도로 비싼 차다. 그래도 차 감독은 "일단 타보면 가격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운전하는 재미가 좋아요. 특히 고속에서의 안정감이 탁월합니다"라고 평했다.

그는 페이톤과의 첫 만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독일 드레스덴에서 페이톤을 직접 타볼 기회를 가졌다. 차 감독의 독일 친구들이 `정말 기가 막힌 차가 나왔다`며 등을 떠민 것이다. 선수 시절 질주 본능을 가졌던 차 감독은 곧바로 페이톤을 끌고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내달렸다. 잠깐 가속페달을 밟은 것 같은데 어느새 속도계는 시속 260㎞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 감독은 "그때 시승 체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쏜살같이 튀어나가면서도 아주 조용했다. 특히 자동차 구석구석 신경 쓴 독일인 특유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독일 축구선수들이 자신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정신" 이라고 강조했다.

차 감독은 원래 벤츠 마니아였지만 2007년 나온 뉴페이톤의 매력에 마음을 뺏겼다고 털어놨다. 축구계의 알아주는 순정파인 차 감독의 특성상 자신이 모는 자동차를 바꾸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독일 국민차`라는 폭스바겐이 대형 세단을 처음 만든 게 페이톤이고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에서 신뢰감이 들었어요"라며 "화려하거나 튀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우직함이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차 감독이 모는 페이톤의 `W12 6.0` 모델은 배기량 6000㏄, 최고출력 420마력의 12기통 엔진을 얹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한다. 대형 세단이지만 정지 상태에서 100㎞까지 속력을 내는데 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최고급 소재만을 사용한 인테리어는 국내 수입 대형 세단 중 가장 고급스럽고 중후하다는 평가다. 전장 517㎝, 전폭 190㎝로 웬만한 리무진 크기의 대형 공간을 제공하고 트렁크에 골프백 2개도 너끈히 들어간다. 최근 골프에 재미를 붙인 차 감독에게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애마다.

 

감동을 줘야 오래 기억된다

최고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이 한정된 수량만 수제작하는 페이톤은 명품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이제 열 살밖에 안 됐지만 그 인지도와 판매 실적은 수직상승 중이다. 사실상 글로벌 판매 첫해라고 볼 수 있는 2002년에 3403대가 팔렸던 페이톤은 2010년 전 세계에서 7477대가 판매되며 8년 새 2배 넘게 판매가 급증했다. 1억원이 넘는 고급 세단치고는 눈부신 상승세다. BMW 벤츠 등 고급 세단이 출시 초창기 오랫동안 판매 부진을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 놀랍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꾸준하다. 처음 국내시장에 나온 2005년 284대가 팔리더니 2007년에는 837대가 판매되기도 했다. 2005년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에 출시된 페이톤은 2009년까지 독일을 제외한 글로벌 판매에서 1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다 생소한 얘기다. 워낙 마케팅에 뚱한 독일인 특유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차 감독도 "원래 독일 사람들이 차 좋다고 떠들기보다는 `품질이 좋으면 알아서 사가겠지` 하는 게 있어요. 요즘은 좀 바뀐 것 같기도 한데…"라고 말했다.

페이톤의 인기 비결은 이 차가 생산되는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감동적 스토리텔링이 한몫한다. 올해 초 페이톤 오너의 자격으로 드레스덴 `투명유리 공장`을 방문한 차 감독도 맞장구를 친다. "우리가 보통 자동차 공장 생각하면 지저분하고 소란한 장소를 떠올리는데 드레스덴 공장은 그 깔끔함에서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한쪽에선 자동차를 제작하고 한쪽에선 클래식 콘서트를 할 수 있을 정도죠. 과거 동독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서 화합의 상징으로도 표현됩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폭스바겐은 페이톤이 차범근 감독처럼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차 감독의 인생이 힌트가 될 만하다. `감동을 주는 명품이 되자`가 페이톤의 철학이니까. 차 감독은 자신이 독일인의 사랑을 받게 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끔찍했던 부상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속 얘기를 지난달 16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들을 수 있었다.

독일 진출 이후 오래되지 않은 1980년 당시 차 감독에게는 인생 최악의 경기장 사고가 발생한다. 레버쿠젠의 수비수 유르겐 겔스돌프는 그 해 UEFA컵 챔피언에 오른 프랑크푸르트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을 악의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경기 도중 무방비 상태의 차 선수에게 겔스돌프는 살인적 백태클을 감행했고 차 선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곧바로 실려나간 차 선수는 요추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선수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기를 뛰어야만 돈을 벌 수 있었다. 장기간 부상은 곧바로 생계가 어려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민 끝에 프랑크푸르트 구단 측은 차 선수에게 겔스돌프 선수를 형사고발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합의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차 감독의 회상.

"며칠 밤을 잠도 못 자고 고민했던 것 같아요. 구단 측은 당연히 제가 그 선수를 고발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죠. 그런데 제가 좀 우직하잖아요. 제가 겔스돌프를 고발하면 그것도 보복이 되는 거고. 그냥 뒷일 생각 안하고 용서하기로 했지요. 아내도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주고."

당시 차 선수는 매스컴을 통해 `증오가 아닌 용서로 겔스돌프에 대한 형사 고발을 거부합니다`라고 발표했다. 발표 다음날 병원은 물론 독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가 누워 있는 병원으로 `차붐 사랑해요`라는 메시지가 달린 꽃다발이 물밀듯이 쇄도했다. 가해자인 겔스돌프도 병원을 찾아와 차 선수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다. 차 감독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나에 대한 독일 팬들 감정이 `좋아한다`에서 `사랑한다`로 바뀐 것 같아요. 저의 용서가 합리적인 독일 사람들 마음을 크게 움직인 셈이죠.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번의 용서로 차 선수는 영원한 친구를 얻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차 감독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겔스돌프와 재회했고 가장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그는 갈색 폭격기로도 불린다. 당시 세계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축구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었다. 손쉽게 기록할 수 있는 페널티킥은 단 한 골도 없을 정도로 팀 기여도가 높았다. 그런 그도 단번에 독일 리그에 적응했던 것은 아니다. 초반 3시즌 동안 부상을 달고 살 정도로 체력이 좋지 않았다. 차 감독은 "한국에선 집중력 없이 훈련을 길게 했다면 독일에선 짧게 모든 것을 쏟는 방식을 택하더군요. 항상 긴장하면서 뭔가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던 그 순간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훌륭한 축구감독으로도 이름을 새겼다. 울산현대 수원삼성 등 국내 프로팀을 거치며 훈련 문화를 바꿨다. 선수들은 짧은 순간 집중력 있는 훈련을 요구하는 차 감독의 훈련 방식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결 같은 선수 선발 기준으로 선수들 불만을 잠재웠다. 자신은 뛰어난 스타였지만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았다.

"때론 원칙을 지키기가 어려웠어요. 스타를 선발로 넣으면 계속 못하다가도 한 방이 있어서 이길 수도 있죠. 그러나 선수단 전체를 운영하는 데 반드시 합리적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매일매일 훈련을 통해 선수별 점수를 매겨 평균 75점이 넘어야 선발로 넣었죠. 합리적 기준이 있다 보니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어요."

원칙과 합리성, 그가 독일에서 청춘을 바치며 얻어낸 교훈이다. 그는 독일 차와 독일 축구대표팀을 곧잘 비교한다. 독일 축구 선수 개개인은 그리 뛰어난 스타들이 아니다. 그러나 한데 묶이면 강한 힘을 발휘한다. 포지션별로 특화된 선수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차 감독은 "과거 한국 축구 감독들이 독일의 축구 스타이자 스트라이커로 명성이 높은 게르트 뮐러를 보고 `저게 무슨 축구선수냐`라고 말한 적도 있죠. 그는 드리블도 별로고 체격도 왜소한 데다 발도 느렸으니까요. 그러나 골은 기가 막히게 잘 넣었죠. 스트라이커가 골만 잘 넣으면 되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스바겐을 비롯해 독일 차가 세계 최고인 이유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드레스덴 공장에 가보니 직원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차를 만들더라고요. 차에 대한 태도가 품질로 나타나는 셈이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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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호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2.03.16기사입력 20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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