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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대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3억원에 팔린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사진제공=크리스티>

 

한 여자가 실제 쓰던 침대를 미술관에 갖다 놓으면 미술작품이 될까? 51세의 한 독신녀 침실에서 가지고 나온 침대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놓는다면? 그 침대 위에는 구겨진 베개, 개지 않은 이불, 벗어던진 스타킹이 그대로 놓여 있고, 침대 주변에는 빈 술병과 담배 케이스, 캔, 휴지에 콘돔까지 나뒹군다. 이런 설치물을 ‘설치미술 작품’으로 봐 줄 수 있을까? 아니, 미술시장에서 판매를 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시장에서 이는 더 이상 질문할 거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이 침대는 실제 지난 7월 초 런던 크리스티에서 열린 현대미술 경매에서 254만파운드(약 43억원)에 팔린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나의 침대(My Bed, 1998)’라는 작품이다.

 

한 여자의 침대가 43억원

 

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어느 날 나흘 만에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오다가, 자신의 침대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세상에, 내가 만일 저기에서 죽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사람들이 내가 죽은 장소를 보면서 나의 삶을 다 알아버렸겠네!’ 하는 생각에 섬뜩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저 침대 위에서 죽으면 뭐 어때? 최악의 장소는 아니야. 죽은 나를 영원히 살아있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소가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순간 떠오른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즉, 침대와 침대 주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들고 나와 ‘나의 침대’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세계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되었고, 1999년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의 후보작품으로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미술관’에 전시되기까지 했다.

 

물론 아무나 자기 침대를 들고 나온다고 해서 미술작품이 될 수는 없다. 트레이시 에민은 1990년대 세계 현대미술계에 돌풍을 몰고 온 영국의 젊은 작가들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0년대에 영국에서는 참신하고 희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이 매우 실험적인 미술을 하고 있었다. 영국의 권위 있는 사업가이면서 세계적 미술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는 이들을 눈여겨봤다. 이들의 작품을 고가에 구입하고 자신의 사립미술관인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도 해주면서 키웠다. 곧이어 미술평단은 이들에게 ‘YBA’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YBA에 속한 작가들은 세계적인 작가들로 성장했다. 트레이시 에민과 함께 이 그룹의 리더격인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살아 있는 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평단과 구단에서 매우 높게 평가되는 세계적 작가다.

 

트레이시 에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내가 1963~1995년에 같이 잤던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이라는 설치작품이다. 자기가 태어난 뒤부터 작품 제작연도인 1995년까지 잠자리를 같이 해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텐트 안에 적어 놓은 것이다. 남자친구부터 할머니까지, 그야말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 본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 작품은 컬렉터 찰스 사치가 4만파운드에 구입했다. 불에 타버려 지금은 없지만, 워낙 충격적인 작품이어서 여전히 많이 거론되고 있다.

 

다시 말해, 트레이시 에민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 현대미술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는 화제의 작가이고, 현대미술 시장의 궤도를 바꿔놓은 영국 YBA의 대표적인 작가다. 게다가 세계적인 톱 컬렉터와 딜러들이 그녀의 작품을 뒷받침하고 있기에 이 작가의 작품은 고가에 거래가 된다.

 

사실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침대라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사생활을 공공장소, 그것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공개한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이 침대를 43억원에 사는 사람은 그 침대의 물질적인 가치를 사는 게 아니라, 트레이시 에민의 이런 ‘행위’가 이 시대에서 가지는 가치와 앞으로 예술계에 끼칠 영향, 즉 역사적인 가치 등에 돈을 내는 것이다.

 

물고기, 하늘을 날다

백남준 1976년작 ‘물고기, 하늘을 날다’

 

작가의 ‘아이디어’ 값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에서 진짜 작품은 그 작가의 ‘아이디어’이지, 침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듯, 현대미술시장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 미술작품이 많다. 이런 작품은 ‘아이디어’ 또는 ‘행위’에 가격이 매겨진다.

 

‘대지미술’도 그렇다. 대지미술은 말 그대로 산, 들, 바다 등 자연을 배경으로 그 위에 대형 설치물을 마련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을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대지미술로 유명한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Christo & Jeanne Claude) 부부는 독일 베를린 의회를 포장하고,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섬 주변을 분홍색 천으로 둘러싸고, 파리 퐁네프 다리를 천으로 꽁꽁 옭아매는 작품을 했다. 가장 성공한 것은 뉴욕 센트럴 파크의 남과 북 36.8km에 주황색 천으로 된 철골 문 7500개를 세워 놓은 작품이었다. ‘더 게이츠(The Gates)’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005년 2월에 무려 16일 동안 센트럴 파크에서 나부끼며 이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고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이 유명한 ‘더 게이츠’는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부부가 이 프로젝트의 기획단계에서 그렸던 드로잉이나 이 작품이 설치되었을 때의 모습을 찍은 공인된 사진을 사면 된다. 이런 드로잉과 사진은 질과 크기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거래된다. 그 자체로도 벽에 걸기 아름다운 평면작품이면서, 유명한 대지미술 작가들이 했던 화제의 작품을 기록하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대지미술이나 퍼포먼스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곧 사라진다는 것이 또한 매력이기도 하다. 드로잉이나 사진은 이런 ‘순간성’을 붙들어놓는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대지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특정 장소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그 지역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불발되기도 한다.

 

실제로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부부가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건물을 포장하려던 ‘빌딩 감싸기(Wrapped Building)’ 프로젝트는 시의 허가를 받지 못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만들었던 드로잉과 콜라주는 남아 있고, 시장에서 거래가 된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실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더 게이트’ 같은 작품의 드로잉보다는 훨씬 싸게 팔린다.

 

크리스토 드로잉 작품

대지미술인 ‘더 게이츠’를 완성하기 위해 크리스토가 했던 드로잉 작품.

2011년 서울옥션에서 1억4800만원에 팔렸다. <사진제공=서울옥션>

 

백남준을 기억하는 ‘사진’의 가치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해외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많이 펼쳤다. ‘미래에는 캔버스 대신 비디오 스크린으로 미술작품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그의 선구자적인 아이디어는 역사에 남는 뛰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비디오 조각이나 평면작품은 살 수 있어도, 그의 퍼포먼스나 아이디어를 손에 넣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대신 백남준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은 소장해서 벽에 걸어 둘 수 있다.

 

백남준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했던 역사적인 퍼포먼스들을 담은 사진과 포스터, 사진가 임영균이 백남준이 한창 작업을 할 때 찍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다운 모습의 사진 등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인기 있는 작품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미술계에 자주 거론되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이라는 작가가 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는 자기 작품을 ‘조작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이라고 부른다. 고용된 배우(티노 세갈은 이 배우를 ‘통역가(Interpreter)’라고 부른다)들이 관객들에게 다가가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하기도 하고, 뜻이 애매한 말을 반복해 외치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두 배우가 서로 애무하고 키스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교감, 현대인들의 언어, 미술관이라는 권위가 자아내는 분위기, 이런 것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실제 어떤 시각예술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관객에게 이렇게 행동하라’ 등의 지시만 정한다. 그런데 2008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가 티노 세갈의 ‘키스’라는 작품을 7만달러에 구입했다. 배우 두 명이 8분 동안 천천히 무용하듯 서로 매만지고 키스하는 이 작품을 구입하다니 무슨 소리일까? 미술관은 두 배우의 이 퍼포먼스를 전시할 수 있는 ‘권한’을 산 것이다. 이 권한을 구입하지 않고서는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를 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이디어, 사라져버릴 퍼포먼스와 대지미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미술도 모두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소유할 수 없는’ 미술을 소유하는 값은 그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 작가의 중요성, 얼마나 화제가 되었던 미술인가 등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이규현 이앤아트(enart.kr) 대표]

 

이규현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4.08.07기사입력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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