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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자’는 수많은 판본이 있는데 민음사 출간본은 ‘세관’편이 서문의 이름으로 결론 다음에 수록돼 있다. 여기서는 마당미디어에서 출간한 ‘주홍글씨’를 텍스트로 삼았다. 연구서로는 정경식의 ‘모순과 통합의 시학’, 박양근의 ‘나다니엘 호손 연구’를 참고했다.

 

“아메리카는 아마 우리 시대에 있어서 문학이 가장 덜 보급된 문명국가이다. 창작 활동에 종사하는 소수의 아메리카합중국인 대부분이 본질적으로 영국적이며 그 형식에 있어서는 더욱더 영국적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 아메리카합중국 주민들은 문학이란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 문학의 불모성을 이렇게 꼬집고 있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나다니엘 호손(1804~1864년)의 ‘주홍글자’가 미국 문학의 효시라며 호손에 의해 미국 문학은 영국 문학의 식민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미국 문학은 1620년 영국인이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주홍글자’에 의해 문학다운 문학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주홍글씨’는 헤스터 프린이 태어난 지 3개월 된 펄을 가슴에 안고 감옥 문을 나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호손은 헤스터가 죗값을 치르고 감옥을 나서는 장면부터 이 소설을 그린다. 처벌을 받기 이전 일련의 정사에 대한, 이 소설의 외적 줄거리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는다.

 

가령 누가 먼저 상대방을 유혹했는지, 그들이 어디에서 육체적 관계를 맺었는지, 또 몇 번의 밀회를 즐겼는지 따위의 동기나 과정에 대해 작가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다. 독자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삼류 작가라면 아마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간음 장면과 그 후의 정사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당시 호손도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처지여서 돈가뭄에 시달렸지만 불륜에 대한 묘사는 ‘절제의 미학’을 유지한다.

 

“새 식민지의 개척자들은, 처음에 인간의 도덕과 행복의 이상향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우선 그 황무지의 일부를 떼어 공동묘지를 만들고, 또 일부를 떼어 감옥의 터로 정하는 것이 건설 초기에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소설 도입부에서 호손은 먼저 초기 이주민들이 공동묘지와 감옥을 만들게 된 내력을 설명한다. 이 땅에 온 선조들이 종교적 광기를 피해 또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신대륙에 새로운 ‘낙원’을 건설했지만, 정작 그 땅조차 종교라는 이름의 광기와 야만이 지배했던 경직된 시대로 변해갔던 것이다.

 

호손이 청교도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던 초기 식민지 시절에 이미 청교도 목사가 간음을 범하는 등 위선적인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규율을 설파하는 목사가 바로 이를 무너뜨린 죄인으로 등장하는데, 그 처벌도 유럽 중세의 마녀재판을 방불케 한다. 17세기 중엽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은 유럽의 종교 광신자들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호손은 생각했다.

 

호손은 헤스터 프린이 장터 광장에 있는 ‘처벌대’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출옥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헤스터를 단죄한 처벌대를 18세기 말 프랑스 공포정치의 기요틴에 비유한다.

 

“이 처벌대는 당시 처형 시설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테러 정치가들을 처단했던 프랑스의 단두대 못지않은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됐었다. (…) 죄인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그의 얼굴을 가릴 수 없게 하는 것보다 더한 모욕은 없을 것이다.”

스터는 장터 처벌대에서 공개적인 수모를 당하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헤스터는 어쩐 일인지 그곳을 떠나지도 않았고 또 가슴에 새긴 ‘A(Adultery)’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도 않았다.

 

“나는 이 땅에서 죄를 지었다. 이 생에서 받은 형벌은 이 땅에서 치러야 한다. 그리하면 마침내는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고 앞서 잃은 것과는 색다른 순결을 안겨 줄 것이다. 수난의 결과로서 더욱 성자다운 순결을.”

 

헤스터는 이렇게 독백하고 이곳에서 살기로 작정한다. 헤스터 프린은 치욕을 당한 그곳에서 도망치지 않고 보스턴 거리의 변두리 바닷가 근처 쓸쓸하고 외딴 곳의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딸 펄과 함께 산다.

 

헤스터가 자유의 몸이 됐지만 청교도 사회는 여전히 그녀를 죄인 취급한다. 빈민이든 상류층 부인이든 헤스터에게 냉혹하게 대한다. 아이들 또한 어른들과 다름없다. 목사들도 그녀를 가만히 놓아주지 않았다. 목사들은 길을 지나다가도 그녀를 보면 발길을 멈추고 서서 그녀에게 한바탕 훈계를 했다. 또한 주일날 헤스터가 교회에 가면 불행히도 자기가 목사의 설교 소재가 되곤 했다. 말하자면 헤스터 모녀는 청교도 사회에서 외딴섬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선한 일을 베풀어도 공동체는 이들 모녀를 관용하며 포용해 주지 않았다.

 

이에 호손은 “요컨대 헤스터 프린은 사람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 표지 위에 멈춰지는 것을 느낄 때면 언제나 몸서리치는 고통을 받았다”고 적었다. 간음한 여인이 죗값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징벌을 가하는 청교도 사회의 경직성과 이중성, 근본주의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런데 청교도 사회의 이중성은 다름 아닌 딤스데일 목사의 간음과 그 이후의 처신에서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딤스데일은 자신과의 정사로 죗값을 치르기 위해 처벌대에 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과 함께 죄를 짓고 그리고 함께 고통받고 있는 그 남자의 이름을 대시오! 헤스터 부인. 그대가 침묵을 지킨다고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된단 말이오.”

 

그가 뻔뻔스럽게 “남자의 이름을 밝히고 회개한다면 주홍글씨를 떼어 낼 수도 있다”고 하자 헤스터 프린은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제 고뇌 말고도 그분의 고통까지 함께 견디고 싶습니다”라고 응수한다. 이 장면은 달리 말하자면, 딤스데일 목사 그 자신의 이중인격이 적나라하게 징벌받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목사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의 순간이 또 있을까.

 

딤스데일 목사는 자신의 죄를 숨기는 이중성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성직자의 검은 옷차림으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나, 나는 철저하게 부정한 거짓의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딤스데일은 설교에서 자기가 가장 비열한 사람들보다도 더 비열한 인간이고, 최악의 죄인이며 저주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기의 이 더러운 육체가 청중들이 보는 앞에서 하느님의 불타는 노여움으로 인해 오그라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도들은 격분해 일제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그를 갈기갈기 단죄하기는커녕 그의 위선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말을 모두 듣고도 “정말 신성한 청년이다!”라거나 “지상의 성자다!”라며 더욱더 그를 존경할 뿐이었다.

 

여기서 청교도 사회의 종교적 맹목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일부 종교집단의 모습이기도 하다. 목사는 이곳에서 도망가 함께 살자는 헤스터의 제의에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호손의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헤스터 프린이 청교도적 단죄인 주홍글씨를 버려도 될 상황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달았고 다시 되돌아와서도 ‘A’를 다는 장면일 것이다. 그때, 고통(간음)의 의미는 사랑(Amour), 심지어 천사(Angel)로 변모된다고 비평가들은 해석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해석으로 위대해진다.”

 

이는 일찍이 러시아 문예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의 말로 ‘주홍글자’에 꼭 들어맞는다.

 

최효찬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4.08.13기사입력 201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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