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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때로 ‘우연한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한다. 찰스 디킨즈(1812~1870년)의 ‘위대한 유산(1861년)’을 읽다 보면 먼저 이런 생각부터 든다. 주인공 핍의 운명을 뒤흔든 것은 어린 소년 시절 우연하게 찾아온 두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핍은 부모를 잃고 억척스러운 누나와 대장장이인 매형 조 가저리 밑에서 수습공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핍은 독신녀인 해비샴이 사는 새티스하우스에서 해비샴의 양녀인 에스텔라를 만난 후 자신의 가난과 무지, 비천함을 느낀다. 이는 핍의 다른 세계와의 첫 만남에 해당하는데, 핍은 이때 크나큰 자아 위축을 경험한다.

 

이후 핍은 감옥선을 탈출한 죄수 매그위치를 늪지대의 교회 무덤에서 만나며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죄수는 핍에게 음식과 줄칼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만약 안 가져오면 네 심장과 간을 빼어 버릴 테다”라고 협박하면서. 무시무시한 공포에 사로잡힌 핍은 누나의 집에서 몰래 음식과 줄칼, 브랜디를 훔쳐 탈옥수에게 건네준다.

 

핍과 죄수의 이 기묘한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골 소년이 갈망하던 ‘꿈같은 세상’으로 핍을 이끄는 구실을 한다. 훗날 그 죄수는 핍에게 막대한 유산 상속을 약속하는 은인인 매그위치라는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매그위치는 또한 핍이 사랑에 빠진 에스텔라의 아버지기도 하다.

 

‘위대한 유산’은 이처럼 매그위치, 에스텔라 부녀와 핍의 두 번에 걸친 만남이 엮어 내는 씨줄과 날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핍의 성장 과정에 따라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청년기 런던에서의 신사(교육) 생활, 그리고 성년이 된 후 은인과의 뜻밖의 만남을 계기로 정신적 성숙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로 단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단계는 내용상 핍이 순수했던 시절과 타락한 세상에서의 경험을 거쳐 결국 정신적, 도덕적으로 성장해 간다는 일종의 변증법적 구조를 형성한다.

 

소설 전반부는 시골 소년 핍의 첫사랑 이야기다. 핍은 사랑에 빠져들수록 극도의 자기모멸과 자기부정에 빠져든다. 하류계층 소년이 상류계층 소녀를 사랑한 ‘죄’다. 핍은 에스텔라를 만나면서부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이로 인해 자신이 살던 매부의 집과 대장간 등 모든 환경을 경멸하게 된다.

 

“나는 매부의 대장간이 나에게 남자다움과 자립심을 길러주는 빛나는 길이 되리라고 믿어 왔다.”

 

에스텔라를 만나기 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핍은 새티스하우스를 출입한 지 일 년 정도 됐을 무렵에는 조의 도제가 되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는다(사랑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가정, 직업, 환경 등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핍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핍은 자신을 찾아온 제이거스 변호사로부터 뜻밖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막대한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너는 아주 넉넉한 재산을 소유하게 될 거다. 게다가 네가 이런 생활에서, 이런 곳에서 벗어나 신사로 길러지는 것이 현재 재산 소유자의 소원이란다…. 다시 말해 막대한 유산을 소유할 소년으로 말이지.”

 

변호사는 어떤 은인이 핍에게 유산을 상속해주고자 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린다. 또한 이 은인은 핍이 시골을 떠나 런던에서 신사로 교육받기를 원한다고도 덧붙인다. 핍은 그 감격스러운 심정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내 심장은 극도로 방망이질하고 있었으며,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핍이 그토록 바랐던 신분 상승의 꿈은 마치 신데렐라처럼 어느 날 불시에 이뤄진다. 에스텔라로 인해 자극받은 신사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드디어 핍이 갖추게 된 것이다. 신데렐라와 같이 꿈을 실현한다는 이런 소설적 구성으로 디킨즈는 ‘대중적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핍과 같은 ‘돈벼락’을 욕망하는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핍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어린 시절 음식을 갖다줬던 그 죄수가 자신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핍은 자신의 은인이 혹시 해비샴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을 변증법적 구조로 본다면 여기까지가 ‘정(正)’에 해당한다. 이어 핍이 신사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면서 ‘반(反)’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런던에서 신사 수업을 받는 핍은 낭비벽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무기력하고 공허한 인간으로 타락해 간다. 핍이 런던에서 주로 한 일은 ‘숲 속의 방울새들’이라는 사교클럽에 가입해 신사의 이름을 더럽히는 한량들과 허울뿐인 친교를 쌓고 그로 인해 감당 못할 부채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핍은 겉으로는 신사가 돼 가지만, 내면적으로는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여기서 디킨즈는 노동하지 않고 낭비만 일삼는, 당시 영국에 만연한 ‘일그러진 신사상’을 고발한다. 빅토리아조에 들어오면서 사회적 분위기는 경제력을 획득해 신사로 신분 상승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장려하는 상황이었는데, 디킨즈는 도리어 이를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디킨즈는 이 소설에서 사회적 이상이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막상 하류층이 빈곤의 악순환을 극복하고 신분 상승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디킨즈보다 30년 앞서 미국을 방문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평등한 부의 욕망이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게 하기도 한다고 갈파했는데 이게 영국의 사회 상황이 된 것이다.

 

핍은 어느 날 자신을 런던으로 이끈 은인이 어린 시절 자신에게 누나의 음식을 훔치게 한 죄수 매그위치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더욱이 그 죄수가 유형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탈출해 런던에서 ‘프로비스’라는 이름으로 숨어 지낸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때부터 핍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핍은 자신의 은인인 매그위치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매그위치는 체포돼 사형 판결을 받고 죽고 만다.

 

은인이 죽은 후 핍은 지독한 열병에 걸려 한 달 이상 사경을 헤맨다. 겨우 의식을 차린 핍은 그동안 자기를 간병해준 사람이 매부 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핍은 에스텔라를 좋아하게 되면서 조와 그의 대장간을 경멸했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매부의 처신은 핍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핍은 침대에 누워 참회하듯 속삭인다.

 

“하느님, 그를 축복하소서! 아아, 신이여, 이 온화한 그리스도인을 축복하소서!”

 

이후 사업가로 기반을 잡은 핍은 11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남편과 사별해 혼자된 에스텔라를 만난다.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어요”라는 핍의 고백에 “친구로 계속 지내도록 해요”라고 에스텔라는 말한다. 디킨즈는 당초 두 연인이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재회하는 결말로 바꿨다고 한다.

 

‘위대한 유산’은 핍이 우여곡절을 거쳐 신사가 되는 모습을 그렸지만, ‘위대한 유산’에서 진정한 신사는 묵묵한 인간미의 대장장이 조라고 할 수 있다. 디킨즈는 조를 새로운 사회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조의 신사도야말로 핍이 상속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지.

 

최효찬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4.09.16기사입력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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