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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 문학 중 이 작품에 비견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 작품은 다름 아닌 레프 톨스토이(1828~1910년)가 쉰 살을 앞두고 출간한 ‘안나 카레니나(1877년)’다. 2007년 ‘타임’지가 현대 작가 1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소설’로도 뽑혔다. 아마도 사랑을 위해 집을 뛰쳐나온 중년 여인의 비극적인 불륜 로맨스와 함께 톨스토이 자신의 분신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톨스토이즘’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마치 ‘불륜소설’로 포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죽음이나 올바른 삶과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하며 도덕적인 각성으로 이끈다.

 

19세기 후반 당시 ‘안나 카레니나’의 무대가 된 페테르부르크의 세계는 두 부류의 인간들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야비하고 우둔하며 특히 우스꽝스러운 인간들’이었다. 이렇게 역설적으로 묘사했지만 이들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지향하는 진실한 인간이다.

 

소설 속 레빈 같은 인간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말하자면 ‘도덕군자’형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인간들로 구성된 세계’로, 브론스키가 속한 ‘바람둥이’형이다. ‘진짜 인간’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정욕에 몸을 내맡긴’ 사내들을 말한다. 이들 세계에서 도덕을 운운하는 것은 꼴사납고 촌스러운 일이다. ‘진짜 남자’는 자질구레한 도덕 나부랭이는 무시하고 용감하게 연애사업에 정진해야 한다.

 

흔히 여성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고 한다. 말하자면 도덕군자형보다 바람둥이형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바람둥이가 당장은 여성을 따분하지 않게 하고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도 두 여자 주인공 안나와 키치가 모두 그랬다. 안나 오빠의 처제인 키치는 멋쟁이 브론스키를 보자마자 홀딱 빠졌다. 그녀의 어머니인 공작부인도 내로라하는 재력가에다 수려한 외모의 브론스키를 사윗감으로 점찍는다. 반면 그녀의 아버지 스체르바츠키 공작은 한눈에 브론스키가 결혼은 안중에 없고 단지 여성을 농락하려 드는 바람둥이임을 직감한다. 딸을 둔 어머니라면 사윗감 보는 ‘눈’에 관해서만은 남편(아버지)의 ‘직감’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나는 그만 바람둥이 브론스키의 애정공세에 넘어가 불행 속으로 빠져든다. 반면 키치는 브론스키가 무도회에서 안나에게 향하는 바람에 그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안나가 도덕 나부랭이는 안중에도 없는 브론스키와 불륜에 빠져 불행해지는 데 반해, 브론스키에 눈이 멀어 ‘도덕군자’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던 키치는 레빈의 청혼을 다시 받아들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면 남성은 쾌활하고 활력 있는 여성에게 끌린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헬레나의 모습을 묘사하며 그녀의 ‘생기발랄한 애교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무엇이! 여자의 아름다움은 별것 아니오. 경직된 그림인 경우가 흔하지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유쾌하고 생의 의욕이 넘치는 그런 것.”

 

톨스토이 또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유쾌하고 생의 의욕이 넘치는 것’이라며 최고의 매력으로 미모가 아닌 활력을 꼽는다. 이 소설에서 안나가 그 전형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브론스키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역에 갔다 막 하차하는 안나와 마주친다.

 

“그녀가 아주 미인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 브론스키는 그녀의 얼굴에서 약동하는, 정숙하고 생생한 표정을 읽었다.”

 

역에서 이뤄진 안나와 브론스키의 숙명적인 만남의 순간에 브론스키를 사로잡은 것은 안나의 미모가 아닌 활력이었던 것이다.

 

브론스키와의 이 조우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다. 안나는 오빠의 불륜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를 해소해주려 오빠의 집으로 가기 위한 여행을 하다 그만 그녀 자신이 되레 불륜에 빠져든다.

 

소설에서는 흔히 주인공의 운명과 관련해 ‘복선’이라는 장치를 활용한다. 톨스토이도 여러 번 복선을 활용한다.

 

안나가 브론스키와 처음 조우한 모스크바역에서 그만 역무원이 후진하는 기차에 사람이 깔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역을 빠져나오던 안나가 그 광경을 목격한다. 안나는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는데 훗날 그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기차에 투신해 자살한다.

 

또 하나의 복선은 첫 정사 장면에 나온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첫 정사를 나눈 후 자신들을 살인자와 죽은 시체에 비유한다. 더욱이 브론스키가 안나의 육체에 퍼붓는 키스는 마치 살인자가 시체를 난도질하는 것에 비유된다.

 

“그는 살인자가 자기가 죽인 시체를 보고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죽인 이 시체야말로 그들의 사랑이었고, 그들의 사랑의 첫 단계였다. 살인자는 분노를 안고 그 시체에 덤벼들어 난도질하는 것이다. 꼭 그와 마찬가지로 그도 그녀의 얼굴과 어깨 위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 역시 불운한 주인공의 운명을 예고하는 복선이라고 하겠다. 소설은 안나의 불륜을 다루지만 달콤한 정사에 대한 묘사는 단 한 문장도 나오지 않고 이처럼 무시무시한 글로 가득 차 있다.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진 후 안나는 남편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고 급기야 집을 뛰쳐나와 공공연한 사랑놀이를 한다. 이는 사교계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 당시 사교계 귀부인들은 너나없이 ‘비밀 정사’를 즐겼다. 다만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런데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정사를 숨기지 않고 발설했다. 비밀 정사를 즐기던 사교계의 부인들은 자신들의 위선이 드러난 것처럼 분노했고, 안나에게 ‘더러운 창녀’라며 돌을 던졌다.

 

톨스토이가 안나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바로 당대 사교계의 부도덕하고 위선적인 행태였다. 아니면 ‘존재하는 현실을 모르는 척하라’는 경고는 언제 어디서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요되는 암묵적 법규 중 하나인 것인가.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집착할수록 그의 사랑이 식어버릴까 불안해하다 급기야 화물열차에 몸을 던진다.

 

“그때 갑작스럽게 안나는 맨 처음으로 브론스키를 만났던 날 역사(轢死)한 사람을 상기하고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깨달았다. (…)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

 

이 장면을 두고 막심 고리키는 톨스토이가 ‘여자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적대적이며’ ‘여자에게 벌주는 것을 즐긴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 소설은 안나의 불륜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동시에 레빈의 각성에 이르는 구조로 진행된다. 레빈은 루소의 ‘에밀’에서 에밀과 같은 인물이자 톨스토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그려진다. 시골 영지에서 키치와 결혼한 레빈은 직접 노동을 하면서 이기적인 지주의 삶에서 깨어나 자기희생적인 ‘선’한 삶으로 진화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문장은 마치 ‘불륜으로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모든 불륜은 육체적 사랑에 불과하고 거기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고.

 

최효찬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4.09.30기사입력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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