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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처음에는 안 보려고 했다. 보수들을 위한 한 편의 영화라는 신문 해설이 눈에 거슬렸다. 여기에다 여야를 막론하고 제 논에 물 대기 식 정치인들의 해석에다 대통령의 애국심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안 보겠다는 다짐은 더 굳어졌다. 그러다 새해 첫날 가족들의 손에 끌려 영화관에 갔다. 관객 동원 천 만 명이 넘어선다는 국제시장 얘기다. 영화를 통해 흥남 비료 공장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추억하고 싶었던, 월남전에서 4발의 관통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장인이 보고 싶어했다.

 

영화를 보면서 현대사의 질곡, 전쟁의 참화 속에 살아남기 위해 온 몸으로 버티는 이웃집 실향민의 억척스런 고군분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포스터 해설 제목처럼 '그 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이국만리 남의 나라에서 석탄을 캐고 시체를 닦아서 가족을 길러야 했던 아버지 세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주인공 덕수(황정민)가 겪은 절절한 어려움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굳이 영화가 주는 감동으로 따지자면 사회 하층민들이 겪는 가난의 고통은 19세기 프랑스 기층 민중의 삶을 다룬 영화 레미제라블이나 인도 빈민가 얘기인 슬럼독밀리어네어가 오히려 더 절절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덕수는 해피엔딩 아닌가. 그냥 이빨 악물고 버텨내며 여기까지 왔다는 덕수의 인생은 말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구토'에서 주인공 로캉탱의 입을 빌어 얘기했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서, 연약함 속에 존재감을 이어가다가 우연하게 죽는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영화 후반부 스크린을 장식하는 이산가족들의 그 절절한 한이었다.

 

가장을 북에 남겨 둔 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찢겨질 수 밖에 없었던 가족. 그들에게 사상과 이념대결이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전쟁통에 잃어버린 막내 동생 막순이를 찾아 여의도 국회와 전국을 헤매던 덕수의 그 모습, 미국 LA까지 흘러간 동생과 이산가족 화상 상봉 장면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가 저들을 갈라놓았나. 60년 넘게 지속되어온 분단체제 하나 풀어내지 못하는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 그런 지도자들만 믿고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고 시인 김수영의 노래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부대끼며 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민초들의 삶.

 

광부로 가서 돈 벌기 위해 면접장에서 애국가라도 불러야 했고, 부부싸움을 할 때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기립해야 하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기성 세대들은 애국심이 강했는데, 요즈음 세대는 말이야 라고 혀를 끌끌 찬다면 그게 코미디다. 시대와 권력이 보통 사람들에게 윽박지른, 웃지 못할 희극이다. 오히려 그들이 영화를 봤다면, 덕수가 마지막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북에 남겨둔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수준이란 게 고작 그 수준이다. 그 눈물 한번 제대로 닦아주지 못하면서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서로 싸움박질만 해댄다.

 

세상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인간은 자기의 몫을 살아낼 뿐이다.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 거실에서 가족들은 웃고 떠들고 있는 사이 안방에서 덕수가 아버지 두루마기를 부여잡고,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우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 아버지도 우릴 키우느라 힘드셨죠. 저도 이빨 악물고 최선을 다해 버티며 살고 있거든요."

 

그리고 경제학적 해석 하나. 영화의 속살을 좀더 들춰보면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분석이 나온다. 영화의 주무대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부터 평생 친구인 달구(오달수 분)가 현대식 영화관 앞에서 주인공 덕수를 타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년의 자신은 벌써 상가 점포를 뜯고 그 자리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지어 올려서 돈도 벌만큼 벌었는데 시대에 뒤떨어진 껄뱅이 덕수는 고집 불통에 노망까지 나서 시장 가게를 안 팔고 고집 부려서 마누라와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고.

 

경제학에서 기초가 되는 기본 가정은 '세트리스 파리부스(cetris paribus)', 다시 말해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이란 것이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전제하에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선택, 다시 말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조건이 바뀌면, 서로 다른 조건 하에선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치는 달라진다. 달구는 자신 나름의 선택을 통해 노년에 부자가 됐지만, 덕수는 평생을 보수동 산꼭대기 피난민 촌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덕수가 끝까지 가게를 팔지 않았던 숨은 이유는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었다. 영화에 복선으로 깔려 있듯이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헤어질 때, 아버지가 남긴 또 다른 부탁, 살아서 국제시장 고모네 꽃분이네 가게에서 만나자고 했던 아버지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덕수와 달구는 같이 파독 광부를 가고, 베트남전에 돈벌이를 하러 갈 정도로 비슷한 인생을 살았지만 한 명은 예나 지금이나 재래식 시장 잡화상인이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부산의 명동 격인 광복동 빌딩 주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덕수가 못 나서 그런 게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동생들, 자식들을 키우느라 미래를 위해 저축하거나 사업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없었다. 은행 문턱도 당연히 높았을 것이다. 든든한 후원자 아니, 흥남 비료 노무부 주임과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그도 더 배울 수 있었고, 가게를 확장하고 자본주의식 경영기법을 동원해 꽃분이네 가게 자리에 새로 대형상가빌딩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빈곤 문제를 연구하는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 MIT대 교수는 이런 얘기를 했다. 가난한 데도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가장의 갑작스런 부재, 부도, 파산, 고리 사채 등으로 인해 빈곤의 덫에 빠져든 사람들은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다들 열심히 노력한다. 제각각 최선을 다해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래 봤자 자기네들끼리 제자리 높이뛰기요,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덕수는 아버지 없는 소년 가장이었고, 달구는 풍족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덕수나 달구 모두 전쟁통 당시보다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지금 살고 있지만 그들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자식 대에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빈곤의 대물림이란 게, 경제적 양극화란 게 그런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드러난 아버지의 고난한 삶을 보면서 누군가는 잘 살아왔다고 박수를 치겠지만 이 땅의 이름없는 가장들은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린다. 세상은 어디서,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영화 마지막에 덕구는 결국 가게를 처분하기로 결정한다. 그래 봤자 그나 자식들이 팔자는 고치고 편안한 삶을 살 정도는 못 된다. 가게를 고모부한테서 건네 받을 때만 해도 구입 자금을 마련하러 베트남까지 가야 할 정도로 비싼 자리였지만 이젠 기껏 4평짜리 가게를 팔아봤자 1억5천만원이나 건질지 모르겠다. 기업화, 대형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밀려난 재래식 시장 영세 상인들의 한계다.

 

사람들은 흔히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분리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도 동떨어진 것 인양 한다. 그리고 정치를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샴쌍둥이처럼 딱 붙어있다. 정치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조건들, 법과 제도라는 그 기본 디폴트값을 바꾸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덕수의 삶이 감동적인 이유도 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수의 삶은 그에게 주어진 조건이 바뀌었더라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물질적 토대가 상부 구조를, 다시 말해 정치 사회 관계를 규정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지적도 틀렸다. 경제적 생산 관계가 정치 구조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경제를,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직접 결정한다.

 

이근우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5.01.13기사입력 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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