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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00여 년이 넘게 지속된 참혹한 전란을 마무리한 일본의 영웅들이 있다. 바로 16세기 동시대를 살았던 세 사람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누군가에게는 천추의 원수이기도 한 그들이지만 일본에서 회자되는 이들에 얽힌 일화는 수없이 많은 게 사실이며, 그들의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리더십이 후대 일본 사회의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오늘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내는 이유는 과장급으로 승진한 중간관리자의 향후 리더십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각각의 개성으로 한 시대를 경영했던 세 사람을 통해 직장 내에서 나의 목표를 다시 점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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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17세기부터 약 300여 년을 존속했던 일본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정치 형태인 ‘에도 막부’ 시대의 초석을 쌓은, 당시 일본주식회사의 창립 멤버들이다. 이 중 가장 선임이었던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혁신의 리더십으로 창조적 발상과 기존 가치의 전복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즉 창업자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유능한 지휘자인 셈이다.

 

그에 비해 오다 노부나가의 하급 무사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유능한 참모에서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오른 케이스다. 노부나가의 말고삐를 잡는 하찮은 역할부터 시작해 궁극에는 노부나가의 모든 권력과 재력을 물려받고 일본을 통일한 지략가이자 창업 회사의 발전을 도모한 CEO인 셈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창업과 수성을 이어받아 300여 년을 존속할 수 있는 관리와 경영의 시스템을 완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업 경영으로 비유하자면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내고 ‘발전 지속력’의 동기를 부여한 최고 경영자였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이 세 사람의 장점만을 한 곳으로 응집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당신은 빠른 시간 내에 회사의 가장 위대한 CEO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살 수는 없는 법. ‘나 자신을 알면 백전백승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나의 장점과 단점을 냉철히 분석해 이 세 사람 중 ‘나는 과연 어떤 형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라는 목표점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여기 두견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런데 이 새가 울지를 않는다.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세 사람은 각자 이렇게 답을 했다.

 

먼저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다. 당장에 목을 쳐 버리고 우는 새를 다시 마련하자”고. 히데요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새를 울게 하리라.” 마지막으로 이에야스가 말했다. “나는 그 새가 울기를 기다리겠다.”

 

당신은 어떤 스타일인가.

 

 

勇壯 오다 노부나가 - 능동적인 창조형 리더십

 

지나친 엄격함은 반발을 부른다

 

전국시대 오와리의 영주 오다 노부히데의 장남으로 태어난 노부나가는 어린 시절 별명이 ‘오와리의 바보’였다. 진짜 바보가 아니라 치열한 권력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보 흉내를 냈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동생과 아버지 가신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순뿌의 영주였던 이마가와 가문과 대립했고 여기서 처음으로 이미가와에 인질로 잡혀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약 2만 명을 동원한 이마가와의 총공격에 노부나가는 약 4000명의 병력으로 기습을 감행해 이미가와를 죽임으로써 무장으로서의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후 그는 다케다 신겐, 우에스키 겐신 등 당시 최고의 무장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통일의 약 90%를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모리와의 전투에서 고전하던 히데요시의 구원 요청에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원정길에 오르던 중 혼노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약 100여 명의 호위무사만 대동한 그는 그날 밤 충복인줄 알았던 ‘이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일본 통일을 목적에 두고 “어쩔 수 없다”는 유언과 함께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자결하고 만다.

 

여기서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일본 속담이 생겼다. 즉 적은 내부에 있다는 뜻이다. 후사가들은 배신자 ‘미쓰히데’가 노부나가의 ‘굼뱅이처럼 굴면 영지를 바꾸어 버리겠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에 공포를 느껴 배신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하지만 당시 노부나가의 모든 부하들이 노부나가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으며, 배신의 출발은 바로 그 두려움이라는 것이라는 가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부나가의 성격은 불 같았다. 빠른 결단력, 과감한 행동 그리고 직설적인 화법 등으로 부하들의 신임과 공포를 동시에 얻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영주였다. 당시 일본 군대는 장창과 칼을 주무기로 했었다. 그것을 소총으로 바꾼 게 바로 노부나가였다. 소총부대 창설 이후 그의 군대는 승승장구했다. 그는 또한 포르투갈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상권을 활성화 해 부의 축적을 통한 권력 확산에도 주목했다. 새로운 문물을 미래의 트렌드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나를 따르라’ 식의 독재적 지휘는 결국 부하의 배반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의 단초가 되었지만 일본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부나가에게 배울 점은 ‘창업 정신’, ‘도전 정신’, ‘시대를 읽는 전략적 사고’ 그리고 ‘엄격한 조직관리 능력’ 등이라 할 수 있다.

 

 

CASE STUDY

 

A사의 B과장은 동기들 중에서 단연 선두 주자이다. 그의 부서는 실적, 조직력 면에서 타부서들을 압도한다. 부서의 평가가 회사 최고에 다다르자 조직원들의 B과장에 대한 믿음 또한 대단했다. B과장은 항상 부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보고를 받고 회사 일은 물론 조직원의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들여다 보는,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부서장인 동시에 참견과 지시가 많은 상사다. 그럼에도 조직원들이 그를 따르고 신임하는 것은 그는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선다는 점 때문이다. 부서 내에서 책임을 져야 될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이를 부하 직원에게 떠맡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즉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서 권한만 발휘하려는 상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은 과한 신상필벌이다. 잘한 일에 칭찬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하직원의 실수를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다스리는 것은 덕장의 태도가 아니다. B과장은 ‘애정이 있으니까 야단도 치는 것이다’라고 전제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직설과 장소불문한 버럭 습관에 언제나 담담하게 반응할 부하 직원은 없다. 더구나 개인사에까지 개입하려 할 때는 업무를 통해 구축된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얼마전 부서 내에 사규에도 없는 ‘삼진 아웃제’를 만들어 세 번 이상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지방 전출 상신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는 모든 부서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결국 그 문제로 B과장과 부서원 모두가 인사 조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B과장 역시 능력이 없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나친 엄격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반대 세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울지 않는 새를 조금은 기다려주는 인내심보다는 그 새를 다른 새로 바꾸어버리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조직원들에게 쓸데없는 공포와 불안을 안겨 준 것이 그의 조직관리에서의 패착인 셈이다. 사람의 두꺼운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것은 강한 바람도, 비도 아닌 따뜻한 햇빛이라는 이솝우화의 단순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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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將 도요토미 히데요시 - 자기 과신의 지략형 리더십

 

집요한 교육과 설득 그리고 전시성 과시가 단점

 

히데요시는 본래 성씨도 없을 정도의 미천한 신분이었다. 외모도 볼품없어 노부나가를 비롯한 모든 무사들이 ‘원숭이’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야심가였다. 그의 출발은 미미했다. 노부나가의 말을 대령하고 신발을 준비하는, 그야말로 종과 다름없는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작은 일조차 남과 달랐다. 겨울이면 가슴에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고 있다가 내어놓아 따뜻한 신발을 신은 노부나가를 놀라게 했다. 사납기로 유명한 노부나가의 말들도 히데요시가 고삐를 잡으면 순하게 변해갔다. 이런 재주를 높이 산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성을 하사하고 작은 일부터 시켰다.

 

‘하시바’란 성을 얻은 히데요시는 그야말로 날개달린 말처럼 달렸다. 전투에서는 물론이고 점령지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수완을 보여 어느덧 노부나가의 오른팔로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천하를 얻을 기회가 왔다. 노부나가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부하들을 모아 주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미쓰히데를 격파하며 일본을 장악했다. 하지만 그는 노부나가가 차려 논 밥상에 그야말로 숟가락만 대었다는 오해와 미천한 출신이라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전쟁을 할 줄 아는 무사 수십만이 그에게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친다는 명분으로 이 점을 해결하려 했다. 수십만의 병력과 물자를 동원해 조선과 7년 여에 걸친 전쟁을 치르면서도 중국을 점령해 황제가 되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화려한 황금으로 치장된 오사카성을 완성하고 많은 귀족과 영주들을 발아래 무릎 꿇리는 일을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너무나 어린 히데요시라는 어린 아들의 안위를 위해 이에야스 등 당시 실력자들에게 충성 맹세를 시킬 정도로 심약하게 변한 끝에 숨을 거두었다.

 

히데요시는 결단력에서 결코 노부나가에 뒤지지 않았다. 절대 실력자 노부나가의 죽음이 알려진 순간 모두 다 주저하고 있을 때 그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얻어내는 실력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장악한 조직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냉정하게 인사관리를 한 것은 그의 경영자로서의 장점인 셈이다.

 

CASE STUDY

 

A사의 C과장은 이른바 SKY출신이 판치는 회사에서 몇 안되는 지방대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업무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급이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수많은 독서와 강의 그리고 야간 대학원 과정을 통해 남몰래 실력을 쌓았다. 처음에는 지방대 출신이라고 깔보던 부서 직원들도 그의 탁월한 실력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C과장은 랍비 스타일의 상사였다. 모든 업무를 교육 개념으로 시작했고 끝냈다. 부서원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하우 공유라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견당하는 후배 직원들은 지칠 수밖에. 전문가급의 실력을 보유한 C과장이 보기에는 부서원들의 업무처리 능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경험의 교육을 무시한 것이다. 오로지 대면교육을 통한 1:1 과외 선생처럼 기획안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고서 양식은 물론 모든 업무일지까지 꼼꼼하게 관리했다. 그러자 부서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실력은 있는데 너무 참견하고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한단 말이야”라는 후배들의 반발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타무서 전출을 원하는 직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방대 출신의 한계 아니냐”는 경영진의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C과장의 능력은 물론 출중하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부하직원을 믿어주는 느긋한 마음이었다. 물론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인 과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회사에서도 부장 등 간부급으로 키우려는 후보자인 동시에 부서원의 업무능력을 최전선에서 체크하는 부서장이기 때문이다. C과장은 그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 운영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평사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C과장이 괴로워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부서를 구원할 것이라는 것 보다 위험한 발상이 또 있을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지방대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를 스스로는 물론 후배 직원들의 능력까지 바짝 끌어올리는 일을 통해 해소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뜻이야 어떻게 되었든 그것은 오만이자 오버일 뿐이었다.

 

이른바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해 입지전적으로 승진한 관리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역경과 고난, 인내와 노력을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한창 일할 때는 이틀이 뭐야 일주일을 한 잠도 못자고 야근한 적도 있어” 등의 고난 과시를 습관처럼 떠벌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도 못하는 놈이 퇴근은 칼이야!’라며 정시 퇴근하는 후배를 다그치기도 한다. 그는 과장까지는 성공한 인물인지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회사일 못지않게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이고 그런 사고의 주인공들이 회사의 상당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쫄다구 때는’이라니! C과장은 노력과 지략은 뛰어났지만 부하직원들의 능력을 조금은 인정해주는 ‘같이 갑시다’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德將 도쿠가와 이에야스 -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소통의 달인

 

현실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단점

 

이에야스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영웅도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땅과 아들 중에서 땅을 선택한 아버지로 인해 세 살부터 인질살이를 시작했다. 처음 오다 가문에서 시작된 인질살이는 이마가와 가문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뒤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았지만 여전히 주변 강자들의 눈치나 보는 신세였다. 그는 이마가와 가문 출신의 부인을 얻었지만 아들은 노부나가의 딸과 결혼을 시켰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다케다 가문과 연결되는 이에야스를 경계해 이에야스에게 부인과 큰 아들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쉽지 않은 선택에서 이에야스는 가문의 존속을 선택한다. 부인을 죽이고 아들에게는 자결을 명령해 노부나가의 의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에야스에게는 비정한 남편, 매정한 아버지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 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자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에야스의 부하들은 히데요시와의 한판 전쟁을 원했지만 그는 냉정하게 히데요시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했다.

 

대신 이에야스가 선택한 것은 임진왜란에서 자신의 군대를 파견시키지 않음으로써 강력한 힘을 비축하는 전략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가신그룹을 전멸시킨 그는 여세를 몰아 오사카성에 있던 히데요시를 죽이고 일본을 통일했다. 그리고 에도막부를 열어 일본 통치에 들어갔다. 그는 3남인 히데다다에게 장군의 지위를 물려주고 형식적으로 2선으로 후퇴했지만 호랑이처럼 일본의 전 영주들을 다스려 약 300년간 막부의 정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CASE STUDY

 

D과장은 별명이 ‘황희 정승’이다. 부하직원들의 팀별 업무에서 다툼이 일어나도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그 중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내 칭찬해 주는 스타일이다. 즉 자신의 권한과 판단으로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 아닌 두 팀 혹은 두 사람이 서로의 주장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자신이 주장과 대입시켜 결론을 내리게 하는 중재의 역할을 기막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서원들은 D과장을 마음속으로 따른다. 그는 설사 부하직원이 큰 실수를 저질러도 야단부터 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이 나서서 급한 불부터 끈 후 실수를 저지른 부하 직원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복기할 수 있는 시간과 동기를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단박에 포인트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와 비슷한 업무를 또 한번 부여해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실패한 복습의 성공적인 예습’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과정에서 업무의 효율성과 스피드에서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어느덧 회사에서는 “D과장 출신 부서원들은 실수가 없어. 일을 제대로 배운 것 같아”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뒤 D과장은 주요부서를 두루 경험한 후 회사의 핵심인력으로 성장했다.

 

이에야스는 젊은 시절 부하 장수들로부터 배신을 겪기도 했었다. 당시 일본 내에서 창궐한 ‘잇꼬종’이라는 종교에 빠진 부하들이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이에야스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이에야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부하들이 종교문제로 자신에게 창을 들이댔으니 그 분노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기다렸다. 참을성 있게 끝까지 부하의 목에 칼을 대지 않고 스스로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기를.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자 이에야스를 떠났던 부하들이 하나, 둘씩 다시 돌아오고 이들은 훗날 이에야스의 가장 충실한 부하로 마지막 순간까지지 도쿠가와 가문과 같이 했다.

 

만약 이에야스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부하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죽였더라면 그는 일개 영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D과장의 장점은 받아주는 것이다. 그것은 부하직원의 말을 들어주는 것, 행동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일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서서히 기다려 주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위에서는 성과를 내라하고 당장 실적을 숫자로 내야하지만 D과장은 부서원 개개인의 업무능력 향상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스스로 일을 배우고 잘못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익힌 D과장팀의 실적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D과장의 솔선수범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모범과 앞장서는 리더십으로 기다려주는 시간의 공백을 채워 나간 것이다.

 

[사진 포토파크닷컴]

 

성동찬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5.04.02기사입력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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