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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초판 1권, 무당거미, 망치(1990), 담배 한 개비


누구나 만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만화는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거나 백수 삼촌의 시간 때우기에 동반되는 불온한 존재로 핍박 받아왔다. 지금은 달라졌다. 식상한 이야기로 고전하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반짝이는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전하며 지금 가장 힙한 대중문화 코드로 등극한 것. 이런 한국 만화의 역사와 함께 지난 40년을 집념으로 걸어온 대가 허영만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처음으로 예술의전당에서 공개되는 사건 역시 그에 대한 증거다.

 

살아 숨쉬는 음식 이야기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식객>은 무려 9년의 집요한 취재를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허영만 만화에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에너지가 스며있다. 1966년 만화를 시작한 이후로 집념과 열정으로 매진한 결과물이기에 가능한 것.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던 허영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멸치 사업이 망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대신 만화에 매달렸다.

 

박문윤 화백의 문하생을 거쳐 본격 만화가로 데뷔해 27살에 그린 <각시탈>로 히트를 기록했지만 고졸이라는 꼬리표와 1970년대 대본소 체계는 그에게 열등감과 생계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런 분위기는 일본 만화 <캔디 캔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반전을 맞는다. 마흔에 이르러서야 가장으로서의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며 작품활동에도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그가 한창 만화가로 활동할 때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불량하고도 게으른 사람들의 오락거리로 폄하된 채 좋아하지만 담배연기 가득한 어두운 지하실 만화방 정도에서 맘 놓고 ‘킥킥’ 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누구나 느끼듯 현재는 확연히 달라진 공기다. 웹툰 한 편이 흥행하면 그것은 이내 영화, 드라마, 캐릭터 상품 등으로 무한하게 활용되며 단연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이런 분위기는 오랜 시간 한국 만화를 지켜온 허영만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전시를 예술의 전당에서 마주하는 감격스러운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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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2002)


예술의전당이 처음 초대한 한국 만화가

 

<각시탈>, <태양을 향해 달려라>, <무당거미>, <제7구단>, <카멜레온의 시>, <날아라 슈퍼보드>, <오!한강>, <비트>, <타짜>, <식객>, <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허허 동의보감> 등 나열하기에도 숨이 차는 작품으로 쉼 없이 활동해 온 만화가 허영만의 첫 전시회 <허영만 展 - 창작의 비밀>이 4월 29일부터 80일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사람들을 맞이 한다. 예술의전당이 국내 만화가를 초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는 허영만이 지난 40년간 그린 15만장의 원화와 5000장이 넘는 드로잉에서 500여 점을 선별해 대중에게 선보인다. 작품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기록한 취재노트, 소소한 일상을 만화로 그린 만화일기 등을 공개해 ‘창작의 비밀’을 가늠해보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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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1999)


‘화백 허영만’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

 

첫 히트작인 <각시탈>, 시청률 43%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원작 <날아라 슈퍼보드>, 90년대 청춘에 대한 감각적인 초상으로 열풍을 일으킨 <비트>, 8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타짜>, 치밀한 취재와 살아 숨쉬기는 이야기로 한국 만화사에 우뚝 선 요리만화 <식객>, 80년대 대학생의 필독서 <오!한강> 등이 전시 메인 테마로 구성된다. 캐릭터와 연출, 스토리 구성을 통해 그가 창조한 작품이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대중 문화의 중심으로 이어져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

 

허영만의 대표작품뿐 아니라 1974년 발행된 <각시탈>의 초판본 원화 149장이 4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된다. 붓과 펜으로 수정된 터치들, 글귀를 하나하나 따서 붙인 말풍선, 컷마다 빨강 혹은 흰 펜으로 기입한 수정사항, 출판사에 축소와 확대를 요청한 코멘트 등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만화책 속의 작은 만화 컷을 200호 대형캔버스에 옮겨놓은 작품 10여 점과 실제 원화들 30여 점을 공개한다. 1988년부터 허영만 화실에서 2년을 함께한 제자 윤태호가 그린 허영만의 작품 <벽>, <망치> 컷들도 공개되고 윤태호의 <이끼>, <미생>, <파인> 원화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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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구단(1985)


오마주로 만나는 그의 작품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는 오마주 작품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만화 속 평면적인 주인공들을 입체화한 박기봉 작가의 오마주 조각인 ‘각시탈과 무당거미의 이강토’, ‘제7구단의 고릴라’, ‘식객의 성찬’ 등이 전시된다. 만화의 형식을 작품 속에 녹여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인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이동기의 대형 평면 작품은 만화가 어떻게 현대미술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지 실감하게 해준다.

 

전시 큐레이터 정형탁은 “이번 전시는 단순히 허영만의 히트작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허영만의 만화 도구, 소장품 화실 벽에 걸린 경구가 적힌 쪽지, 책상에 붙은 메모들까지도 전시장 곳곳에 배치해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된 창작의 비밀과 인간 허영만의 삶까지 고스란히 전할 것이다” 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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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展 - 창작의 비밀>

관람 가격 성인(만19~64세) 1만2000원, 청소년(만13~18세) 1만원 어린이(만7세~12세) 8000원

전시 기간 4월 29일(수) ~ 7월 19일(일)

문의 070-7533-8998

About Exhibit <허영만展 - 창작의 비밀>은 평일 오전 11시, 오후 2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매주 토요일에는 허영만 작가가 직접 관람객에게 만화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는 만화제작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허영만 화백이 직접 그린 만화가 탄생하는 과정은 만화지망생이나 팬들에게는 무척 유용한 교육 공간이 될 것이다.

 

“만화인생 40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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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열리는 대형만화전시로 주목받고 있다.

허영만 작가 재작년 가을부터 전시를 준비 하면서 여러 곳의 갤러리를 알아보던 중 작년 하반기에 예술의전당 전시에 응모해 선정되었다. 그 순간 매우 놀랐다. ‘이제는 우리가 예술의전당에도 들어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첫 번째 만화 전시회가 성공을 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제2, 제3의 만화전시가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Q.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허영만 작가 한원석 작가가 작년에 전시회를 제안을 했다. 그 전에 여러 갤러리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는 지금까지의 콘텐츠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이 이 자리까지 왔다. 나도 잊고 있던 자료들을 다 찾아 낸 컴퓨터의 위대함에 새삼 놀랐다.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전시는 내 만화인생 40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인 점을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다.

 

Q.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했습니다’라 적힌 전시장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허영만 작가 제 만화 타이틀 215개를 하얀 도면으로 볼 수 있는 코너가 있는데 제일 처음에 공간을 준비하면서 적어나갈 때 “이거 너무 많다. 215페이지도 적지 않은데 215 타이틀을 그린 건 너무 많다”라고 생각했다. 한 달에 3권씩 그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신인일 때는 한 타이틀 밖에 못 그렸던 적도 있었다. 기성작가는 한 달에 6~9권, 저는 3권씩 그렸는데 그때 <각시탈>을 그렸다. 계속 타이틀을 연결하면서 시리즈로 출간될 때 1년에 12개, 5년만 해도 60개 그런식으로 계속 그리다 보니 어느새 타이틀이 이렇게나 많아졌다. 스스로의 부끄러움도 있지만 만화계의 부끄러움도 담겨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계속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215개 타이틀을 그려왔다는 것도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Q. 같은 세대의 만화가가 전무하다. 오랜 시간 작업을 하는 가운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허영만 작가 제 나이 또래는 저 혼자가 아닌가 싶다. 나는 2등이었다고 말해왔지만 지금은 그때 어깨를 겨루었던 동료들이 아무도 없어 할 수 없이 1등이 된 격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못 그린다고도 생각 안했다. 나보다 잘 그렸던 동료들이 이제 아예 없다. 오래 작업하기 위해 나의 경우는 스스로를 담금질을 하며 가만히 안 놔둔다. 내가 나를 못살게 굴면서 조금씩 발전을 했고 그 친구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5년 전 한 일본 만화 작가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만화 안 그린다고 했을 때 “나이가 들면 만화를 못 그리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돌아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체력이 떨어진다. 그 친구들도 관리를 했으면 ‘젊은 사람들보다 활발하지는 않더라도 반은 따라갈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온 요인은 근면이다.

 

Q. 종결된 <식객> 시리즈 ‘외전’ 같은 작품을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허영만 작가 식객은 연재하면서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기쁨이 있었다. 식객을 그릴 때는 취재하면서도 일이 아니라 여행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어 즐거운 작업이었다. 식객은 계속 그려서 100권을 목표로 달려보려 했으나 27권으로 끝났다. 작품이 한번 기가 꺾이면 다시 열정을 살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 외 연재는 접은 상태이고 그 비슷한 이야기로 전국의 계절 음식 재료들을 취재하려고 했다. 관계부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려움이 있었다. 시간낭비를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작업을 중단했다. 음식 관련 내용은 계속 하고 싶은데 현재 접은 상태고 커피를 많이 좋아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식객 외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Q. 허영만 화백의 학창시절 장래희망은 만화가 였나, 만화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조언한다면?

허영만 작가 요즘 만화 관련 대학학과가 많다. 한편으로는 ‘왜 어려운 만화를 시작하려 하는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집 아이들한테도 만화가 되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많이 혼났다. 만화에는 왕도가 없다. 만화가는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시작해도 승부는 책상 위에서 난다. 그만큼 많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한다. 영화와 소설을 많이 봐야 하고 남의 것을 보면서도 무심코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장래희망은 서양화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아버지 멸치 어장이 잘 안되서 대학을 못 갔다. 그래서 그날부터 공부는 안하고 만화만 그렸다. 졸업시험을 봤는데 뒤에서 두 번째 성적이 나왔다. 그 1년 14개월 정도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때는 만화를 그리면서 10년 후에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내게 서양화가 아니면 만화밖에 할게 없다 생각했다. 나중에 돌아보니 나에게 가장 맞는 직업은 등대지기였다.(웃음) 그러나 그것을 알았을 때 이미 늦었다. 만화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한가람미술관]

 

신정인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5.05.07기사입력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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