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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고지 예배당’ 벽면에 그려진 성모마리아 그림이다. 화가가 잠깐 잠든 사이에 그림이 완성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가가 잠든 사이에 그려진 성모는 기적을 행한다고 믿었고, 숭배의 대상이 됐다.

 

‘냉정과 열정 사이’란 일본 영화가 있다. 피렌체에서 그림을 복원하는 화가로 일하는 ‘준세이’와 연인 ‘아오이’가 헤어진 지 10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장면은 신이 축복받은 연인에게만 내려주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 즉 특별한 기적이다. 그래서 피렌체는 모든 연인의 낭만과 사랑의 도시가 되고, 이들이 만나는 광장은 ‘사랑의 광장’이 됐다.

 

감독이 이 광장에서 두 연인을 만나게 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궁금해 자료를 뒤적여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광장에 영화 주인공이 일하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건물은 오래전부터 한 유력 가문의 저택이었다. 저택의 2층 창문은 일 년 내내 열려 있는데, 연유가 있다. 이 부유한 가문의 아들이 전쟁터로 나가기 전 한 여인과 약혼했는데, 전쟁 중 사망하고 만다.

 

약혼녀는 건물 2층 문을 열어놓고 약혼남이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다 생을 마감했다. 이후 저택 집사가 창문을 닫자마자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 벽에 있던 액자와 가구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촛불을 켜놓으면 이내 꺼져버렸다. 이상하게 여긴 집사가 창문을 다시 열어놓자 촛불이 다시 켜지고 가구와 액자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 소문이 나자 약혼녀가 아직도 그 창문에서 약혼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이 저택이 위치한 광장은 헤어진 연인이 신의 축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재회의 장소가 됐다.

 

르네상스 시대 이곳은 ‘성 수태고지’ 광장으로 불렸다. 아기 예수를 임신한 성모마리아를 축하하는 행사(수태고지 축제)가 열리던 성스러운 장소였다. 당시 수태고지 축일은 3월 25일. 피렌체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피렌체 정부 각료와 모든 시민이 이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를 즐겼다. 이 행사를 주관하던 종교기관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라 불리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의 수태고지 예배당 벽면에 그려진 성모마리아 그림 한 편을 감상하려고 한다.

 

이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화가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형상을 그려 넣고, 그다음 성모마리아 형상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다 깜빡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그 옆에 성모마리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다들 인간이 그린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그린 것이라고 믿었다. 당연히 ‘화가가 잠든 사이에 그려진 성모’는 기적을 행한다고 믿었고, 숭배의 대상이 됐다. 피렌체를 30년간 다스렸던 코시모가 사망하고 아버지 뒤를 이어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된 아들은 이 작품이 그려진 장소에 화려한 대리석 조각품으로 장식된 예배당을 지었다.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메디치 가문이 이 수도원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고, 오르산미켈레 교회에 있던 ‘은총의 성모마리아’가 ‘수태고지 성모마리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을 보자. 한마디로 메디치 가문이 성모마리아를 활용해 가문 위상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원래 이 수도원은 피렌체 부유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오직 성모마리아만을 경배할 목적으로 세워졌다(성모 하복회). 이 수도원은 피렌체인이 설립한 유일한 수도회라 피렌체 시민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당시 대부분 수도원 설립 과정이 그러하듯, 이 수도원에서 가장 성스러운 주제단 후원 권한은 제일 많은 기부를 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의류 판매 상인이었던 가문이 소유했다.

 

하지만 이 수도원이 탐났던 코시모는 피렌체 대주교에게 메디치 가문이 주제단 후원 권한을 소유할 수 있게 해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을 경계했던 대주교는 “누구든 낙후된 교회 건물을 증축하는 비용을 후원하는 가문에게 주제단 후원 권한을 주겠다”는 원론적인 약속만 되풀이했다. 만약 메디치 가문이 이 수도원 후원 권한까지 손에 넣는다면, 메디치 가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산 로렌초 교구 전체의 주인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피렌체에서 오랫동안 특혜를 누려온 고위 성직자와 토착귀족들의 오랜 터전이었던 두오모 광장과 견줄 만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당시 산 마르코 수도원과 산 로렌초 교회를 동시에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은 이 수도원을 후원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고민하던 코시모는 이웃 도시 만토바 출신이던 피렌체 용병대장을 끌어들이는 기발한 전략을 생각해냈다.

 

코시모는 용병대장을 만나, 그에게 지불해야 하는 대금을 용병대장 계좌가 아닌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수도원 계좌로 입금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물론 이 용병대장은 수도원에 대한 후원 대가로 수도원 주제단의 후원 권한을 따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설립자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주제단 후원 권한은 타국 출신인 용병대장에게 넘어간다.

 

용의주도한 코시모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언젠가 타국 출신 용병대장은 피렌체를 떠날 것이고, 그때 가서 다시 매입하면 그만이었다. 마침 자신의 고국 사정이 다급해지자 용병대장은 귀국해버렸고, 수도원을 후원하겠다는 약속은 이행되지 못했다. 때마침 여유가 생긴 메디치 가문이 후원자가 사라진 주제단 후원 권한을 가로채버렸음은 물론이다.

 

이제 내부 장식은 아들 피에로의 몫이었다. 코시모의 아들은 먼저 천사가 그렸다는 성모마리아 형상이 그려진 예배당을 기적을 행하는 성소로 만들기로 했다. 당대 최고 조각가의 경지에 올랐던 미켈로초의 정교한 손으로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장식됐다. 직접 현장에 가서 보면 하나하나의 조각품이 너무 정교하고 아름다워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 예배당을 장식하는 데 무려 4000피렌체금화(약 42억원)가 필요했다. 교황은 이 예배당을 ‘수태고지 예배당’이라 이름 짓고, 공식적인 성지순례 행렬에 포함시켰다. 당연히 이 수도원으로 들어오는 기부금도 점차 불어났다. 가난했던 수도원도 증축과 화려한 장식으로 모습을 갖춰나가게 된다. 흑사병이 한창이던 1300년대 중반부터 흑사병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준다던 오르산미켈레 교회에서 봉헌되던 ‘은총의 성모마리아’는 이제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수도원에 있는 ‘수태고지 성모마리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예배당은 구원을 기원하는 신도들로 붐빈다.

 

그뿐 아니다. 메디치 가문이 이 수도원까지 장악함으로써, 한때 가난했고 버려져 있던 산 로렌초 교구로 메디치 측근들이 이사를 왔다. 메디치가 후원으로 이 교구 사람들이 피렌체 정부 요직에 자리를 차지하게 됐고, 이제 이 지역 출신이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가 된다. 한마디로 메디치 서클(Medician Circle)이 탄생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수도원 후원 사례에서 보듯, 르네상스 시대는 이렇게 취약해진 영적 권력이 그 빈자리를 부유한 상인들한테 내어주는 과정에서 세속국가가 성숙해가는 여정이다.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5.12.21기사입력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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