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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회화 중, 우피치미술관 2층 화가 보티첼리 방에 전시된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이라는 그림만큼 미술 애호가 관심을 받는 작품은 없다. 530년 전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여신 비너스가 오늘날까지 8등신 미인의 대표적인 기준이 될 정도로, 후세의 우리는 화가 보티첼리의 미려한 붓질에 감동한다.

 

이 작품은 사실 감상자에게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트로이 목마’로 잘 알려진 ‘트로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혹 그리스 연합군에 패한 트로이 귀족들이 비밀통로를 통해 트로이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절름발이 아버지를 등에 업고 탈출하는 젊은 귀족을 기억하실는지. 이 귀족이 바로 ‘아이네아스’라고 불리는 트로이 귀족으로 여신 비너스의 아들이다. 로마제국 건국 신화를 읽어보면, 비너스의 아들 아이네아스는 로마제국의 시조다. 로마제국 황금시대(Pax Romana)를 부활시킨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선조로도 묘사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신의 자손으로 묘사해 신격화한 셈이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로마제국 황금시대를 글로써 창조했는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림으로 재창조된다. 회화로 표현된 이미지가 대중에게 텍스트보다 훨씬 감정이입이 빨랐음은 물론이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봄’. ‘비너스의 탄생’과 연작으로 그려졌다. 신 제우스의 전령인 ‘머큐리’가 자세하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머큐리가 차고 있는 칼집에 메디치 가문 문장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위대한 로렌초’는 겨우 20살 나이에 메디치 가문 수장이 된다. 피렌체 최고 권력자가 됐지만 메디치 가문을 전복하려는 교황과 여타 피렌체 귀족의 음모에 계속 시달린다. 메디치 측근들은 로마제국 황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처럼 어린 로렌초를 신격화시켜, 권력을 안정시키려 했다. 메디치 측근 인문학자들은 피렌체에 로마제국 황금시대가 부활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메디치 가문 입장에서 로마제국 시조인 아이네아스를 피렌체로 모셔올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고대 로마제국 황금시대를 노래한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이라는 작품이 탄생한다. 이 두 작품은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연작(連作)으로 그려졌다.

 

‘비너스의 탄생’이란 작품 왼쪽으로, 볼에 바람을 잔뜩 머금은 서풍의 신 ‘제퍼’가 벌거벗은 요정 ‘클로리스’를 끌어안은 형상으로 그려졌다. 서풍을 타고 조개껍질에 사뿐히 올라선 비너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가 맞이하는 꽃의 정원으로 가는 모습도 담겼다(그림①). 이 작품의 구도는 로마제국 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을 유혹한 혐의로 로마에서 추방당한 바람둥이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라는 시의 한 구절을 묘사한 작품이다.

 

시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봄날이 오자 서풍의 신 제퍼는 들판을 거닐다 벌거벗은 요정 클로리스를 발견하고서는 강제로 결혼하고, 요정 클로리스를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시킨다. 강제 결혼을 미안하게 여긴 제퍼는 플로라에게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찬 정원을 결혼 선물로 준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화가는 서풍의 신, 요정과 꽃의 여신, 그리고 꽃의 여신이 살고 있는 정원을 꽃으로 잔뜩 채워놨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기 때문에 이 작품에 그려진 정원은 피렌체를 상징한다.

 

화가 보티첼리는 문학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비너스를 작품 한가운데 그려 넣고, 작품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원래 바람둥이였던 비너스는 여신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트로이 귀족과 정분을 쌓아 아들을 하나 낳는데, 앞서 언급한 로마제국 시조인 아이네아스다. 그래서 화가는 비너스를 로마제국의 시조 아이네아스를 잉태한 어머니로서 그려 넣은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가 위치한 지중해 지역은 서풍이 불면 봄이 오고, 서풍으로 동방과의 무역이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가 피렌체에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려는 알레고리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모토는 당시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인 구호였다. 이런 배경에서 화가는 아이네아스를 잉태한 비너스를 등장시켜 피렌체에 로마제국의 시조인 아이네아스가 재림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바람을 회화로 그려냈다. 이어 메디치 측근들은 ‘프리마베라, 봄’으로 ‘위대한 로렌초’를 피렌체 황금시대의 주인공으로 부각시킨다.

 

‘프리마베라, 봄’이란 작품은 재미있는 요소가 더 많다(그림②). 서풍의 신 제퍼, 요정 클로리스, 꽃의 여신 플로라, 그리고 비너스는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형상과 동일하다. 꽃으로 가득 채워진 정원은 역시 꽃의 도시 피렌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속살이 훤히 비치는 흰색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여신들은, 봄이 오면 여신 비너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꽃잎을 뿌리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화가가 제일 정교하게 그려낸 형상은 비너스가 아니라, 작품 왼편에 지팡이를 든 채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휘젓고 다리에는 날개를 단 모습으로 그려진 신 제우스의 전령인 ‘머큐리’다. 화가는 왜 뜬금없이 머큐리를 등장시킨 것일까?

 

이제 로마제국 시대에 시성으로 칭송받고, 단테의 ‘신곡’에서 길 안내자로 등장하는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Aeneis)’라는 작품을 읽어볼 차례가 됐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라는 시의 한 구절을 묘사한 작품이다. 원래 비너스는 작품에 등장하지 않지만 화가는 로마제국 시조인 어머니로서 아이네아스의 비너스를 그려놨다.

 

이 작품은 비너스의 아들 아이네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로마제국을 창시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로마 건국의 역사를 신화로 엮어낸 대서사시다. 트로이를 탈출한 주인공은 이탈리아로 항해하던 중 거친 풍랑을 만나, 카르타고(북아프리카 튀니지)에 도착한다. 주인공은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환대를 받는다.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로 가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라는 신 제우스의 명령을 까맣게 잊은 채 카르타고 여왕과 사랑에 빠진다.

 

제우스는 전령 머큐리를 불러 카르타고로 날아가, 여왕과의 사랑에 도취된 아이네아스에게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전하라고 한다. 그러자 머큐리는 발에 날개 달린 황금 샌들을 신고, 지팡이를 집어 든다. 이 지팡이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지팡이의 힘으로 머큐리는 바람을 몰며 먹구름을 헤치고 나아갔다. 여왕 디도가 준 황금실로 짠 외투를 입고 호의호식하던 아이네아스에게 머큐리는 “그대는 어쩔 셈인가? 이탈리아 왕국은 그대 몫이다.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라!”는 말을 전하고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로마제국 창설의 초석을 놓게 된다.

 

이 같은 로마제국 건국 신화에 기초해 화가는 지팡이로 구름을 헤치는 형상을 한 머큐리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머큐리가 차고 있는 칼집에 메디치 가문 문장을 그려 넣었다. 피렌체의 ‘위대한 로렌초’를 제우스의 명령을 받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신성한 지도자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는 초창기만 해도 세속 권력의 정당성을 하느님이라는 신성에서 찾았다. 중세의 가을처럼 느껴지던 이 시기, 성직자와 권력자가 동거해야만 했다. 이후 권력자는 종교가 아닌 로마제국 황제로부터 정당성을 찾아가면서, 로마제국 문헌을 번역해낸 인문학자들이 성직자 자리를 대신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문화는 이렇게 해서 유독 피렌체에서만 그 꽃을 활짝 피운다.

 

우리가 피렌체 르네상스에 주목해야 되는 배경이다.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5.12.29기사입력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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