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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너무 오래 산다. 40~50대라 하더라도 직업을 한 번 이상은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긴 세월 현재의 직업과 직장에만 몰입했는데 언제 명퇴를 당할지도 모르고, 그럴 바엔 차라리 자발적으로 퇴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중이다. 한 우물 파는 게 대세였던 시대에 교육을 받았으니, 수십 년 전 미래학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을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100세 시대 40~50대라는 나이는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시점이니, 무엇이라도 배우고 익혀 다른 직업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서양 미술사에는 전직으로 예술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졌던 화가들이 부지기수다.

 

반 고흐는 전도사이자 화방 점원이었고, 고갱은 뱃사람이면서 주식중개인이었다. 마그리트는 벽지회사의 디자이너, 앤디 워홀은 여성지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유명 사진가 안셀 아담스도 음악가였고, 지난해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이란 다큐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는 농업경제학자였다. 현존하는 예술가 중 가장 고가에 작품이 팔리는 제프 쿤스 역시 젊은 시절 ‘모마(Museum of Modern Art·뉴욕현대미술관)’에서 표를 팔고, 멤버십(후원인)을 모집했던 미술관 비정규직이었다. 그 후 쿤스는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중개인으로도 일했다.

 


‘지켜보고 있는 망자의 혼(마나오 투파파우)’, 1892년, 고갱. 고갱은 전직 주식중개인이자 컬렉터 출신 화가였다. 파리 증권시장이 붕괴되자 35세의 나이로 전업 화가를 선언, 가난해도 행복한 길을 택했다.

 

반 고흐는 비교적 뒤늦은 나이인 28세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이전까지는 전도사, 화방 점원, 서점 직원, 교사, 큐레이터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로 전향한 건, 목사가 되는 걸 포기하면서부터다. 네덜란드 칼뱅교 목사의 아들로 자신 역시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자 했지만, 신학교 입학시험 실패는 그를 좌절케 했다. 잠시 전도사로 벨기에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광부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충격을 받고 빈곤층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 인권을 위해 열정적으로 몸 바쳐 봉사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교회 측은 그가 설교에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계약 연장을 거절했다. 이것이 반 고흐가 성직자를 등지고 화가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반 고흐가 목사 시험에 덜커덕 합격했더라면 우리는 영영 그 불타는 노란색의 해바라기도, 노란 집도, 밤하늘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갱은 전직 주식중개인이자 컬렉터 출신 화가였다. 유년 시절을 페루에서 보낸 그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길 바랐던 모친의 뜻을 저버리고 선원이 됐다. 모친이 세상을 뜨고 3년 후 후견인이었던 귀스타브 아로자의 도움으로 파리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이때 아로자가 수집한 피사로와 들라크루아 같은 이들의 그림에 매혹되기 시작했고, 드가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이재에 밝고 명민했던 고갱은 주식중개인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돈을 많이 벌었고 당시 세잔 같은 주목받던 화가들의 작품을 사 모았다. 급기야 휴일에는 피사로에게 그림 지도를 받는 등 일요화가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파리 증권시장이 붕괴되자 직장을 그만둔다. 35세 나이에 전업화가를 선언한 것! 이전까지의 편안한 부르주아의 삶을 저버린 고갱은 생활비에 쪼들리고 거취도 불안정해지자 그동안 모았던 작품을 팔고 파리 북서쪽 루앙으로 이주한다. 가난에 적응하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과의 별거가 시작된 것은 물론이다. 고갱은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캔버스 제조업체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등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인생의 비참함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그의 자긍심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고 형형했다.

 

마티스 역시 직업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법관이 되기를 원했던 선친 뜻대로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갔던 마티스. 그는 수업을 청강하고 시험에 합격한 뒤, ‘작은 학위(변호사 자격증)’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근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충수염에 걸렸다. 수술한 뒤 몸을 추스르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회복기 동안 모친이 사다준 물감과 스케치북으로 그림을 그리다 그만 미술의 세계에 홀딱 빠져버렸다.

 

‘꿈’, 1910년, 앙리 루소. 세관원으로 일하던 루소는 40세가 되던 해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모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으면서 그림에 몰두했다. 그는 49세가 돼서야 비로소 전업화가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금세 미술로 전향할 수는 없었던 마티스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태피스트리(그림 그리듯 여러 색깔의 실로 짠 직물)와 섬유 디자인을 전문으로 가르치던 캉탱 드 라 투르 학교에서 데생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밤늦도록 그림을 그렸다. 당시 공증서를 비롯한 온갖 서류에 꽃과 얼굴을 장식하곤 했다. 틈나는 대로 미술관에서 고야, 렘브란트 등의 작품도 모사했다. 건강상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은 마티스는 앞날이 보장된 법률가를 포기하고 추천서 한 통을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렇게 제2의 찬란한 화가 인생을 살다 갔다.

 

전업한 가장 특이한 작가는 앙리 루소다. 젊은 시절 피카소가 가장 숭배했던 루소의 전직은 세관원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 법률사무소에서 급사로 일한 경험이 전부였던 루소는 함석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죽은 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고, 결혼 후 파리 세관사무소에서 일했다. 이 직업 때문에 루소는 ‘세관원’이라는 뜻의 ‘두아니에(Le Douani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렇지만 그의 업무는 거창한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순한 통행료 징수였다. 게다가 출근해서 하는 일이란 고작 센 강을 타고 올라온 상선의 하역 물품을 기록해뒀다 세금을 매기는 게 전부였다.

 

매일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아주 지루하고 한가한 직업이었다. 세관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던 루소는 40세가 되던 해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모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으면서 더욱더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듬해 작업실을 마련하고 공식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49세가 돼서야 비로소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22년간 몸담았던 세관을 떠난다. 한번 세관원은 영원한 세관원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 전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터다.

 

루소는 비평가들보다는 아방가르드 작가에게 주목받는 등 당대에 대단한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교육체계에 질린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루소를 자연이 이끄는 대로 본래의 자기와 하나가 돼 작업했던, 주위 비난이나 조롱에도 굴하지 않은 ‘위대한 원시인’으로 봤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예술가였다가 다른 직업으로 바꾼 사례는?

 

yBa(young British artists·1980년대 말 이후 등장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대표적인 작가 데미안 허스트가 그렇다. 200억원을 들여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을 만들어 1000억원 넘는 가격에 팔아,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한 허스트는 지난가을, 런던 남부 복스홀에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를 오픈했다. 2002년 한창 활동 중일 때 매입해 작업실로 사용했던 낡은 공간을 갤러리로 부활시킨 것.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서는 허스트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수집한 작품, 큐레이터이자 디렉터로서 기획한 작품 등의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대학 시절부터 큐레이터, 마케터, 홍보인, 작가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온 그로서는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개념미술, 그게 무엇이든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는 세상이니까. 이제 그가 무엇을 해도 충분히 예술이고, 그는 예술가인 것이다.

 

허스트의 전업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야말로 “너나 잘하세요”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미 미술계의 관심을 이보다 과대하게 받은 사람은 없으니까.

 

유경희 미술평론가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1.05기사입력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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