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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행일은 잘 몰라요.”

 

피렌체에서 로마제국 황금시대를 부활시켜 정치 권력을 강화하려던 ‘위대한 로렌초’가 측근에게 늘 하던 얘기였다.

 

가문의 주력 사업이던 은행 운영은 서서히 친척과 아첨꾼 손에 놀아났다. 말썽꾸러기 지점장들은 메디치 은행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문 이익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이익부터 챙겼다. 이런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지점장들이 피렌체의 새로운 상류층으로 등장한다. 이들도 이전의 부유한 상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귀족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 시신을 안장하고 영혼을 기려줄 사후세계의 멋진 집을 신성한 수도원 내부에 짓기를 원했다. 이런 야망을 지닌 대표적인 말썽꾸러기로, 로마 지점장이었던 ‘토르나부오니’와 메디치 은행 총지배인이었던 ‘사세티’를 들 수 있다. 두 말썽꾸러기는 공교롭게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 성당에서 수도사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주제대(祭臺)가 놓인 예배당 후원 권한을 놓고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이게 된다. 반면 수도사들은 성스러운 주제단을 세속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황 속에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 예배당은 당대 최고의 화가 ‘기를란다요’의 회화로 장식된다.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이 화가는 예배당 왼쪽 벽면을 ‘성모의 탄생’으로, 오른쪽 벽면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이란 종교적 주제로 장식한다. 언뜻 보면 종교화 같지만 사실 성당에서 가장 성스러운 예배당의 후원 권한을 소유한 가족 형상이 묘사된 한 편의 세속화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화가 기를란다요가 그린 ‘성모의 탄생’이다. 성모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일행 중 가장 앞에 선 여인이 토르나부오니의 딸이다.

 

오늘날 ‘토르나부오니’라고 하면 명품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토르나부오니 거리’를 쉽게 연상한다. 하지만 1200년대 초반 이 지역에는 ‘토르나쿠인치’라 불리는 토착귀족이 모여 살았다. 이 가문은 당시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사병까지 거느린 토착귀족이었다. 피렌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신흥 상인들은 이런 토착귀족을 가려내,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했다(1283년, 정의의 법률). 우리나라에서 조선 초기에 고려 시대 왕족인 왕(王)씨들이 성을 바꿔 박해를 피했듯, 1200년대 후반 피렌체에서도 토착귀족으로 낙인이 찍힌 가문은 성씨를 바꿨다. 토착귀족 출신이었던 토르나쿠인치 가문도 토르나부오니로 성씨를 바꿨다. 이후 이 가문이 번창하며 딸이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니까 코시모의 며느리가 된 셈이다. 누나를 잘 둔 덕에 고집불통이었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을 지닌 ‘조반니 토르나부오니’는 27살 나이에 메디치 은행 지점장에 오른다. 많을 때는 메디치 은행 총수익의 64%가 로마 지점에서 나왔으니, 로마 지점장이란 직책은 요직 중에서도 요직이었다.

 

이후 메디치 은행에 ‘프란체스코 사세티’라는 로마 지점장 못지않은 말썽꾸러기 인물이 또 한 사람 등장한다. 이 인물은 피렌체 시민들 모두가 인정하는 천하의 아첨꾼으로, 당시 메디치 은행의 총지배인이었다. 두 말썽꾸러기는 은행 문제로 자주 다퉜고, 그 나쁜 감정들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라는 수도원 후원 권한을 두고 결국 불꽃이 튀었다. 말이 수도원 후원 권한이지, 명당 묏자리를 확보하려는 치열한 다툼이었다. 수도원에서 명당 묏자리는 수도사가 천국의 신전으로 여기는 주제대가 놓인 예배당이다. 돈과 권력을 손에 쥔 상인들은 이 예배당을 수중에 넣으려 했다. 수도사는 특정 가문이 성스러운 예배당을 독점하려는 욕망을 늘 견제해왔다. 그래서 수도사는 주제대가 놓인 예배당의 후원 권한을 1)성물이나 성인의 유골을 보관하는 제대 후원권, 2)제대가 위치한 예배당 후원권, 3)시신 매장 권한 등 3개의 권한으로 분산시켜놨다.

 

한 가문이 이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메디치 은행 총지배인으로 친지들이 이 수도원 수도사로 있던 사세티 가문이 과욕을 부렸다. 마침 화재로 오랫동안 흉물스럽게 색이 바래 있던 예배당 장식에 필요한 비용 300피렌체금화(약 2억4000만원)를 후원한다는 조건으로, 주제대 예배당 후원 권한을 요구했다. 다른 수도원에서도 똑같은 조건으로 후원 권한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수도사들은 사세티 가문이 약속을 이행하는지 여부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이 약삭빠른 가문은 여기저기 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수도사들 예견대로 이 가문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로마 은행 지점장이었던 토르나부오니 부인이 사망했고,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토르나부오니는 사후에 부부가 묻힐 장소로 이 수도원을 마음에 뒀다. 한때 이 가문은 수도원이 세워진 지역 토지 대부분을 소유했고, 수도원 평신도회를 오랫동안 후원해왔다. 이런 인연으로 부인의 기일에 미사를 드려주는 수도사에게 매번 후하게 사례했고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그러나 수도사 사이에도 이견이 많아, 3번에 걸친 투표 끝에서야 이 가문에 주제대가 놓인 예배당 후원 권한을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도사들은 “로마 지점장이었던 조반니 토르나부오니 개인이 아닌 토르나부오니 가문, 친척과 공동 소유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조반니 토르나부오니 개인이 주제대 예배당을 독점하는 경우를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토르나부오니는 사후에 자신이 후원했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의 예배당 지하에 안장되지 못하고, 친척 가문 예배당에 묻히는 비운을 맞게 된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이란 작품이다. 행렬에서 가장 나이가 든 여인으로 그려진 이가 후원자 토르나부오니의 누이이자, ‘위대한 로렌초’의 어머니다.

 

이 운명을 미리 알았을까, 아니면 수도사의 미안한 마음에서였을까. 화가는 이 성스러운 예배당을 장식하며 후원자 가족들을 ‘성모의 탄생’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경배하는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먼저 창문을 통해 밝은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데, 이 햇살은 성모 탄생을 예견하는 축복의 빛을 상징한다. 성모의 어머니 ‘안나’가 앉아 있는 침대에 그려진 열쇠는 천국으로 향하는 열쇠를, 그리고 성모를 씻기는 목욕의 물은 구원의 샘물을 상징한다.

 

성모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일행 중 가장 앞에 선 여인이 토르나부오니의 딸이다. 그리고 주제대 전면 하단부에는 후원자와 부인의 형상을 그려 넣었다. 이 부인은 당시 메디치 가문과 필적할 만한 권력과 부를 지닌 ‘루카 피티’의 딸로, ‘피티 궁전’의 주인으로 잘 알려진 여인이다. 이 예배당을 장식하는 또 다른 그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이란 작품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렬에 가장 나이가 든 여인으로 그려진 형상이 바로 후원자 토르나부오니의 누이이자, ‘위대한 로렌초’의 어머니다. 후원자는 이렇게 미사를 드릴 때마다 피렌체 시민이 올려다보는 주제대가 놓인 예배당에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루카 피티의 딸과 위대한 로렌초 어머니 형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유력 가문과의 연관성을 과시하려 했다. 이런 연유로 화가는 성모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경배하는 축복의 행렬에 남자가 아닌,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구도로 그려 넣어야 했다.

 

당시 신흥부자들은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유력 가문과 정략결혼을 했다. 이들의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기 좋은 장소가 많은 신도들이 모이는 교회였다. 그중에서도 성체성사가 이뤄지는 성스러운 주제대가 놓인 예배당이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연금술을 발휘하는 예술가 손을 빌려 예배당을 장식하면 귀족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1.05기사입력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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