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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신곡’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단테’가 그토록 사모해오던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고 남긴 외침이다. 베아트리체는 당시 아주 부유한 은행가 가문(Portinari·포르티나리)이자, 피렌체 최초의 병원(Santa Maria Nuova)을 설립한 유력 가문의 딸이었다.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베아트리체는 가난한 시인 단테의 결혼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마 짝사랑 정도였을 것이다. 이 가문의 후손은 일찍이 메디치 가문과 인연을 맺으며 은행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위대한 로렌초’가 은행을 경영한 1400년대 후반에 이 가문 형제와 친척 모두 메디치은행에 근무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북유럽 지방의 국제적 무역도시 브뤼헤(벨기에 지역) 지점장으로 있던 ‘토마소 포르티나리’는 아주 말썽꾸러기였다. 한때 유럽에 20개 넘는 사무실을 운영하며 국제은행의 모습을 갖춘 메디치은행이 멸망한 직접적인 계기는 귀족 흉내를 내며 뽐내길 좋아한 이 말썽꾸러기 지점장 때문이었다.

 

토마소 포르티나리는 형이 갑자기 사망한 후 막대한 유산을 받아 엄청난 부자가 됐다. 돈이 많아진 토마소는 선조들이 설립한 피렌체 최초의 병원에 딸려 있던 조그마한 예배당(Chiesa di Sant`Egidio)의 후원 권한을 사들였다. 이후 이곳을 장식하는 작품을 자신이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북유럽 지역 천재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에게 주문했다. 이 작품이 그 유명한 ‘아기 예수의 탄생’이다.

 

후스의 북유럽 화풍은 피렌체 회화에 새로운 충격을 던진다. 같은 이유로 르네상스 화풍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아기 예수 탄생 장면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마귀가 그려져 있다. 황금색 의상 마귀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봐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 왕 ‘헤롯’이다. 왼편 패널, 검은 수도사복을 입고 간절히 기도하는 이는 귀족 흉내를 내던 지점장 ‘토마소 포르티나리’다. 오른쪽 패널에서 북유럽 부잣집 여인만이 쓸 수 있었던 고깔모자를 쓴 여인이 주문자 부인이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 부인은 임신한 상태로, 성모마리아의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용의 형상이 그려진 장소에 부인을 그려놓고 싶었을 게다. 


이 천재 화가의 작품은 엄격한 규칙성과 긴장감을 주지 않으려는 절제, 그리고 메시아의 출현을 기리는 신앙적 염원 같은 내적 구성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과 아주 흡사하다. 아마 작품을 제작할 당시, 베토벤과 후스가 모두 질환을 앓고 있어 그랬을 수도 있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었지만, 이 화가는 정신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피렌체 화가 작품과 달리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화가의 심리적인 상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후스는 청년 시절 자신의 후원자 딸과 애절한 사랑에 빠지게 됐는데 끝내 이루지 못했고 이후 상사병으로 고통받는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재혼했는데, 그 상대방이 하필 삼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어머니마저 죽고 말자 후스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정신병을 이기지 못한 이 천재 화가는 결국 수도원에 자신의 아픈 몸을 의지한다. 작품을 주문받았을 당시, 그는 정신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데다 수도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정신적인 고통과 엄격한 신앙적 염원이 작품에 혼합돼 녹아들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란 주제를 표현한 피렌체 회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마귀나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된 천사, 그리고 다양한 색을 지닌 꽃들이 이 작품에 그려지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세 개의 평판으로 구성된 ‘제단화’다. 보통 성체성사가 행해지는 성스러운 제대(祭臺)가 놓여 있는 예배당 후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제사 때 차례상 후면을 가리는 용도로 병풍이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제단화 한가운데 그려진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부터 보자. 그림의 왼편 위쪽을 보면, 여러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두 마리의 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중 황금색 의상을 입은 마귀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봐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의 왕 ‘헤롯’이다. 그 옆에 하얀 옷을 걸친 마귀는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서 하느님에게 도전했다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지옥의 파수꾼으로 전락한 ‘루시퍼’다. 화가는 지상의 왕을 탐한 ‘헤롯’과 신의 권력에 도전한 ‘루시퍼’를 마귀로 표현해, 막 태어난 아기 예수가 지상과 천상의 왕이자 초자연적 존재임을 드러냈다. 수도사이자 화가로서 깊은 신앙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바로 앞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묘사돼 있다. 하얀 꽃은 성모마리아께서 신의 축복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한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다. 주황색 꽃은 태어난 아기 예수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수난당한다는 예언이 담긴 상징물이다. 그 옆에 활짝 핀 자주색 꽃은 아기 예수가 인간의 고통을 함께하는 겸허함을 상징한다. 막 탄생한 아기 예수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지 않고, 자신을 한껏 낮추는 땅 위에 누워 있는 형상으로 그려진 이유다.

 

이렇게 이 작품 하나하나의 형상은 화가가 당시 질병으로 겪고 있던 고통과 경건한 신앙심으로 읽어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을 두텁게 덮고 있는 어두운 광택제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 그림이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이 제단화는 피렌체 최초의 병원 부속 예배당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제대 후면에 놓인다(1483년).

 

주문자가 이 작품을 그 상태로 놔뒀으면, 경건한 신앙적 메시지를 신도에게 전달하며 오늘날까지 이 교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작품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썽꾸러기 토마소는 교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예배당에 자신의 형상을 그려 넣는 욕심을 부렸다. 원래 화가는 경건한 신앙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수도원을 상징하는 검은 의상의 수도사를 왼편 패널에 묘사했다. 오른쪽 패널에는 성모마리아의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바람으로 시중드는 여인들의 치마에 용을 그려 넣었다. 당시 용은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임신한 여인 옷에 용의 형상을 수놓는 풍습이 있었다.

 

귀족을 흉내 내기 좋아하던 토마소는 후원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양쪽 패널에 자신과 자신보다 25살이나 어린 부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작품 왼편 패널을 보면 검은 수도사복을 입고 간절히 기도하는 형상으로 그려진 이가 바로 토마소 포르티나리다. 오른쪽 패널을 보면 북유럽 부잣집 여인들만이 쓸 수 있었던 고깔모자를 쓴 여인이 그려져 있다. 이 여인이 토마소의 부인이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 부인은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모마리아의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용의 형상이 그려진 장소에 부인의 형상을 그려 넣고 싶었나 보다.

 

이처럼 여러 사연이 있지만 어쨌든 덕분에 피렌체는 그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피렌체와는 사뭇 다른 북유럽의 관습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 여러 말썽꾸러기 지점장들의 서투른 경영으로 메디치은행은 문을 닫게 되고,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이제 메디치 가문에 의해 펼쳐지던 60년의 르네상스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고(1434~1494년), 피렌체 시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 시대가 열린다.

예술의 화풍과 주제도 바뀌며, 대리석 돌에 갇혀 숨도 못 쉬고 있는 형상을 빨리 꺼내기 위해 항상 조바심을 내던 미켈란젤로가 전성시대를 맞는다.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1.20기사입력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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