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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 그대로 복간된 윤동주 시인의 초판본 시집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지난 가을 출판계 이슈였던 ‘시집의 이례적 흥행’ 열풍을 잇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진달래꽃> 구매자의 60%는 20대들. 하상욱 같은 SNS 시인들의 시는 종이책 17만부 판매를 기록했고, TV 예능에 소개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매출 최하위권으로 늘 찬밥 신세였던 시집이 서가 대신 중앙 통로의 특별 매대에 진열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시가 기존의 ‘음전함’을 벗어나 ‘다채널’ 세대에게 ‘응답’하면서부터다.

 

▶앨범도 내고 강연도 하는 SNS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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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쓴 <서울 시>를 들고 있는 하상욱 시인


‘이것도 시야?’ 싶은, 사언절구체의 짧은 시들이 지난 가을 SNS를 강타했다. 신작이 나와도 신간 매대는커녕 먼지 쌓인 서가에 꽂혀버렸던 시집은 수없이 공유되는 인기에 힘입어 오프라인 발간으로 이어졌다. ‘SNS 시인’들은 조용히 초야에 묻혀 시를 쓰던 선배들과는 달리 각종 강연과 라디오, TV 예능에도 출연했다. 10cm, 옥상달빛 등과 매직스트로베리에 소속된 ‘SNS 시인’ 하상욱은 2014년 자신의 단편 시 ‘서울 시’를 노래로 묶어 <회사는 가야지> <축의금> 등 2개의 싱글 앨범을 냈다. ‘축의금’ 가사를 살펴보자. ‘넌 내 결혼식엔 올까/외국 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돼/우리 둘 사이 3만원 5만원 아님 10만원일까’. 오랜만에 연락 온 전 여자친구에게 청첩장을 건네 받고, 부조 금액을 두고 번민하는 내용이다. 본인이 직접 쓴 앨범 소개글을 보자. ‘이 노래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그냥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내 노래니까…’ 출판사 소셜마케터로 일하다 SNS에 올린 시를 책으로 묶어내게 된 하상욱은 스스로를 ‘시 팔이’, ‘시 잉여 송라이터’, ‘시POP가수’로 칭한다. 2012년 나온 전자책이 100만 명 이상의 공감을 얻고 종이책으로 출간, 17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단편 시집 <서울 시>가 그의 데뷔작이다. ‘서울 시’를 패러디한 ‘손씨의 지방 시(손동현)’도 30만명이 구독, 지난해 책으로 묶여나왔다. 어느 순간 자신의 SNS에 공유하지 않고는 못 배길 ‘B급 발랄함’을 장착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정통 시집도 인기… 시 컬러링북, 필사본, 해설서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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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발랄한 ‘형식’을 빌리거나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팔린 ‘클래식’ 시집들도 존재한다. 출간 3년 동안 잠잠하다가, 시집 최초로 TV 책 소개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베스트셀러가 된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는 북 토크쇼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뒤 3000부 증쇄에 들어갔다. 같은 방송에 소개되고 유아인이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심보선 시인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는 예스 24 문학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10월14일~21일 베스트셀러 10위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14위에 <시 읽는 밤: 시 밤>을 올려놨다(교보문고·영풍문고·반디앤루니스·예스24·인터파크도서·알라딘 등 8곳 판매량 종합). 해가 바뀐 지금도 서점에는 하상욱이나 최대호, 글배우 등 SNS 시인들의 시집이 꽂힌 서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같은 정통 시집, 서경식 작가의 문학 에세이집 <시의 힘> <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정재찬/휴마니스트)같은 ‘시 방법론’ 외에 시 필사본 <명시를 쓰다> 등도 함께 꽂혀 있다. 특히 <읽어보시집>을 낸 SNS 스타 작가 최대호가 지난해 낸 <이 시 봐라>는 컬러링 코너 ‘너도 써 봐라’가 별책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책 곳곳에 독자가 시를 패러디해 볼 수 있는 칸을 비워 두고, 그림에 색칠도 해 볼 수 있게 색을 넣지 않은 것. 마치 컬러링 북이 유행하자 컬러링 필사북, 라이팅북이 함께 유행한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하이쿠’ 식 명쾌함에 담긴 내 얘기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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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작 5개월 만에 페이스북 팔로워 20만명을 돌파한 ‘대학생 시인’ 글배우의 <걱정하지 마라>등 SNS에서 출발한 시인들의 책은 작년 하반기에만 10여 종이나 나왔다. 체대생과 영업사원을 거쳐 SNS에 시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이환천 시인은 현재 6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웹툰 작가 겸 카피라이터다. 공책에 궁서체로 적은 듯한 SNS에 연재물을 포함, 166편의 시와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카툰, 70년대 잡지 광고를 연상하게 하는 페이크 광고 등이 담긴 <이환천의 문학살롱>은 ‘시집’이라기보단 차라리 ‘B급 병맛 에세이’에 가깝다. 등단을 한 것도, 문학을 배운 적도 없지만 ‘문학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책까지 냈다. ‘말장난이지 문학이 아니다’ ‘이게 시냐’고 말하는 시선을 의식해선지, 그는 표지에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고 써두고, 그저 한 번 피식 웃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 모든 ‘을’들의 ‘지금’을 시처럼 혹은 노래가사처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읊고 있는 시들, 그리고 톡톡 튀면서도 어둡지 않게 이야기한 것이 SNS 시인들의 흥행 비결 아닐까? 지난해부터 올해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유저들에게 화제가 된 단어가 바로 ‘사축(社畜)’이다.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게 된 단어로,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뜻한다. 온라인 인기를 타고 책으로 나온 <사축일기>의 저자 강백수(강민구)는 ‘강백수밴드’를 이끄는 보컬이자 등단시인이다. ‘의욕 제로 직장인을 위한 1인용 감정이입 에세이’라는 책 소개를 달고 나온 <사축일기>는 SNS를 강타했던 ‘우리 회사의 7대 불가사의’가 실려 있다. “모든 미생을 위한 단체톡방”(이병철)이라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다른’ 시가 다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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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1월3주 문학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자. 4위와 7위에 윤동주의 시집이, 17위에는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올라와 있다. ‘시의 해’라고 불릴 만큼, 시집 한 권이 수백만 부 팔리던 1980년대를 지나 헬조선으로 신입하며 청년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 않았다. 아니 ‘시집’은커녕, 소설 한 권, 책 한 권 읽지 않게 됐다. 감성만으로 화제몰이를 한 정통시집, SNS를 중심으로 퍼진 ‘B급 감성’의 인터넷 게시물, TV예능과 맞물린 결과 ‘시’는 새로운 방식으로 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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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집을 낸 지 3년간 잠잠했던 박준 시인의 책이 방송 한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풍경은 분명 ‘거품’에 대한 기우를 부른다. ‘한국 문학’, 그 중에서도 ‘시’가 지녔던 환경이 그간 얼마나 척박했나도 명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시집의 ‘책등’이 아니라 ‘표지’를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까. 올해는 박준의 두 번째 시집이 발간 예정이고, 최승자, 허수경, 황인숙의 신작도 나올 예정이다. 도종환 시인의 새 시집도 상반기에 출간 예정이다. 아프거나 비참한 사회 현실을 시로 고발하거나 아름다운 감정을 담아 감성에 호소하는 정통 시들의 재림과 함께, 장난처럼 읽히지만 지질한 내 일상을 단 한 줄의 시로 요약해놓은 시는 여전히 인기다. 직장인들의 애환과 현실을 해학적으로 비튼 패러디, 사언 절구 같은 SNS 넉두리가 공감을 얻으면 시가 되는 세상. 최근 ‘시의 일탈’은 어른들의 ‘겪어봐서 알아’ ‘힘드니까 청춘’ 식의 위로가 아닌, 술자리 후 귀갓길에서 읽은 친구의 SNS 글 한 마디에서 얻는 위로와 닮아 있다.

 

박찬은 기자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1.29기사입력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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