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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는 연일 출세와 성공을 외치는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인문학 바람이 불었다고는 하지만 서점은 여전히 처세술과 성공담에 관한 실용서 판이다.

 

요즘은 예술가도 타협을 곧잘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아예 대중과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마케팅을 잘하는 작가들이 누리는 명성은 엄청나다.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들은 마케터이자 큐레이터, 기획자 등으로 겸업을 선언한 지 오래됐다. 협상의 대가인 그들은 너무 영악해서 얄밉고 속물적이라 느껴질 정도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래전 낭만적 예술가의 전형이 된 19세기 화가들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영예로운 상도 거절하고(근자에 터너상이나 노벨상을 거절했다는 작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큰돈이 생길 일에 타협도 잘 안 하고, 화상과 비평가와 후견인을 두려워하지도 눈치 보지도 않는 화가들의 불같은 자긍심과 자존감이 그립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당대의 이단아였다. 아들이 법관이 되길 원했던 부농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부르주아적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는 등 급진적 사상과 행동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여성 성기를 마치 초상화처럼 크게 확대해 그린 ‘세상의 근원’이라는 그림만 봐도 그가 얼마나 세상과 반목하는, 일탈적이며 혁명적인 화가인지 알 수 있다. 불의에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의 소유자였던 쿠르베는 심각한 재정 문제에 허덕이던 어려운 시절에도 절대 비굴한 적이 없었다. 또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그림을 통해 자기 의지를 곧추세웠다.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년, 캔버스에 유채, 129×149㎝, 구스타프 쿠르베. 쿠르베는 후원자가 화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화가로서의 자존감이 대단했다.

 

사실 쿠르베는 심각한 재정 상태에 빠졌을 때 운 좋게도 부유한 후원자 알프레드 브뤼야스와 그 부인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이 부부는 쿠르베의 대표작인 ‘화가의 아틀리에’ 오른편에 등장할 만큼 쿠르베의 미술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됐다.

 

이런 후원자 앞에서도 쿠르베는 자존감과 자긍심을 앞세웠다.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라는 그림에 그 사연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쿠르베는 브뤼야스가 살고 있던 남프랑스 몽펠리에로 여행 가서 머무르는 동안 이 그림을 그렸다. 빛이 밝고 맑은 날, 밋밋하고 지루한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인물들 중 오른편이 화가, 왼편이 브뤼야스와 그의 하인이다. 붉은 머리의 브뤼야스는 모자를 벗고 환대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뒤에 있는 하인은 공손하게 머리를 굽혀 쿠르베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 작품이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술계의 아카데미즘은 역사화,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의 규범화된 장르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쿠르베가 내놓은 이 그림은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화여서 당시에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에는 화가 나름대로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잘 보라. 쿠르베는 화구가 가득한 배낭을 짊어지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후원자를 만난다. 이렇게 힘들게 후원자를 만났는데도 쿠르베는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 없다. 제목에서도 보이듯, 화가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후원자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라고 하지 않는가!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간 턱수염을 오만방자할 정도로 강력하게 묘사함으로써 화가가 존경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당당하게 표현해냈다.

 


‘화가의 아틀리에’, 1854~1855년, 캔버스에 유채, 361×598㎝, 구스타프 쿠르베.

 

모자를 벗으며 점잖게 인사를 건네는 측은 오히려 후원자다. 그는 자신을 지켜주는 시종과 개를 대동해야만 완성되는 존재, 즉 부자긴 하지만 생기와 활력이라고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권태로운 인간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 같은 둘 사이의 구도는 쿠르베가 자신을 뚜렷한 그림자를 만드는 강렬한 햇빛 아래 두고, 브뤼야스와 하인은 그림자 속에 묻혀버리게 배치한 것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게다가 쿠르베는 이 그림에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 예술가는 돈은 없지만 천재적인 존재고, 그러니 돈 많은 부자들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브뤼야스는 속물적인 후원자는 아니었다. 그는 쿠르베가 살롱에 출품했다 악평을 받은 작품들을 기꺼이 사주는 한편, 만국박람회에서 거절당한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돈을 대준 진정한 후견인이었다. 브뤼야스는 쿠르베의 생각을 존중했다. 또 천재와 자본이 서로 보완될 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온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후원자에게조차 머리를 꼿꼿이 든 쿠르베란.

 

드가 역시 비타협과 비순응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는 명성을 비웃었으며, 무식한 평론가들의 칭찬을 경멸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 특히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은 일종의 수치다. 따라서 커다란 명성도 일종의 수치다”라고 말하곤 했다. 특히 부르주아의 가식과 허영을 꼬집기를 즐겼는데,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가 공격받을 때 더욱 맹렬히 반격했다. 예컨대 어떤 화상이 “미술은 일종의 사치”라고 말하자 “당신에게 예술은 사치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예술이 최우선 생필품입니다”라고 말한 식이다.

 

드가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예술가도 독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화가를 약삭빠르고, 무자비하며, 철두철미한 범죄자에 비유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회화란 마치 범죄를 계획할 때처럼 속임수와 나쁜 마음, 그리고 사악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에 드가의 속마음이 모두 들어 있다.

 

모딜리아니도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의지를 굽힌 적이 없던 인물이다. 그는 오로지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 외에는 어떤 야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어느 날 모딜리아니는 옆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미국 여자의 초상을 스케치한다. 그림을 그려 내밀자 여자의 얼굴이 의혹에서 기쁨과 감사로 바뀐다. 모딜리아니는 그 대가로 “흑맥주 세 잔”을 외쳤다. 즉시 술이 왔고, 여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돈을 줄 테니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딜리아니가 “서명이 왜 필요하죠?”라고 묻자 그녀는 “언젠가 당신이 유명해질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모딜리아니는 데생한 종이 가득 사인을 해버리곤 그것을 그녀 얼굴에 뿌렸다.

 

또 한 번은 화상인 폴 기욤이 모딜리아니와 정식 계약을 맺기 전에 한 묶음의 데생을 굉장히 싼 헐값에 흥정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이 내려갈 때까지 내려갔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생들을 집어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끈을 끼웠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자신의 변기 손잡이에 걸었다. 다시 화상 앞으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드리지요. 걸레로나 쓰쇼.”

 

모딜리아니의 이런 비타협적인 처세는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화가로서 생존하는 데도 걸림돌이 됐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태도를 가진 화가를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이런 예술가들은 이제 진짜 네안데르탈인처럼 멸종된 존재일까?! 자존심과 저항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런 인간적인 예술가를 만나고 싶다.

 

유경희 미술평론가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2.01기사입력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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