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Money&Art
전체 주제 보기
더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1400년대 후반 피렌체를 지배하던 ‘위대한 로렌초’는 측근들에게 “나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는데, 장남은 바보고, 차남은 현명하지만 씀씀이가 지나치고, 셋째 아들은 한없이 착하기만 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위대한 로렌초가 사망하자, 하는 수 없이 메디치 가문의 수장 자리는 20살의 바보 장남에게 이어졌다. 설상가상 메디치 가문의 이익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더 챙기는 말썽꾸러기 지점장들 때문에 메디치 은행은 파산하고 말았다. 이렇게 돈과 리더십을 모두 잃어버린 메디치 가문은 바보 장남의 어처구니없는 외교적 실수로 야밤에 도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60년 동안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황금시대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어 피렌체 권력은 시민이 주인이 되는 이상적인 공화정 정부로 넘어갔고, ‘군주론’ 저자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영토를 방위하는 실무 책임을 맡게 됐다.

 

마침 피렌체 정부는 새로 선출된 시민대표 3000명의 회의 장소를 피렌체 시청사 2층에 마련했다. 이곳 대회의실 벽면을 장식할 작품은 피렌체가 치렀던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오늘날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으로 추앙받지만, 당시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피렌체에서 빈둥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맡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라는 두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림 미켈란젤로가 그린 ‘카시나 전투’로 용병제 옹호론을 표현한다. 용병대장은 군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거짓으로 경보를 울리고 군인들은 목욕하던 강에서 황급히 뛰어나와 전투 준비에 임하는 민첩한 행동을 보인다. 1542년 상갈로가 완성시켰다.

 

이야기꾼들은 당시 앙숙이었던 르네상스 시대 두 거장이 서로 등을 맞대고 경쟁을 벌인 장면을 그럴듯하게 꾸며내지만, 그리 보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대회의실 벽면은 오래전부터 피렌체 정부 행정수반의 초상화로 장식됐던 장소다. 탁월한 군사 전략가이자 술수가 뛰어났던 마키아벨리가 시의회 의원들이 드나들던 대회의실 벽면을 초상화가 아닌 전쟁 장면으로 장식한 데는, 분명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메디치 가문이 추방당한 후 야심 차게 출발한 시민정부는 곧바로 위기에 빠졌다. 피렌체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수출하는 유일한 항구인 피사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역사상 가장 탐욕스러운 교황(알렉산더 6세)이 아들을 앞세워 피렌체 영토를 넘보고 있었다. 공직을 맡고 있던 마키아벨리가 가장 먼저 실행한 외교적 임무는 당시 군사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프랑스 관리들로부터 상당한 굴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또 반란이 일어난 피렌체 상품 수출 항구 피사를 다시 점령하기 위해 고용한 용병대장에게 지급해야 될 비용이 무려 7만피렌체금화(약 560억원)에 달했다.

 

피렌체 시정부는 전쟁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공채를 발행해야만 했다. 공채를 구매하면 평생 동안 이자를 받을 수 있어(연 5~10%) 공채는 돈 많은 부자들에게 재산 증식 수단이 됐다. 반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빌려 강제로 공채를 구매해야 하는 가난한 서민들은 전쟁이 지속될수록 더욱 가난해졌다. 공채 이자가 고리대금 이자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자유를 얻기 위해 영토를 지켜야 했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애국심보다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부자와 시민 사이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서민을 위해 출발한 정부가 서민의 삶을 더욱 악화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격렬한 전투를 마다하고 질질 끌기만 하는 용병의 허구성을 나타낸다. 루벤스의 모작으로 1603년 완성했다.

 

이상적인 공화정을 꿈꿨던 마키아벨리는 서민들의 지지로 막 출범한 공화정 정부가 몰락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용병이 아닌 피렌체 시민들로 구성된 군대를 신설할 것을 피렌체 시의회에 강력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당시 우유부단한 행정수반(피에로 소데리니)을 둘러싼 기득권자들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신설된 시민군이 반란을 일으키면 모처럼 얻은 권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득권자들은 시민군 창설보다는 돈으로 다루기 편한 용병제를 옹호하고 나섰다.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벽화는 기득권자와 개혁을 시도하는 마키아벨리의 상반된 입장을 잘 전달해준다.

 

벽화를 주문한 시기는 미켈란젤로와 친분이 있던 당시 행정수반이 조금 빨랐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카시나 전투’는 병사들이 벌거벗고 목욕을 하다 깜짝 놀라는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그림①). 전쟁 장면이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묘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당시 ‘카시나’는 피사 항구를 지키는 중요한 요새가 있는 지역으로 오래전 용병대장의 탁월한 지휘 아래 피렌체가 점령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전투 상황은 이랬다. 무더운 여름에 벌어진 전투라, 군인들이 강에서 목욕을 하곤 했다. 용병대장은 군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거짓으로 경보를 울렸고 군인들은 목욕하던 강에서 황급히 뛰어나와 전투 준비에 임하는 민첩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실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피사 항구를 피렌체가 장악하게 됐다. 이 일화를 두고 미켈란젤로는 알몸인 병사들이 깜짝 놀라 목욕하던 강에서 뛰쳐나오는 형상으로 묘사했다. 용병제도를 옹호했던 기득권자들은 미켈란젤로 작품을 시의회 의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용병으로도 피렌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려 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피렌체 시민군 창설을 주장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과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용병제도의 문제점을 그려주도록 요청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를 보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탄 몇 명의 기병만 그려져 있다(그림②). 당시 ‘앙기아리’라는 지역은 교황 군대가 피렌체 영토를 넘보기 위해 주둔하던 요새였다. 위협을 느낀 피렌체 정부는 막대한 급료를 주고 용병대장을 고용했지만, 용병대장은 말을 타고 위협만 줬을 뿐 실제 전투를 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용병대장은 죽으면 돈을 벌 수 없다며 격렬한 전투는 하지 않고 전쟁을 질질 끌기만 했다. 당시 전투에서 기병 한 명이 사망했는데 전투를 하다 사망한 것이 아니고,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용병제도의 허구성을 묘사한 작품을 용병제도를 옹호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맞은편 벽면에 그려 넣어 시민군 창설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 두 거장의 작품은 완성 되는 듯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피신하기 이전에 선금을 받고 완성하지 못한 교황의 영묘 때문에,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의 한 수도원으로부터 주문받은 작품(‘암굴의 성모’)을 완성하지 않아, 각각 로마와 밀라노 정부로부터 소환당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 두 거장이 그린 원작은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밑그림을 본 후배 화가들이 그린 모사품만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 로마제국 황제들에 의해 펼쳐지던 황금시대를 롤모델로 삼았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시민대표에 의해 운영되던 로마 공화정을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생각했다. 그래서 메디치 이후 시대에 그려진 예술작품에는 종교나 특정인을 신격화시키는 고대 신화가 아니라, 피렌체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주제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공화정 정부는 교황의 종교 권력을 등에 업은 메디치 가문의 반격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2.11기사입력 2016.02.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최신 컨텐츠
라이프
1863년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1852~1919..
여행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11월 중순부터 형형색색의 조..
푸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동의보..
푸드
옆구리 시린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썸을 타며..
라이프
한나라 무제는 주부언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주부언은..
이슈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항공기의 비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