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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雪國에서 온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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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에 흠뻑 빠져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온갖 것을 추상화시키는 공간에서 여주인공 고마코는 흐트러진 듯 정갈한 매력을 뿜고 소녀 요코는 순수를 빛낸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하얀 눈의 고장에서 벌어진 사랑 얘기에 새벽부터 몰두해 있는데,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아침 먹으란다. 식탁에 앉았다.

 

"어, 밥이 좀 이상하다."

 

"뭐가?"

 

"뭐랄까, 밥알이 작아진 거 같고…."

 

"그냥 먹어."

 

"어, 그냥 먹죠. 그래도 뭔가 다르잖아."

 

다르면 확인한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쌀을 포장째 꺼냈다. 살펴보니 '품종'이 나온다. 쌀에도 품종이 있었구나. 추청(秋晴)이라 씌어 있다. 예쁜 이름이다. 가을의 맑음이라니. 봄에 맛보는 '가을맑음쌀'은 나름 풍미를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다르다.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하면 확인한다. 식사 후 설국을 마저 읽다가 집 근처 농협으로 달려갔다. 쌀 매장으로 가니 휴일이어서인지 오전부터 판촉이 요란하다. 경기도 여주산(産) 쌀을 쌓아두고 한창 선전 중인 아저씨 옆을 기웃거리다 물었다.

 

"이게 무슨 쌀이에요?"

 

"고시히카리예요."

 

"고시히카리?"

 

"다른 쌀보다 차지고 맛있어요. 좀 길쭉하고, 초밥에도 쓰이는…. 대세라고 보심 되죠."

 

고시히카리가 뭔지 모르지만, 아저씨는 여주산 고시히카리를 판촉하러 나왔기 때문에 '대세'란 말을 믿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식 습득의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마침 옆에 집에서 본 추청이 있다.

 

"여기 추청이란 쌀은요?"

 

"아, 그건 아키바레라고, 옛날에 일반미를 대표하던 쌀이에요."

 

"일반미는 뭔데요?"

 

아저씨에 따르면 옛날에 통일벼를 도정한 정부미란 게 있었는데 맛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일본에서 들여온 아키바레(한국말로 옮기면 추청)가 그 자리를 메웠다. 정부미와 비교해 일반미인 거다. 고시히카리는 그 후에 인기를 얻은 품종이다.

 

그런데 고시히카리는 무슨 뜻일까.

 

아쉬우면 직접 찾아본다. 집에 돌아와 고시히카리를 검색했다. 아마도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겠지. 고시(コシ)는 옛날 일본에 존재하던 나라 이름, 히카리(ヒカリ)는 빛이다. 그러니까 고시히카리는 고시의 빛이다. 쌀알이 얼마나 투명하게 빛났으면…. 나는 감동했다. 그런데 일본 어느 지역에서 그렇게 빛나는 쌀이 나는 걸까.

 

지도를 펼치는 순간 감동은 두 배가 됐다. 내가 방금까지 읽고 있던 설국, 그 소설의 배경인 일본 중부 서해안 니가타가 바로 그 옛날 고시와 겹치는 게 아닌가. 나는 소파 위에서 조용히 빛을 내고 있는 설국에 잠시 눈을 맞춘 후 집을 나와 다시 농협 매장으로 향했다. 설국에서 날아온 그 빛나는 쌀을 먹고 말 거야.

 

이지형 푸드칼럼니스트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3.24기사입력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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