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맛의 향기
전체 주제 보기
더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 소고기 '마리 발주'

 

 

얼마 전에 5일 연속으로 아침마다 소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스테이크를 매일매일 잘라 먹는다든가 했을 리는 없고 국으로 먹다가 카레로 먹다가 했다. 이 정도 순서였다. 미역국→미역국→카레→미역국→카레.

 

미역국은 아침에도 술술 넘어가니 좋고 카레는 자고 난 뒤의 그저 그런 입맛을 자극해주니 고마웠다. 필요한 소고기는 그래서 스테이크용이나 불고기용이 아니라 먹기 좋게 썬 국거리였다.

 

식재료의 냉동과 장기 냉장을 피하는 우리 집 특성상 나는 5일 연속으로 저녁마다 동네 마트를 들락날락했다. 갈 때마다 200g 안팎의 소고기 국거리 한 팩을 샀다. 그렇게 5일 연속으로 국거리를 사는 동안 나는 어떤 의구심 같은 걸 품게 됐다. 국거리 하면 양지·사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놀라움이 꽤 컸기 때문에 하루도 빼지 않고 포장을 눈여겨보며 5일간의 구매 내력을 순서대로 기록까지 했다. 꾸리살→설깃살→양지머리→보섭살→삼각살.

 

소고기란 게 등심, 안심 아니면 갈비 아닌가. 국거리나 장조림 용도의 양지·사태에 야들야들한 차돌박이 정도 추가하면 대충 끝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그야말로 좁은 소견이었다.

 

축산 관련 책을 들췄다. 꾸리살은 모양이 둥글둥글 실꾸리 같다고 꾸리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앞다리쪽 겨드랑이에 해당한다. 설깃살·보섭살·삼각살은 뒷다리 위쪽으로 붙은 부위다. 허벅지가 사태 부위인데 설깃살·보섭살·삼각살은 그보다 좀 더 올라가야 한다. 우둔(牛臀)과는 다르지만 넓게 봐서 엉덩이살이다. 양지는 소의 앞가슴 부위 정도.

 

요약하자면 나는 5일에 걸쳐 소의 앞가슴(양지)으로부터 겨드랑이(꾸리살)를 지나 엉덩이 부근(설깃살, 보섭살, 삼각살)까지 주욱 훑어간 것이다. 소 몸통의 아래쪽 고기들을 섭렵했다고나 할까. 주로 구워 먹는 등심, 채끝, 안심은 몸통 위쪽의 살들인데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이거다. 왜 전통의 양지, 사태를 넘어 꾸리, 설기, 보섭, 삼각이라는 생소한 부위가 국거리용으로 등장해야 했나? 그게 어느 부위가 됐든 잘 끓여 먹으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마트의 정육담당 아저씨를 붙잡고 물어봤다. 5일간의 놀라움에 대해 과장을 섞어 전하는 한편 '해명'을 요구했다.

 

"아, 그건 '마리 발주' 때문에 그래요."

 

"마리 발주요?"

 

"소고기 부위가 39개로 나뉘는데, 특정 부위만 따로 주문하지 않아요. 한 마리 기준으로 통으로 주문하는 거지. 그런데 양지가 양이 얼마 안 되니까, 그거 다 나가면 다른 부위를 국거리로 소비하는 거죠. 다 팔려야 또 마리 발주를 하니까."

 

"아, 39개, 마리 발주…."

 

"그래서 '둔갑'이나 '혼입'이 생겨요."

 

"둔갑? 혼입?"

 

 

마리 발주만 해도 어려워 죽겠는데 둔갑은 뭐고, 혼입은 뭔가. 소고기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고 광대무변하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정육코너 아저씨에게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양지가 아닌데 양지로 팔면 둔갑, 양지 조금에다가 다른 부위들을 섞으면 혼입!"

 

정육점 아저씨의 현란한 설명 앞에서 나는 갑자기 지식의 허기(虛氣) 같은 걸 느꼈다. 그건 동네 식당에서 '소 한 마리' 메뉴를 주문해 부위별로 육질, 육향을 비교해가며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되새김질해야 풀릴 강력한 허기였다.


 

 

이지형 푸드칼럼니스트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5.12기사입력 2016.05.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프린트      목록

최신 컨텐츠
라이프
1863년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1852~1919..
여행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11월 중순부터 형형색색의 조..
푸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동의보..
푸드
옆구리 시린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썸을 타며..
라이프
한나라 무제는 주부언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주부언은..
이슈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항공기의 비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