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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함(214급) 진수식


일본 해상자위대는 매년 잠수함을 한척씩 퇴역시킨다. 그러면서 전체 잠수함 보유 대수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잠수함을 1척씩 제작한다. 일본에서 잠수함 제작이 가능한 업체는 미쓰비시(三菱) 중공업과 가와사키(川崎) 중공업 두 곳 뿐이다. 양사는 매년 교대로 해상자위대와 잠수함 건조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009년 일본 정부가 퇴역할 잠수함을 발표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래는 가와사키 중공업이 당연히 새로운 잠수함 발주를 맡을 차례였는데 그냥 넘어간 것이다. 2009년 말이 되자 잠수함 교대 건조의 관행이 시작된 1977년 이후 처음으로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이 수주 경쟁을 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졌다. 발주 물량이 없어 도크가 비어있는 가와사키 중공업이 계약을 따낼 것이냐 2010년도 잠수함 건조 계획을 내부적으로 세워놓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지켜낼 것이냐. 결국 2010년 일본 해상자위대가 선택한 업체는 전년도에 건너뛰었던 가와사키 중공업이었다.

 

우리나라 해군의 군함을 건조하는 역사를 보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뚜렷한 양강(兩强)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교대로 제작하는 양상이 확연했다. 잠수함 분야를 보면 시장에 먼저 뛰어든 대우조선해양은 209급 잠수함(1200t규모) 9대를 모두 건조했다. 그러나 더 큰 규모의 214급 잠수함(1800t 규모) 1,2,3번함은 현대 중공업이 제작했다. 손원일급(214급) 잠수함 4번함부터 9번함까지 6척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번갈아 계약을 맺거나 맺을 예정이다.

 

해군의 최신형 잠수함인 장보고Ⅲ(3000t 급)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함께 실시했다. 건조도 양 업체가 어떤 식으로든 분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급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세종대왕급 구축함(이지스구축함, 8000t 규모)은 1번함을 현대중공업이, 2번함은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해군에 인도했다. 세 번째 서애류성룡함은 현대중공업의 도크에서 만들어졌다.

 

세종대왕급 구축함 건조보다 앞서 진행됐던 충무공 이순신급(KDX-Ⅱ) 사업. 모두 6척이 건조됐는데 1,3,5번함은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했고 2,4,6번함은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당시 대우 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국방부가 물량을 절반씩 나눈 것이었다.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주요 업체로 한진 중공업도 있다. 해군이 보유한 최대 규모의 함정인 독도함(만재 배수량 1만8800t)을 제작했고 제2독도함 건조도 진행 중이다. 한진 중공업은 사실 우리나라의 해군 함정을 처음 만든 대한조선공사가 전신이다. 대한조선공사는 초창기 해군의 고속정, 초계함, 호위함 등을 건조한 수상함 핵심 업체였다. 하지만 구축함과 잠수함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군 함정 건조를 둘러싼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논리가 있을까.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 일본 해상자위대와 관련 업계에서는 미쓰비시(三菱)와 가와사키(川崎) 앞글자를 따서 ‘미카와(三川)’라는 조어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미카와는 일본 정부가 양대 조선사의 군함 건조 사업을 관리하는 정책을 표현하는 말로 보인다. 좋게 말하면 관리지만 비틀어 생각하면 경쟁을 거부하고 편하게 사업을 하려는 업체들의 이해를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일본에서는 이들 두 업체 관계자들끼리 "건너편 회사의 배(잠수함)가 마무리되어 가면 우리가 시작할 차례"라는 농담도 생길 정도라고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 출신들이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에 많이 취업해 ‘삼각관계’라고 칭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군함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국내에 이렇다할만한 조선사가 많지 않았다. 대우 중공업이 선발주자였으나 현대중공업이 특유의 저돌적 추진력으로 따라붙었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예비역 해군 장교는 “발주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2개사 체제를 유지하는 게 합당한 지 논란이 작지 않았다”며 “방위산업이 반드시 시장 논리에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이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에서 설명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군함정 ‘교대 수주’는 정부와 방위산업체 간의 독특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가 유일한 구매자인 방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무기로 업계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수요자와 공급자 양측에서 여럿이 참여하는 일반적 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정부는 군이 사용하는 무기의 종류와 수량을 결정하고 업체와 생산 계약의 주체가 된다. 군사력 유지와 증강에 필요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업계에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 이런 명분은 확실히 그럴 듯하지만 앞의 해상자위대 출신들이 ‘미카와’에 취업하는 것을 보면 명분 뒤에 숨은 이해관계도 엿보인다.

 

이 같은 방산 생태계의 명분과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공군 고등훈련기(T-X) 사업을 보면 일각에서 보잉이 사업 수주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내년 하반기에 미 공군의 노후한 고등훈련기를 교체하기 위해 350대(약 17조 원어치)를 구매할 예정이다. 미국 해군과 가상적기 물량을 더하면 1000대 약 5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국방부가 발주한 사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록히드마틴이 T-X 사업에서 또 계약을 따내는 것을 미 정부가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방산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보잉의 군용기 생산 시설 가운데 일감이 줄어들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곳 출신의 정치인들이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시장 분할을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이라는 논리로 무장하고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해군 함정을 생산할 때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교대로 계약을 한 것에도 이러한 생각이 깔려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의 조선 3사는 현재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대규모 적자를 못 버티고 자산매각과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처지고 외부의 자금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 조선업체에서 방산부문은 생존을 좌우할 정도의 큰 비중이 아니다. 그동안 힘들게 축적한 기술과 전문 인력들이 구조조정의 태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효율을 우선시하면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규모에서 두 군데 이상의 군함 건조업체가 필요한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국익 차원에서 고려해야하는 문제라는 시각도 엄연히 있다. 다만 생존을 걱정해야할 조선업계에 장기적인 그림을 생각할 여유가 과연 남아 있을지가 모르겠다.

 

 

안두원 기자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5.23기사입력 20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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