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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이 쏟아지는 창밖을 무력하게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타인에 대한 관심 없이 각자의 시간을 향해 가는 승객들, 감정이 모두 증발해 버린 듯한 남녀의 일상.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역사의 공기가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담담히 풀어낸다.

 

모 대기업의 광고로도 익숙한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은 양차대전 사이 미국 시민들의 고독한 일상을 담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이 스크린으로 살아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작품으로, 뚜렷한 스토리가 짜여있기보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회화’에 가까운 영화다.

 

주인공 셜리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성으로 미국사회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의 대사는 오직 셜리의 느릿하고 감정 없는 독백이 전부다. 라디오에서는 연신 시대상황에 관련한 정보가 흘러나오지만 이 또한 영화를 아우르는 황량하고 무심한 공기에 이내 흩어지고 만다.

 

대도시의 건조한 고독은 사람들의 감정마저 말려버리며 서로에게 무관심한 개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고, 그 메마른 서사는 극적이지 않기에 더욱 절망적으로 흘러간다. 셜리의 일상적인 독백은 삶과 존재에 대한 육중한 진술이 되어 스크린 아래로 가라앉길 반복한다.

 

늘어난 빛의 표현과 단순화된 기법으로 인해 더욱 과장된 도시의 지루함은 마치 시간이 개인의 삶을 끌고 가는 느낌에 가깝다. 이미 이들은 시간의 주인이 아닌 수동적인 모습이다. 기본 재화의 결핍이 없는 도시풍경에서 이토록 절망적인 무력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희망의 고갈 때문은 아니었을까. 현재도 미래도 내 것이 아닌 풍경 때문이리라. 그래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한편으로 외려 명료한 비극보다 가슴이 저리다.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자족하는 즐거움보다는 무감각한 도시의 파편이 되는 길을 택한다. 자의적인 내려놓음이 아닌 내려놓고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의 공기, 삶의 충만함에서 멀어진 일상이 비단 1930년대 호퍼의 미국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박찬민 작가 작품

 

여기 인공적인 도시 아파트 풍경이 담긴 작품이 있다. 작가 박찬민의 작품 속 아파트는 마치 가지런히 쌓아놓은 도미노처럼 획일적이고 지루한 모습이다. 개인의 삶조차 무기력한 주거 공간 속에 재단되어 담겨 있는 듯하다. 풍경을 아우르는 공기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흘러나온 듯하지만, 이곳은 오늘날 우리가 숨 쉬는 도시 풍경이다. 작품은 지루한 주거공간의 풍경을 더욱 과장하는 것을 통해 단절된 도시 주거지 속의 우리 삶의 모습을 묻는다.

 

영화는 제목처럼 셜리의 모든 것은 그토록 무력하게 지나가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셜리, 또 건조한 도시의 부분이 되어 시간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에게 부디 이 힘없는 일상의 편린들이 이들의 전부는 아니었으면 한다.

 

셜리는 차라리 신음하고 울어버릴 줄 아는 여인이길, 연민을 딛고 일어나 풍경에 귀속된 자신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된 풍경을 살아가길.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여인의 품에 머뭇거리는 따뜻한 일광에서, 여전히 한줄기의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에도 말이다.

 

 

김지희 화가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5.24기사입력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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