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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정치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791년에 단행한 신해통공(辛亥通共)이다.

신해통공의 핵심은 소상공인의 상업권을 확보하게 했다는 점이다.

영세상인이 상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조선 후기 상업 융성에 비약적인 발전을 오게 한 조처였다.

 

조선 전기에는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영향과 농본억말(農本抑末) 정책으로 말미암아 상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전(市廛·국가에서 허가한 상점으로 시장 거리에 있는 큰 가게를 일컬음)이 상업과 유통의 중심을 이뤘는데 태종 때 한양의 중심지인 종로와 남대문에 이르는 광통교 길가에 2600여칸에 이르는 시전을 조성하고 상인에게 대여했다.

 

시전에서는 한 가지 물종만을 전문적으로 팔게 하는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는 대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게 했다.

또한 시전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상업 분야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늘면서 상품 유통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세금을 쌀과 포로 납부하게 한 대동법의 실시와 상평통보의 전국적 유통은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 또한 상업 활동이 늘어난 기폭제가 됐다.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탄생한 공인(貢人)은 관청에서 공가(貢價)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납품했다.

공인들은 관청별 또는 품목별로 공동 출자해 상권을 독점했다.

공인들은 한양의 시전뿐 아니라 지방의 장시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특정 물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都賈)로 성장했다.

이처럼 공인의 등장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사상(私商·허가 없이 개인적으로 영업을 하는 장사꾼)의 성장이 특히 두드러졌다.

이들은 한양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상들은 인구가 밀집한 한양의 3대 시장인 종루와, 동대문 부근의 이현(梨峴)과 남대문 밖의 칠패(七牌)를 거점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이곳은 이전부터 조정의 비호를 받는 시전상인들에 의해 금난전권(禁亂廛權·육의전과 시전상인이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정부와 결탁해 독점적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이 형성되고 있었다.

 

금난전권은 새로운 상업 세력으로 성장한 사상들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18세기 후반에는 금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상인이 권세가나 각 관청과 결탁했다.

그 결과 시전의 수는 크게 증가해 1630년대 30여개에 불과하던 시전이 18세기 말 총 120개로 늘어났다.

 

경제에도 해박했던 정조는 이런 문제점을 미리부터 인식하고 독점적인 상업 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독점을 일삼는 시전 중 가장 중심을 이룬 점포는 육의전(六矣廛)이었다.

비단·무명·명주·종이·모시·어물 등 6개의 물종을 다뤄 육의전으로 불렸다. 그 밖에도 쌀을 판매하는 미곡전, 철물을 판매하는 철물전, 모자를 판매하는 모자전, 잡다한 물건을 파는 잡물전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시전이 있었다.

 

시전은 금난전권이라는 든든한 보호막 속에서 조선 후기까지 시장을 장악했다.

금난전권의 강화는 도시의 경제 질서를 경화시키는 한편, 물가 상승을 초래해 영세상인과 도시 빈민층의 생계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 상업의 성장과 시장의 발달이라는 변화를 예의 주시했던 정조는 마침내 1791년 1월 신해통공을 단행한다.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조치였다.

시전상인들은 집권 정치 세력인 노론 계열의 특권 가문과 연결돼 있어 그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조는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이 같은 특단의 조처를 시행했다.

신해통공으로 시전상인에게만 주어졌던 오랜 특권인 금난전권이 폐지됨으로써 소상인의 입지는 더욱 커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 육의전에 대한 금난전권을 지속시킨 것은 국역(國役)을 시전상인들에게 계속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재정 상황 때문이었다.

 

정조의 명을 받아 신해통공을 추진한 중심인물은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년)이다.

정조는 채제공의 건의를 반영해 입법한 내용을 한문과 한글로 써서 큰 길거리와 네 성문에 내걸었다.

백성이 법을 몰라 죄에 걸려드는 근심을 면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조정의 의지가 확고함을 확인시킨 것이다.

 

노론 권력가와 시전상인의 정경유착 고리를 끊어낸 채제공은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측근에서 보필해온 남인계 인물이다.

노론 중심 정국에서 소외받던 남인에게 그는 큰 희망이었다.

 

그간 시전상인의 상권 독점은 물가의 등귀를 초래하는 한편 생필품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

채제공은 시전상인이 이익을 독점하고 백성이 곤궁해지는 현실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그는 독점 상업 때문에 물건값이 폭등해 백성들이 소금을 구하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하는 상황을 반드시 개혁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

 

채제공은 “육전 외에 난전이라 해 잡아오는 자들에게는 벌을 베풀지 말도록 할 뿐 아니라 반좌법(反坐法·거짓으로 죄를 씌운 자에게 그 씌운 죄에 해당하는 벌을 줌)을 적용하면 백성의 곤궁한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원망은 신이 스스로 감당하겠습니다”라고 정조에게 밝히기도 했다.

특히 금난전권 폐지가 도성 백성의 고통을 제거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매매 이익을 실현시켜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해통공 시행이 상당한 효과를 거뒀음은 실록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어물 등의 물가가 갑자기 전보다 싸졌으니 개혁에 실효가 있다” “장작 값이 옛날의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신해통공의 조처는 시전 체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역 운수업이나 얼음 판매업의 독점 혁파에까지 이어졌다.

신해통공은 한강을 무대로 하는 각종 사업에서도 그 독점권을 폐지하고 민간업자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했다.

이후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하는 사상이 성장했다.

 

사상들은 앉아서 판매하는 난전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전국 지방 장시(場市)를 연결하면서 물자를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설치해 판매를 확장했으며, 대외무역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상업 활동을 했다.

사상 중에서도 한강의 경강상인을 비롯해 개성의 송상(松商), 평양의 유상(柳商), 의주의 만상(灣商), 동래의 내상(萊商) 등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거상으로 성장했다.

 

사상의 성장과 함께 지방에는 장시가 발달했다.

광주의 송파장, 은진의 강경장, 덕원의 원산장, 창원의 마산포장 등이 유명했다.

 

신해통공은 당시의 집권 세력인 노론의 기득권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정조는 재위 기간 내내 영조 이후 50여년간 집권 세력의 지위를 유지한 노론 권력의 축소에 골몰했다.

 

규장각을 개혁 정치의 중심기관으로 삼은 것이나 남인 출신 채제공과 정약용을 측근에 배치한 것은 이런 의지의 반영이었다.

채제공이 정승에 임명됐을 때 노론들이 엄청난 위기감을 느낀 게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정조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적극 실천한 채제공의 노력으로 단행된 신해통공.

금난전권이 폐지됨으로써 조선 초기 이래 400년 가까이 기득권을 가지면서 막대한 혜택을 입었던 권세가와 시전상인은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기운과 함께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다수의 소생산자나 영세상인에게는 빛과 같은 조처였다.

특히 노론의 권세 가문이 시전을 장악해 정경유착을 꾀하는 고리의 차단은 소상인과 도시 빈민 보호를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조는 정치 개혁뿐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경제 분야에서 확실한 개혁 정책을 추진해 백성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정조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자료제공 매일경제
발행일 2016.06.07기사입력 20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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