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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따라 찾아 다닌 도시 여행’ 마지막 코스로 대구를 찾았다.

언제나 가고 싶었던 청라언덕과 계산동 이상화 고택, 전국구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등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두드리는 낭만의 여행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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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동산 청라언덕, 말이 사라지다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청라언덕에 올랐다. 한국인치고 가곡 ‘동무생각’(사우)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곡가 박태준은 어린 시절 이곳 청라언덕에 살았다. 마을 이름이 동산동인 것은 바로 이곳 청라언덕 동산(본명은 계산)에서 연유한다.

청라언덕을 넘어 북쪽으로 내려가면 ‘신명고등학교’가 있다. 1902년 선교사 마타 스콧 브루엔(Martha Scott Bruen) 여사(한국 이름 부마태)가 ‘신명여자소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다.

 

박태준은 청라언덕에서 마주치곤 했던 ‘백합 같은 여학생’을 흠모했었다고 한다.

박태준 나이 22세 때 그의 사연을 들은 이은상이 시를 붙여주고 ‘사우思友’라는 제목으로 곡을 완성했다.

그때까지 그녀를 잊지 못해 노래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창작을 통해 가슴에 영원히 남긴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대구시 동산동 청라언덕에 오르면 저절로 그 노래 ‘동무생각’을 흥얼거리게 된다.

‘봄에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청라언덕의 ‘청라’는 ‘푸른 담쟁이靑蘿’를 뜻한다.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을 전후한 시기, 대구 또한 개방과 근대화 물결 위에 있었다.

선교사들도 많이 들어왔다. 그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워 조선인들과 접촉했고 동산동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다. 대부분 벽돌집들이었고 외벽과 붙은 땅에는 담쟁이 넝쿨을 심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동산동 언덕은 붉은 벽돌건물에 담쟁이가 뒤덮였을 것이고, ‘청라언덕’이라는 애칭이 붙은 것도 당연한 정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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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에는 지금도 선교사들의 주택이 남아있어서 고혹한 언덕의 정취를 풍기고 있다.

그 때 그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떴다. 어떤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또 어떤 이들은 언덕 위 외국인 묘에 안장되어 있는데, 동산의료원에서는 이곳을 ‘의료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근대화의 중심에 있던 대도시 내 외국인 주택 가운데는 조선시대의 읍성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성돌로 기초를 하고 그 뒤에 서양식 벽돌로 집을 지은 경우가 종종 보인다.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들도 마찬가지다. 그 우람하고 단단한 안산암으로 기초를 했으니, 관리만 잘하면 앞으로도 천년 동안 남아있으리라.

선교사 챔리스 주택은 2층집으로 거실, 주방, 서재, 침실, 욕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당시 의료원에서 사용하던 기구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안전상 2층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선교사 블레어 주택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건축된 2층집으로 지금은 근대문화유산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갓, 탕건, 유건, 백립, 패랭이 등 조선 시대 때의 모자들과 당시 신랑신부가 받았던 혼인증서, 여학생들의 사진, 바리깡, 학교종, 교실 모습과 책걸상, 책가방, 괘종시계, 도시락, 교과서, 교복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위치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교통편 동대구역 지하도1 정류장에서 36번 급행버스 – 곽병원 앞2 정류장 하차, 약 40분 소요

 

▶3.1만세운동길에서 만나는 오래된 대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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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을 떠나 3.1만세운동길로 발길을 옮긴다.

계산주교좌성당,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그리고 약령시로 이어지는, 대구의 정기가 살아있는 길이다.

언덕에서 계산성당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좁고 긴 계단이 나온다. 계단의 수가 모두 아흔 개라 해서 ‘90계단’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태극기가 줄줄이 걸려있고, 개화기 대구의 생활상과 일본에 항거하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단이 편안하고 예뻐서 이곳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계단 옆 담장 안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1893년에 창립된 이 교회는 대구 경북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지금의 건축물은 1994년에, 종탑은 2002년에 완공되었다.

 

계단 맨 아래로 내려오면 길 건너로 ‘계산주교좌성당’이 보인다. 그냥 봐도 역사가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서울의 명동성당, 평양의 성미카엘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건축된 ‘고딕양식의 천주교 예배당’이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했고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들이 시공한 건축물로 1902년에 일차 완공되었는데, 지금의 모습으로 최종 완공된 것은 1918년 12월24일이었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 1900년대 초 성당건축물’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자그마한 뜨락도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나곤 했던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저항시로 분류되지만 시구 하나하나 행 한 줄 한 줄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어떤 서정시와도 비교될 수 없는 한국문학의 백미라 할 만하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계산성당 앞 3.1운동길에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담장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써 있다.

앞에 서서 조그만 소리로 읊조리노라니 학창 시절 결연한 표정으로 이 시를 낭독했던 ‘국어쌤’ 얼굴이 떠오른다.

담장을 조금 지나면 이상화의 고택과 조선시대 때 대구 경북 지역의 거상으로 성공한 뒤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고택이 있다.

 

이상화 고택은 이상화가 당시 친구들과 제자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와 문학을, 조국을, 독립을 이야기했던 곳이었다.

우리나라 대표 시인의 고택이자 역사의 상징성을 지닌 이 골목(대구시 중구 서성로 6길)에 재개발 바람이 분 것은 2000년대 초반.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이 골목이 살아남게 된 것은 대구 시민들이 펼친 ‘상화고택보존운동’의 결과다.

당시 4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서명과 모금에 참여했고 이상화기념사업회, 대구 지역 문화단체 등이 힘을 실어주었다.

고택 곳곳에 있는 이상화의 유물들은 후손과 문인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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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서상돈 고택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약령시’가 있다.

약령시는 조선시대 효종 9년 1658년 무렵 한약재 수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봄과 가을에 각각 한 달씩 열렸던 한약재 시장으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자금 조달처로 지목되면서 폐쇄되었고, 해방 후 다시 문을 열었으나 전쟁 때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모습은 1980년 후반에 갖춰진 것인데 이제는 약재 시장의 기능은 물론 한의원이 밀집하고 고즈넉한 카페, 음식점과 한의학박물관도 있는 ‘문화거리’가 되었다.

 

위치 대구시 중구 서성로 6-1

 

교통편 동대구역 지하도1 정류장에서 급행 1번 버스 – 곽병원앞2 정류장, 약 30분 소요.

 

▶흥얼흥얼은 계속된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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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고향이 ‘대구’였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김광석은 대구시 대봉동에서 196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봉동은 오래된 시장인 방천시장, 도심을 흐르는 하천 ‘신천’, 경북사대부고 등을 아우르는 동네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원래는 시들해져 가는 전통시장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기획되었으나 방천시장의 부활은 아직 시간과 공이 더 들어가야 하는 형편이다.

2010년에 이어 2014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이름에 쓰여진 대로 벽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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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변을 달리는 신천대로 수정교 지하차도 일대의 녹지 축대에 김광석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곽도경, 권혁규, 박준식, 심윤, 지정현, 천명기, 하원식, 황현호 등 50여 명의 전문가 또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참여했는데, 대구의 그 어떤 거리보다 인기 있는 전국적 명소가 되었다.

하루 종일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곳에는 김광석의 얼굴 김광석 노래와 관련된 벽화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광석의 소탈한 얼굴, 표정, 몸짓을 표현한 그림들과 함께 그를 그리워하게 하는 짤막한 글들로 가득하다.

또한 김광석의 노래 제목과 함께 바로 그 노래의 가사를 담은 그림들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술집 풍경화 안 말풍선에는 ‘형, 소주 안주로 제일 좋은 게 뭔 줄 알아요?’ … ‘그건 말이예요…김광석의 노래예요. 소주 안주로는 김광석 노래가 최고라고요…’가 적혀있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쓰여진 전봇대 양쪽의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남녀 고등학생들의 그림’은 오래된 첫사랑의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문화 단체에서는 김광석의 느낌이 살아있는 에코백, 손글씨 엽서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등병의 편지’, ‘혼자 남은 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그리고 누구나 고개를 하늘로 향하게 만드는 노래 ‘서른즈음에’ 제목 앞에서는 무언가에 골똘해진 중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는 다른 여행 골목과 마찬가지로 ‘미스터양꼬치’, ‘이등병라면’, ‘이야기2015’, ‘카페 봄봄’, ‘카페 바하의 선율’, ‘갤러리 아르’, ‘야외공연장’ 등 문화공간, 카페와 음식점들로 즐비하다.

그러나 이곳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다. ‘골목 조성’만 해놓고 내버려 두지 않고 ‘운영위원회’에서 늘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절한 국민 가객에 대한 여행자들의 애틋한 마음도 이 골목이 차분한 감성의 길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위치 대구시 중구 대봉동

 

교통편 동대구역 지하도1 정류장에서 401번, 403번 버스 – 방천시장 정류장 하차 , 약 30분 소요

 

▶모든걸 놓게 되는 멍~~한 산, 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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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은 대구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산이다. 그러나 여행자라면 한번쯤 올라 볼만한 대구 최고의 전망이다.

앞산에 오르면 분지 대구의 실체와 멀리 낙동강 근처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다.

케이블카 외에는 잡스러운 시설이 없다는 점도 앞산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앞산에 오르는 방법은 등산과 케이블카 두 가지이다.

케이블카도 타고 산길도 걷기로 했다.

케이블카는 단 5분만에 여행자를 해발 180m에서 510m 높이로 이동시켜주고, 오르내리는 동안 푸른 산과 하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숲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매표소에서 왕복 9500원짜리 티켓을 사고 잠시(운행 간격 5분~15분) 기다리니 케이블카가 도착한다.

케이블카 정상에 도착하자 앞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대신 ‘전망대’와 ‘안일사’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숲길을 걷고 깊은 골짜기에 있는 절간 툇마루에도 한번 앉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내려갔다 다시 걸어서 올라와야 하는 두 시간 남짓한 코스이지만 산이 있는 도시에서의 숲길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내리막길로만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안일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중건된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

앞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점 하나로 보이는 이곳에는 대웅전, 산신각과 함께 대구시 유형문화재인 ‘목조석가여래좌상’도 있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목불상은 상호, 착의법 등을 볼 때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불상인 것으로 추측된다.

불교계와 학계에서는 대략 조선 숙종 20년 전후로 그 제작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다시 걸어서 전망대로 올라갔다. 산길은 역시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더 편안하다. 그렇다고 식은죽 먹기는 아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는 쓸데없는 객기를 부렸다는 후회도 들었지만 신록이 시작된 숲을 땀 흘리며 걷는 청량감은 모든 잡념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했다.

 

전망대에 오르자 탁 트인 시야 안으로 대구시 전체가 쏙 들어온다.

한 시간 전에 계곡물로 세수를 했던 안일사 앞 안지랑골의 모습도 눈에 잡힌다.

요즘 ‘멍 때리는 여행’이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고 있는데, 앞산 전망대 또한 딱 멍 때리기 좋은 곳이었다.

자세히 보이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없고, 게다가 인적마저 드물다.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잠시 초점을 잃은 상태를 유지하다 다음 동선이 떠올라 정신줄을 되잡는다.

앞산 전망대에 오른 것은 땡볕이 내리쬐는 대낮이었는데, 놀러 온 대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혼족들은 주로 동성끼리 낮에 오고, 밤에는 커플족들이 우글거린다’고 했다. 지금이 밤이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한다.

 

앞산케이블카 승강장 위치 대구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14

 

교통편 지하철1호선 큰고개역 – 영대병원역 하차 – 영대병원역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남구 1-1 승차 – 앞산공원관리사무소앞 정류장 하차, 약 1시간 소요.

 

문의 053-656-2994

 

안일사 위치 대구시 남구 대명동 산 225

 

교통편 지하철1호선 큰고개역 – 안지랑역 하차 – 안지랑네거리2 정류장에서 410-1 버스 – 대덕시장건너 정류장 하차, 소요시간 약 1시간30분

 

 

글·사진 이영근(여행작가)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6.09기사입력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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