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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妖精)은 어리고 섹시하다?! 숲 속의 요정에서 은반 위의 요정까지?

 

서양에서 요정을 님프(nymph)라고 부르는데,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요사스러운 정령 혹은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를 말한다.

님프는 그리스어 님페(Nymphe), 늄페(Numphe)의 영어식 발음이다.

님프는 때로 복수로 ‘님파이’라고도 불린다. 님프는 혼자서가 아닌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님프들은 신화 속에서 일반적으로 어리고 예쁜 여자 모습에, 춤과 음악을 즐기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연과 야성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을 따라다니며 측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수도 있으나 대개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거나 예언 능력을 준다.

들에 꽃을 피게 하고 목축을 도우며 우물에 약효를 주기도 하는 등 인간에게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님프의 거처라고 생각되는 동굴은 신성한 장소로 숭배됐다.

님프는 신은 아니지만 신격을 갖고 있으며 인간보다 훨씬 수명이 길다.

 

신화 속 님프들은 다양해서 주로 사는 곳에 따라 명칭이 세분된다.

그리스인들은 나이아데스(샘의 님프), 네레이데스(바다의 님프), 드리아데스(나무의 님프), 오레아데스(산의 님프), 레이모니아데스(목장의 님프) 등으로 분류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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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➊ ‘힐라스와 님프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6년.

헤라클레스의 시종인 미소년 힐라스에 반한 님프들은 그를 물속으로 끌고가 납치해버렸다.


님프를 그린 그림의 주요 배경은 ‘물’이다.

그만큼 님프는 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것은 그리스가 다도해가 많지만 내륙 지방엔 물이 부족해, 물을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는 샘물이든 호수든 강물이든 바닷물이든 물이라면 모두 신성하고 순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물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그들은 땅속이나 바위틈에서 솟는 싱싱한 샘물의 본체를 님프라고 상상했다.

숲과 나무를 배경으로 할지라도 반드시 물과 함께 그려지곤 했다.

 

사실, 님프 즉 님파이는 숲 속을 여럿이 몰려다니며 자신들만의 폐쇄된 환경에서 지내는 숫처녀들이다.

그래서 외부인, 특히 남성이 나타나면 도망치기에 바쁘다.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혹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간을 당했다 하더라도 화를 면할 수 없었다.

순결을 잃은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규율이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그런 님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님포(nympho)가 의학적으로 여성 성기의 소음순 혹은 음핵을 뜻한다고 봤을 때, 님프는 분명 성애와 관련된 존재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몇몇 화가들은 남자로부터 도망치는 님프보다 남자를 희롱하며 유혹하는 님프를 더 많이 그렸다.

나르시스를 짝사랑하다 좌절된 에코,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오매불망했던 살마키스, 오딧세이를 유혹했던 세이렌과 그를 붙잡아 자기 섬에 억류해 살림을 차렸던 칼립소 등이 모두 그런 님프다.

때로 님프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애달픈 상처와 고통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영국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힐라스와 님프들’에서 님프가 연못가에 물 길러 온 미소년 힐라스(Hylas)의 손을 잡아당기는 장면을 그렸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님프들이 그를 유혹하고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무수히 피어 있다.

불교적으로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이 피므로 속세에 물들지 않는 성인을 상징했다.

서양에서는 연꽃을 내세에 무한한 생명을 부여하는 재생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해가 뜰 때 꽃이 피고 해가 지면 꽃이 진다고 해 태양 숭배 사상과 관련시켜 신성시했다.

 

힐라스는 연꽃보다 아름다운 님프들에게 둘러싸여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 듯 엉거주춤 물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물은 강력한 성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사실 힐라스는 헤라클레스가 드리오프스 땅의 왕 테이오다마스를 죽이고 데려온 왕자로, 헤라클레스가 반한 나머지 자기 시종으로 삼았던 미소년이다.

힐라스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위대한 영웅들이 모이는 아르고스 원정대에 끼여 항해하다 도중에 미시아 섬에 들르게 됐다.

힐라스는 헤라클레스의 심부름으로 청동 물병을 들고 페가에라는 샘에 물을 뜨러 갔다.

물병을 샘물 속에 담그는 순간 그에게 반한 샘의 님프들이 그의 목을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님프들에게 납치된 힐라스는 영영 헤라클레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크게 상심한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를 찾기 위해 아르고스 원정대에서 중도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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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➋ ‘님프와 사티로스’,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1873년.

정욕 이미지의 사티로스가 수많은 님프에게 둘러싸여 난감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후로도 힐라스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는데,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의 페도필리아(아동성애)적 연인 관계의 자연스러운 결말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당대의 동성애가 철인정치를 위한 역량 있는 젊은이를 키워내는 스폰서십으로, 힐라스 역시 육체적, 정신적, 철학적, 물질적으로 후원을 받아야 할 나이를 지났기 때문에 진정한 자기 사랑을 찾아 떠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워터하우스가 님프들 얼굴을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그렸다는 것.

그녀들이 모두 이 한 남자에게 동일한 마음을 품었다는 뜻일까? 이 소녀들은 어쩐지 롤리타를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적으로 섹스를 광적으로 밝히는 여자를 ‘님포마니아’라고 부른다. 님프와 마니아를 합친 말이다.

현대에선 섹스의 충동을 참지 못할 뿐 아니라, 한 명의 애인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명의 애인을 두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성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장면을 그린 또 다른 그림이 있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가 그린 ‘님프와 사티로스’다.

전령신 헤르메스와 샘과 호수의 님프 나이아드의 아들인 사티로스는 상체는 인간인데, 머리의 뿔과 하체는 염소의 모습이다.

통상 남성 색정광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티로스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와 관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술과 관능적 쾌락을 좋아하는 그들은 디오니소스 추종자들과 함께 춤추면서 디오니소스를 따라다니고 지팡이, 포도송이, 술잔 따위를 지니고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우화에서 사티로스의 이미지가 정욕과 연결된 것은 님프들을 쫓아다니는 특징 때문이다.

사탄을 그릴 때 뿔과 염소 발굽을 그리는 것도 사티로스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통상 그림 속에서 사티로스들은 술에 취해 있거나 깊은 잠에 빠져 있기도 하고 님프를 쫓아다니기도 한다.

그들은 님프들과 시시덕거리거나 냇가에서 목욕하는 님프를 몰래 엿보는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는 때로 정욕이 순결을 이긴다는 의미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게로의 그림에서는 수많은 님프들을 사티로스 한 명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난감한 장면이다.

 

이런 그림들이 19세기 전반에 걸쳐 프랑스 신고전주의와 영국 라파엘전파 화가들에 의해 자주 그려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대 유럽 전역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형을 만든 빅토리아왕조의 성 문화와 가치가 만연했다.

보수적인 성 문화를 엄격한 도덕주의의 이상으로 만들고, 엄격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피아노 다리가 외설적이라고 여겨 덮개를 씌울 정도였다.

특히 부인이 남편과 관계할 때 전희는 물론 옷을 벗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을 만큼 여성들에게 지나친 성적 계율과 정숙을 강요했다.

이런 성적 억압과 금기는 오히려 정교한 섹슈얼리티에의 관심을 촉발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이야말로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관능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그림을 은밀히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가진 자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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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 미술평론가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6.06.13기사입력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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