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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북서부 설산으로 뒤덮인 산골마을을 우연히 구글맵에서 찾아냈다.

‘메스티아(Mestia)’라는 이 마을에 간다면 설산 풍경도 감상하고 산골마을 사람들의 삶도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폭설로 빙판이 되어버린 도로 사정이 문제였다.

야간열차와 버스를 타고 장장 12시간을 달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메스티아는 현실판 겨울왕국이었다.

중세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먹고 마시는 동안,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걸으며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에 집중하는 동안,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지금 이 순간이 좋다고 심신이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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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갈 수 있을까

 

폭설로 인해 북쪽으로 가는 교통망이 모두 막혔다.

기내에서 내려다본 캅카스 산맥의 장엄한 설산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산은 둘째치더라도 캅카스 산맥 자락은 여러모로 찾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산맥이자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하는 지리적 경계이며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경을 구분 짓는 주요 거점이기 때문이다.

 

캅카스 산맥을 따라 험준한 산자락을 볼 심산이었던 조지아 여행의 애초 목적은 위험한 날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일단 수도 트빌리시에서 버스로만 갈 수 있는 조지아 북동부에 위치한 카즈베크(Kazbek)산은 목록에서 제외됐다.

사실 조지아와 러시아의 경계, 즉 캅카스 산맥을 따라 자리한 카즈베크산은 이번 조지아 여행을 가능케 한 지지세력이었다.

트빌리시에서 고작 200㎞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폭설로 꽁꽁 언 도로 사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에서 구글 지도를 켜고 캅카스 산맥을 따라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오가기를 여러 번, 조지아 북서부를 꽉 채운 초록색 면에서 일순간 손가락이 멈췄다.

확대를 해보니 초록색 컬러로 둘러싸인 작은 타원형 모양의 흰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설산으로 뒤덮인 산골마을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확실한 희망이 샘솟았다.

지명은 ‘메스티아(Mestia)’. 교통편을 검색했다. 두 가지 방법을 찾았다.

트빌리시에서 버스를 타고 한번에 이동을 하거나 트빌리시에서 주그디디(Zugdidi)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한 뒤, 주그디디에서 메스티아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도로 사정상 자연스레 선택은 후자가 되었는데, 조지아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주그디디 기차역에서 메스티아까지 버스가 운행을 할 수 있을지 물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폭설로 꽁꽁 언 도로는 그날그날 날씨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우선 주그디디역에 간 다음 타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오직 자연의 기운에 달려 있었다.

 

어쨌든 출발이다. 트빌리시 기차역에서 밤 9시에 출발한 주그디디행 야간열차는 밤새 꼬박 달려 다음날 새벽 6시에 도착 예정이었다.

주그디디는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318㎞ 떨어져 있을 뿐인데 9시간이나 기차를 타야 한다니 대체 기찻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일순간 궁금증이 일었다.

조지아는 국토 면적이 6만9700㎢로 한반도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좁은 땅덩이에서 야간열차는 예상치 못한 이동수단이었다. 어쨌든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2인실인 1등급과 4인실인 2등급 침대 칸으로 구성된 야간열차는 구소련 시절부터 이용돼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짧은 거리를 긴 시간 달려야 하기에 느릿느릿한 걸음일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기차의 흔들림은 빠른 템포에 가까웠다.

단잠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각 침대 칸의 문을 힘차게 두드리는 승무원의 모닝콜과 함께 어두컴컴한 새벽녘을 배경으로 기차는 정시 도착을 알렸다.

메스티아로 가는 1단계 미션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기차에서 내리자 여행자를 단숨에 알아본 한 남성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이끌리는 순간 2단계 미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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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티아 푯말을 보는 순간 일제히 안도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빙판 위를 달리고 산길을 오르는 버스

 

“메스티아? 버스? 투엔티라리!(버스 가격 20라리, 한화 약 1만원)” 남성은 이 세 가지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했다.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중요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는 듯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환히 웃으며 “7 o’clock, Go!(버스는 7시 정각에 출발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성을 따라 100m쯤 걸어가 보니 기차역 뒤편 으슥한 골목에 봉고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상황인즉슨 ‘오늘 메스티아행 버스는 운행된다. 메스티아에 갈 수 있다. 설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봉고차 문을 열자 이미 반쯤 승객이 차 있었다. 여행자는 두 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일본인, 한 명은 중국인, 나까지 한·중·일 여행자가 모였다.

그 외 승객은 두 명의 현지인으로 일터에 돌아가거나 고향 집을 방문하는 등 제각기 이유를 갖고 메스티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할머니 한 분과 중년 남성 한 명이 합세해 한 자리씩 차지했고, 이제 두 개의 빈 좌석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8시를 가리켰고 날도 환히 밝았다. 호객꾼이 내걸은 ‘세븐 어클락 고’ 공약은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으슥해 보이던 골목길은 해가 비추니 사람 사는 동네로 변모해 있었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시장에선 천막을 걷고 장사 준비에 한창이었고, 슈퍼마켓 커피 자판기 앞에서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길 모퉁이로 내몰려 높다랗게 쌓인 눈은 얼음 언덕을 형성해, 그 결과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는 언제 폭설이 내렸냐는 듯 윤이 나게 잘 닦여 있었다.

속절 없이 출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한·중·일 3국 여행자는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모닝커피도 마시고 아침으로 먹을 과일도 사고 골목길도 걸었다.

빈 자리를 채워야만 출발할 수 있는 버스에 돌아오자 운전석 옆자리 곤히 잠든 어린 딸을 안고 있는 여인이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그녀의 핸드폰 속 구글번역 창에는 조지아 언어에서 영어로 옮긴 말이 적혀 있었다. ‘If you pay 30 lari, the bus starts now.’ ‘빈 두 좌석의 값은 40라리(한화 2만원)이니 나눠 내면 차가 갈거야.’ 여행자와 애기엄마 넷이서 10라리(한화 5000원)씩 나눠서 지불하자는 제안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제안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시계는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주그디디 타운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길 오르막이 시작됐다.

산을 깎아 만든 도로에 진입하자 눈으로 꽁꽁 언 도로가 나타났다. 미처 쌓인 눈을 치우지 못해 눈으로 덮인 도로도 나타났다.

차가 오르막길을 올라갈수록 차창 밖 풍경은 낭떠러지가 계속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언덕 너머 눈으로 뒤덮인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 놓은 것마냥 황홀하기 그지 없다.

나무 사이로 루돌프를 타고 달리는 산타클로스를 만날 것만 같다. 숲속 동화 같은 집에선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둘러싸여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 입은 왕자와 공주의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을 것만 같다.

한번 활짝 열린 입은 좀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황홀한 풍경 때문이기도 하고 차가 도로에서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한 상상 때문이기도 했다.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꼬불꼬불한 곡선도로는 계속 이어졌고, 연식이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고물 봉고차는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메스티아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한 차례 위기의 순간을 맞닥뜨렸다.

오른쪽 차 바퀴가 빙판 위에서 미끄러져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재빨리 왼쪽으로 커브를 틀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60대 운전사의 노련미 덕이었다.

주그디디 역에서 출발해 메스티아 산골마을까지 130㎞의 여정은 4시간을 꽉 채워 끝이 났다.

‘Welcome to Mestia’ 푯말을 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홀경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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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는 난방뿐 아니라 빵을 굽는 오븐 역할을 한다.


▶중세 건축물에서 먹고 자는 행운

 

메스티아는 스바네티(Svaneti) 지방 여행을 가능케 하는 지역이다.

스바네티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역사적인 지방으로서, 유려한 산악 풍경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의 마을과 탑형(塔形) 주택들이 들어선 곳으로 유명하다.

스바네티 지방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구리(Inguri) 강을 중심으로 상류 내륙은 어퍼 스바네티(Upper Svaneti), 하류 내륙은 로어 스바네티(Lower Svaneti)로 구분된다.

해발 1500m에 위치한 메스티아는 어퍼 스바네티의 메인 타운으로, 여행자를 반기는 호텔과 상점, 레스토랑, 카페, 트레킹 코스 등이 인포메이션센터를 중심으로 그 일대에 하나 둘 위치해 있다.

 

한데 그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상당히 적다. 이곳에서 호텔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나 성격과는 사뭇 다르다.

스바네티 지방 특유의 중세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일반 가정집에서 먹고 자는 홈스테이 형태에 가깝다.

봉고차를 함께 탄 일본인 여행자가 오는 내내 강력 추천한 ‘나지 아주머니’ 집으로 한·중·일 여행자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나지 게스트하우스라 이름 붙여진 이 집은 나지 라티아니(Nazi Ratiani) 아주머니와 기비 라티아니(Givi Ratiani) 아저씨가 젊은 시절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장성한 아들과 딸은 가정을 이뤄 더 큰 도시로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고, 둘만 남은 부부는 몇 년 전부터 여행자를 하나 둘 집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한때 자녀들로 북적거렸을 2층 방과 거실은 이제 여행자의 차지가 되었다.

문 밖에서 개 집을 돌보던 기비 아저씨가 먼저 우리 여행자를 보고 반색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스바네티 지방에 탑형 건축양식이 들어선 건 9세기부터다.

험하고 좁은 골짜기를 배경으로 산비탈 위에 작은 마을이 형성된 스바네티 지방 특유의 지형적 조건이 이 건축양식을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스바네티안 타워(Svanetian Tower)’라는 고유명사가 붙었을 정도로 지역적 특색이 강하다.

대부분의 탑형 건물은 20~25m 높이에 4~5층 규모로 지어졌다. 탑의 각 층은 내부 나무 계단으로 연결되고 지붕은 마치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박공구조로 덮여 있다.

탑의 꼭대기 층은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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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 게스트하우스의 거실 공간, 기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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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형 주택은 대개 지하층을 포함한 2층 구조로 된 형태가 많다.

그 옛날 2층짜리 주택에서는 가족 단위를 이룬 스반족(Typical Svan Family)이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명이 함께 살았다고 전해진다.

대문과 연결된 지하층은 가축을 기르는 공간, 현관문과 연결된 1층은 곡물을 저장하고 난방과 요리가 행해지는 생활공간,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은 여러 개의 침실과 화장실이 갖춰진 공간으로 구성된다.

 

여행자를 보자 집에서 뛰쳐나온 개들은 연신 꼬리를 흔들며 나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현관문 앞에서 나지 아주머니가 여행자를 반갑게 맞았다.

좁다란 주방, 작은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이 놓인 거실의 단촐한 살림살이가 집 내부와 닮아 있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놓인 난로에선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곧장 환영 만찬이 차려졌다.

나지 아주머니가 손수 만든 와인과 전통주, 빵과 요거트, 디저트 등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낮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차차(Chacha)’가 화근이었다.

차차는 조지아 브랜디로 와인 보드카, 포도 보드카, 조지아 보드카 등의 닉네임이 붙는다.

찌꺼기를 뜻하는 포머스(Pomace) 브랜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와인을 주조하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든 술이기 때문이다.

차차의 시작은 농가의 자가 양조로 출발했다. 현재는 공장에서 증류주 생산자들의 의해 전문적인 생산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여러 지방 마을에서는 여전히 집에서 오리지널 차차를 만든다.

 

나지 아주머니가 만든 차차는 알코올 도수가 40도 가량 되는 독한 술임에도 불구하고 향긋한 과일 맛이 목넘김을 부드럽게 해 자꾸만 홀짝이게 했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일본인 여행자는 차차 서너 잔을 눈 깜짝할 새 해치운 뒤 술에 취해 신세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30대 회사원인 그는 매일 야근에 어쩔 땐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회사구조를 불평하며,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사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서글픈 감정을 드러냈다.

“아임 베리 베리 해피, 아이 캔 다이 나우!” 지금 이 순간이 엄청 행복해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를 위해 기비 아저씨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차차와 와인을 모두 치웠다.

2차는 내일로 미루고 해가 저물기 전 마을 산책에 나섰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산책은 끝나버렸다. 길가 상점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현지인들의 초대로 내일로 미룬 2차가 시작되었고, 이후 동네 꼬마들의 부추김으로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성대한 환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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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바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동물왕국, 동네 꼬마들과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거리 상점 술판에 초대된 여행자


▶눈 밟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 있던가

 

화장실을 찾다가 새벽녘 풍경에 순간 잠이 달아났다.

코끝을 감싸는 차디찬 기운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했다. 심장이 멈춘 듯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풍경과 마주했다.

두 눈을 껌뻑껌뻑 할 때마다 불빛도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눈과 불빛의 움직임은 실제 세계였지만 눈과 불빛 앞에 펼쳐진 대지는 가상세계 같았다. 육체는 깨어있지만 정신은 아직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어제 일본인 여행자가 그랬듯 내 입에서도 같은 문장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행복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이다.

 

나지 아주머니가 아침으로 차려준 음식이 반 이상 남았다.

점심으로 해치우기 위해 도시락을 챙겨온 삼국의 여행자들은 트레킹에 나섰다. “매니 매니 스노우, 노 마운틴 노 마운틴.”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는 절대 안 된다며 기비 아저씨는 우리에게 재차 당부를 건넸다.

대문을 기점으로 저 멀리 우뚝 솟은 우시바(Ushba)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목표는 눈 때문에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걷는 것이었다.

기비 아저씨네 개, 로마가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따온 이름으로 다른 개의 이름은 파리(프랑스의 수도)다.

로마는 보란 듯이 저만치 앞서서 걸으며 여행자의 동태를 살폈는데, 어쩌다 마을의 기센 개를 만날 때면 반대로 여행자의 꽁무니에 숨어 보호 받기를 원했다.

기센 개의 출현만 아니라면 로마는 전문적인 가이드다웠다.

지도도 없고 안내 표지판도 없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산골마을에서 로마는 훌륭한 안내자였다.

 

날씨 때문인지 길에는 사람보다 개나 소, 말, 돼지 같은 동물이 더 많았다.

버려진 빈 집도 여럿 눈에 띄었다. 집안 구조를 살펴보고 싶었으나 대문과 창문 모두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다.

트레킹이 시작된 지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수북이 쌓인 눈 위로 수레바퀴 자국만 선명하게 자리했다.

산자락 아래에서 장작을 구해 나르는 수레의 자취였다. 몇 미터 못 가 발자국 하나 없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길이 펼쳐졌다.

깊숙하게 발자국은 새겨져 운동화 전체를 덮은 눈은 발목 위까지 감쌌다.

여행자는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에 집중한 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와이파이 없는 세상에서, 스마트폰의 필요성이 없어진 세상에서 여행자는 머물고 있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자처한 와중임에도 여기저기에서 날아든 메시지를 재빨리 확인하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이메일을 수시로 점검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다량의 여행 정보는 넘쳐도 너무 넘쳐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 하루가 지나면 도시로 돌아가 다시금 똑똑한 삶의 패턴은 시작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 포근한 눈 위에 몸을 맡긴 채 육체도 정신도 잠시 잠깐 활동을 멈춰본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빵 굽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오늘도 난로에선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트레킹 굿?”이라고 묻는 나지 아주머니에게 “베리 굿”을 힘껏 외치고 차차 한 잔을 받아 들었다.

메스티아에서의 마지막 밤은 흥건히 취해도 좋다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과거의 숱한 밤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여행자를 채근했다.

 

메스티아 찾아가기

 

인천공항에서 메스티아까지는 아직 직항이 없다. 먼저 인천공항에서 조지아 수도인 트빌리시까지 비행기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는 버스(8~9시간 소요, 30~40라리 한화 1만5000원~2만원)로 한번에 가거나 야간열차(주그디디역 9시간 소요, 20라리 한화 1만원)를 탄 뒤 버스(3~4시간 소요, 20라리 한화 1만원)로 갈아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메스티아 타운 서쪽에 최근 신공항인 퀸 타마르 공항(Queen Tamar Airport, 메스티아 공항이라고도 불림)이 들어서 트빌리시 국제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이동 가능하다.

국내 항공편은 일주일에 4회 운항되며 티켓 가격은 65리라(한화 약 3만5000원)로 1시간여 소요된다.

 

문의 바닐라스카이 홈페이지(www.vanillasky.ge)

 

 

추효정(프리랜서 여행기자)자료제공 Citylife
발행일 2016.06.16기사입력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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