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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북유럽 핀란드에서 태어난 알바 알토(Hugo Alvar Henrik Aalto)는 유럽 모더니즘건축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대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는 프랑스의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와 더불어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린다.

 

핀란드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동시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그는 유기적 모더니즘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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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미오 요양원


핀란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지역으로 울창한 숲과 빙하수가 흘러내려 이루는 많은 빙하호수를 가지고 있다.

북유럽의 높은 위도로 인한 여름과 겨울의 햇빛의 차이는 자연광을 기능적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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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알토


그 영향으로 알토는 작품활동에서 자연적 요소 및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기계적인 합리성보다는 다소 비합리적이더라도 자연스러움을 중시했다.

인간의 육체적, 정서적 요구에 관심을 가지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탄생시켰다.

 

알토는 강철, 철근 콘크리트와 함께 예부터 사용되었던 목재를 비롯한 자연적 소재의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국제주의적인 요소과 민족주의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지역상황에 뿌리를 둔 국제적인 건축을 추구했다.

 

기술·기능을 중시하면서도 그것을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건축이나 인간을 그것에 종속시키지 않았으며, 표준화에 지배되지 않고 이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표준화와 비합리성의 결합을 시도하였던 가장 대표적인 건축가다.

 

20세기 초 북유럽건축의 흐름은 1910년~1930년 사이, 특히 1920년을 기점으로 고전주의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이러한 고전주의의 경향은 1900년 전후 북유럽에 팽배해 있던 이른바 민족적 낭만주의적 사조와 1920년대 후반부터 유입된 기능주의 모더니즘 사이에 끼어 있는 흐름이었다.

 

▶근대 3대 건축물 파이미오 요양소

 

알토가 이위베스퀼레(Jyvaskyla)에서 첫 작품활동을 시작한 1923년은 핀란드에서도 민족적 낭만주의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며 고전주의를 향한 움직임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따라서 알토의 초기 건축경향은 고전주의였으며 이 경향은 1927년 투르쿠(Turku) 이주와 더불어 기능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알토는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핀란드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가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건물들은 파이미오(Paimeo)에 있는 결핵 요양소, 비푸리(Viipuri, 지금은 러시아 비보르크·Vybrog)에 있는 시립도서관 등이다.

 

이 건물들은 기능적이고 솔직한 설계에 역점을 둔 작품이다.

1920년대 핀란드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단순화된 고전양식을 탈피하여 평활한 하얀 표면, 띠창(ribbon window), 편평한 지붕, 테라스, 발코니 등을 적용하며 당시 그로피우스 등이 이끌던 유럽 근대건축의 전형적인 디자인 요소를 따르고 있지만 그만의 양식을 가꿔 나간 출발점이다.

 

특히 파이미오 요양원(1929~1933)은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뎃사우(Dessau)의 바우하우스(Bauhaus, 1926), 르 코르뷔지에가 계획한 제네바 국제연맹회관계획안(1927) 등과 더불어 근대건축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3대 건축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면구성이 병실, 공용부, 서비스부가 MASS별로 할당되어 분절되지만 중앙부에 절묘하게 결합되어 유기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인본주의 건축가’로 알려진 알토는 환자의 안녕에 공헌하는 특징을 통합시키고 있다.

즉 정신을 앙양시키는 색채 계획, 각 층에 있는 발코니, 신선한 공기와 일광, 환자의 회합장소, 그리고 그밖에 즐거운 시설 등이 그것이다.

 

이는 아직 기능주의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유럽에서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알토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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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기숙사 베이커 하우스, 비푸리 도서관


▶파동치는 곡선 지붕, 비푸리 도서관

 

1935년 완공된 비푸리 시립도서관은 널찍한 내부 복합공간이 여러 층으로 배치되어 있다.

도서관 부속 강당에는 목재를 띠처럼 엮은 음향 반사 천장을 고안했는데, 이는 알토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정형적으로 파동 치는 곡선의 지붕이 처음 등장한 건축물이다.

 

이 곡선은 조형적 목적뿐 아니라 음향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과학적 논리와 예술적 상상력이 서로 결합되어 다소 딱딱한 느낌이었던 건축물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매력적인 세부처리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만곡합판가구와 더불어 대중뿐 아니라 근대건축의 기능적 역할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던 건축가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받았다.

건물 외부는 국제건축양식으로 다소 경직된 느낌이 들지만, 내부공간은 이와 대조적으로 나무의 따뜻한 질감이 건물의 전체적인 하얀 색조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건축물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알토는 파이미오 요양소와 비푸리 도서관의 연이은 성공을 통해 20세기 건축사에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한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기능주의적 어법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쉽게 펼쳐진 길을 마다하고 그 스스로 관습적인 기능주의를 거부하며 빌라 마이레아 (Villa Mairea, 1937~1939)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였다.

 

빌라 마이레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 초기주택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건설된 이 주택은 백색의 녹청이 있는 벽, 나무판벽, 타일 바닥 등 단순한 재료의 실내디자인으로 건축의 원형적이고 혁신적이며 보편적 지속성을 확보하여 그의 건축세계를 확립하였다.

 

▶경사진 목재 스크린, 자연 생동감 표현

 

건축물뿐만 아니라 가구 및 조명, 유리공예 등에도 많은 작품을 남긴 그는 1938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열려 그가 그동안 설계했던 가구를 비롯한 작품들과 건물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알토가 가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 파이미오 요양소의 가구를 만들 때부터였다.

그가 만든 가구는 구조적이고 미학적인 목적을 갖는 띠 형태의 합판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935년 알토는 실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의 아내였던 마이레아 굴리치센과 협업하여 아르테크(Artek) 사에서 자신의 가구를 만드는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알토가 점차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어가고 있을 즈음 개최된 파리(1937)와 뉴욕시(1939~1940)에서 열린 두 차례의 국제박람회를 위해 설계한 핀란드 전시관을 계기로, 자유분방한 건축형태를 구사하는 창의적인 건축가로서 그의 명성은 더욱 빛나게 되었다.

 

특히 뉴욕박람회 핀란드관의 설계에서는 3층 높이의 경사진 목재로 만든 스크린이 내부 공간을 파형으로 자유롭게 굽이쳐 흐르는 것같이 디자인하였다.

층이 올라갈수록 점차 돌출되어 전체 벽면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동적인 감흥과 인상이 강조되었다.

각층마다 계속된 수직목재 리브의 모양과 변화 있게 고안된 형상 및 그림자들의 리듬은 거대한 스크린면에서 참신한 생동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연을 잘 표현했다는 칭송을 들으며 미국 내에서도 그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로 인해 그는 1946~1948년 MIT의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MIT 기숙사 베이커하우스(Baker house)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기숙사는 비둘기집 같이 획일화되고 지루한 패턴의 반복이 되기 쉬운 것이 당시의 경향이었으나 알토는 수용인원수와 실형상 및 그 배치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다양한 각 개인을 배려하도록 계획했다.

외벽도 파형의 변화를 주어 상당히 긴 형태의 MASS에 단조롭지 않도록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

 

MIT기숙사는 10년 후에 나타나게 된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선구적인 양상을 나타내는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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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크세니스카 교회


▶현대건축에 영향 미친 부오크세니스카교회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알토의 건축은 다양하게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의 브레멘에는 고층 아파트(1958),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교회(1966), 그리고 이란에는 미술관(1970)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알토다운 걸작물들은 대부분 그의 고국인 핀란드에서의 작품활동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오타니에미(1962~ 1965)와 이위베스퀼레(1952~1957)에 있는 단과대학 종합계획과 부오크세니스카 교회(1956~1958), 핀란드 헬싱키 문화회관(1967~1975) 등을 들 수 있다.

 

알토의 후반기 작품 중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부오크세니스카 교회는 이마트라(Imatra) 지역에 있어 이마트라 교회라고도 불리며, 본당 안에 3개의 십자가가 있어 3십자가 교회라고도 불리는데 이 교회는 롱샹(Ronchamp) 성당에 이어 현대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적 기능과 교회 내부에서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를 3개의 공간으로 분할 설계하여 용도 및 규모에 맞게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능적 특성이 외관에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외관은 그로테스크한 점이 없지 않으나 알토의 고유한 공간구성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알토는 많은 영예를 안았다. 핀란드 지폐에 얼굴이 새겨지고 그의 우표가 발행되는 등 국민적 존경을 받는 건축가이자 예술가였으며 핀란드 학술원(Suomen Aketemia) 회원이었고, 학술원 원장(1963~1968)을 지냈다.


또한 1928~1956년에는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회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 금메달, 1963년 미국 건축가협회 금메달을 수상했다.

알바 알토의 건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자연에 순응하면서 건물, 주변의 자연, 인간을 기능적으로 조화시키는 유기적 건축이라 할 수 있다.

“Beauty is the harmony of purpose and form”이란 짧은 명언에 건축인으로서 그의 철학이 함축되어 담겨 있다.

 

 

 

이현석 한미글로벌 부장자료제공 LUXMEN
발행일 2016.07.04기사입력 201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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